건강칼럼 靑松건강칼럼 (855)... 국민 MC 宋海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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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2-06-18 19:03본문
靑松건강칼럼 (855)... 국민 MC 宋海추모
국민 MC, 天國노래자랑 MC로...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필자 부부는 매주 일요일 연세대학교회(Yonsei University Church)에서 11시 주일예배를 드린 후 연희동 소재 식당에서 오찬을 하면서 TV에서 방송하는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했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송해(宋海) MC가 지난 6월 8일 하늘나라에서 ‘천국(天國)노래자랑’ MC를 맡으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80년 11월 9일 시작된 KBS ‘전국노래자랑’의 MC는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 등에 이어 송해씨는 1988년 5월부터 MC를 맡았다. 매주 일요일 낮에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일반인 출연자의 노래와 특기를 선보이고, 향토 음식을 만나보는 등 지역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이다. 송해씨 특유의 친근한 진행으로 전국 시청자에게 따뜻한 웃음을 전했다.
‘100세 시대’에 100세 넘어 활동하실 것으로 기대한 송해씨가 6월 8일 노환(老患)으로 도곡동 자택에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오실 시간이 지나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아버지를 발견하였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 19분쯤 유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송해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고인은 올해 들어 1월과 5월에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송해씨는 지난 5월 23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당시 인터뷰에서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사망 4일 전인 6월 4일에는 전국노래자랑이 2년만에 야외 녹화가 재개됐는데 장거리 이동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그러나 0사망 전날인 6월 7일에도 서울 종로 낙원동에 위치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고 택시로 집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송해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회 인사들과 후배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와 논의 끝에 고인의 장례를 ‘희극인장(喜劇人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6월 10일 운구차는 고인의 생전 사무실과 종로 ‘송해길’, KBS 본관을 거쳤다. 유해는 ‘제2의 고향’이라던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에 안장된 부인 곁에 안치됐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金冠文化勳章)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일요일 낮마다 선생님의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외신도 애도를 표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는 송해에 대해 “한반도의 역사가 담긴 인물”이라 칭하며 ‘세계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Guinness Book of Records)에 오른 사실을 소개했다.
기네스북은 영국 기네스 맥주 회사에서 발행하는 진기한 세계 기록을 모은 책이다. ‘기네스’는 본래 맥주 및 증류주 회사의 이름이자 이 회사의 창업주인 아서 기네스의 이름이다. 1886년에 생긴 이 회사는 초기에 양조업에 뛰어들었다가 지금은 다방면에 걸친 사업을 하고 있다. 기네스 회사가 1955년 8월 27일 처음으로 ‘기네스북’을 펴냈는데, 초기에는 심심풀이용 책이었으나, 지금은 기록 갱신의 등록으로 세계적인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네스 맥주회사 상무 휴 비버 경(Hugh Beaver, 1890-1967)은 1954년 9월 옥스퍼드 대학 출신인 맥허터(McWhirter) 쌍둥이 형제를 초대하여 이러한 기록을 모은 책의 편집을 의뢰했다. 책 이름은 ‘기네스북 오브 월드 레코드(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로 칭했으며, 1955년 8월 198페이지의 호화 양장본으로 영국 및 세계 최고 기록들이 실린 ‘기네스북’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1959년 미국판 기네스북의 출간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2010년 기준으로 1억2천만부가 판매되었다.
KBS와 송해가 기네스에 기록 도전 신청과 함께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기네스의 전문 심사위원단이 검토, 보완 요청 등을 거치는 등 면밀하게 심사한 후에 기네스세계기록에 등재가 최종 확정되었다. 국내에서는 송해가 최고령 진행자임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세계 각국의 기록과 KBS에서 제출한 기록을 비교 심사한 결과, 전 세계 초고 기록임을 공인받았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부문명은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이다. 이에 국내 최장수 TV 가요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MC로 활약해온 송해씨의 업적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 기록임을 확인했다. KBS는 5월 23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인증서 전달식을 열고 송해씨의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를 축하했다.
당시 건강상 문제로 입원을 했던 송해씨는 다소 핼쑥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네스 인증서(Guinness World Records Certificate)를 받고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덕분”이라며 “여러분과 공동의 영광이다. 여러분들 건강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노래자랑은 그야말로 노래를 하고 싶고, 여러분과 만나고 싶고, 우정을 나누고 싶고, 지역을 자랑하고 싶어서 많이 나오신다”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노래단 출신의 트로트 가수들이 요새 여러분의 사랑을 만끽하고 있습니다만, 그분들이 나오셔서 하는 분위기가 경쟁도 있지만, 우리는 다정함이 있다”고 했다. 끝으로 “어쨌든 건강하시고, 건강이 우선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꼭 드리고 싶은 소리는 여러분들 건강하십시오”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딴따라’라고 칭한 송해 씨는 평생을 트로트(trot)와 함께 했다. 우리나라에서 트로트는 단순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가 아닌 일종의 문화다. 우리 삶의 곳곳에서 트로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트로트’라는 말은 서양의 춤곡인 폭스 트로트(fox trot)에서 왔지만, 한국 대중가요의 트로트 양식과 폭스 트로트는 2박자라는 점을 빼고는 관련성이 없다.
신재동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은 “1992년부터 매주 함께 활동했다. 지난 6월 4일 전남 영광에서 코로나19 이후 첫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 날도 전화하셔서 ‘잘 하고 있냐... 내 마음은 거기 가 있다’고 하셨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오늘 같이 점심하자’고도 하셨다. 방송 녹화 때는 객석 관리까지 본인이 챙겨야 만족하셨다. 이른바 ‘딴따라’임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회고했다.
송해씨는 1988년부터 34년 동안 ‘전국노래자랑’ 방송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누비며 서민들과 어우러져 공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2020년 ‘미스터트롯’의 스타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김수찬은 ‘미스트롯’(2019)의 송가인, 국악 소녀 송소희, 오마이걸 승희 등도 전국노래자랑이 낳은 스타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노래자랑 출연자들은 저마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 MC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송해씨는 방송 대본 ‘큐카드’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방송 원고 수십 장은 미리 외워두고, 그 지역의 ‘흥’은 몸으로 끌어냈다. 녹화 전날부터 현지에 내려가서 동네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들러 지역주민들과 정담(情談)을 나누었다. 그에겐 언제나 편안함과 넉살이 있어 방송 출연자들의 어떠한 부탁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송해씨는 후배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고, 늘 연예인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설 특집 기획으로 송해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담은 트로트 뮤지컬이자 송해를 위한 후배들이 꾸민 헌정 공연 ‘여러분 고맙습니다’를 제작해 방송했다.
송해(본명 송복희)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출생하였으며, 1949년 해주예술전문학교(현 평양국립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했고, 1951년 1·4후퇴 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월남했다. 대구 출신 석옥이(1934-2018)씨와 1952년에 결혼했다. 1955년 창공악극단에 데뷔했으며, 1964년에는 동아방송 라디오 ‘스무고개’에서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1969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했으며, 1973년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14년 동안 TBC·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한 후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4년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다. 2022년 4월 기네스북에 ‘최고령 TV 프로 진행자’로 등재되었다. 그리고 6월 8일 향년 95세에 별세했다.
2021년 ‘송해의 인생 TV’에서 그는 “세 살 어린이부터 103세 어르신까지 1세기가 공존하는 무대에서 여러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이 순간에도 제 이야기를 경청하시는 분들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송해 씨는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국 안 다녀본 곳이 없으며, 북한도 평양과 금강산은 갔지만 고향인 황해도 재령 땅은 밟아 보질 못했다.
6·25전쟁 당시 통신병(通信兵)으로 근무했던 송해는 과거 방송에서 “1953년 7월 27일 휴전(休戰) 전보를 내가 쳤는데 그걸 치고 고향에 못 가게 됐다. 내가 돌아갈 길을 내가 끊은 셈이다”라며 탄식했다. 그는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 “걱정 마세요, 이틀 뒤에 오겠다”고 했지만 그 후 평생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운명(殞命)했다. 2015년에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은 그 당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가족의 슬픔도 있다. 1974년부터 진행했던 KBS 교통 전문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중도하차한 것은 1986년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송창진)의 오토바이 사고 사망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 직후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아버지, 살려줘’ 하는 마지막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2018년엔 평생을 함께하자던 아내(석옥이)도 곁을 떠났다. 유족으로 두 딸과 사위들 및 외손주들이 있다.
송해씨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가로수를 누비며’ 교통방송에서 “자, 오늘도 안전 운전 합시다!”라는 오프닝 멘트가 입 밖에 나오지 않아 방송을 중단했다고 한다. 슬픔에 빠져 살던 그에게 배우 안성기의 형인 안인기 PD가 찾아와서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부탁하면서 “나랑 전국을 떠돌며 바람이나 쐬자”고 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이 송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젊은 시절 가난에 절망해 남산에 올라 투신했다가 소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진 적도 있다. 송해씨는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서울 매봉역 인근에서 낙원동 근처 종로3가역까지 거의 매일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으며,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리고 걷는 것이 그의 건강 비결이었으며 매일 낙원동에서 목욕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건강 비결이었다. 그는 2500원짜리 국밥집과 6000원 이발소를 즐겨 찾는 단골이었다.
그는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해가 되면 후배들을 불러 밥을 샀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한다며 후배들이 하는 말이 “100명만 모을까요?”였다. 300명에게 밥을 산적도 있다고 한다. 장지갑에 5만원권을 두둑이 채워두고 세배하러 오는 이들도 맞았다. 너무 많이 몰려와 돈이 떨어지면 “외상이야, 내년에 와!”하며 돈 대신 웃음을 줬다.
송해 선생은 지난 1월 KBS 설연휴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땡’과 ‘딩동댕’ 중에 뭐가 더 소중하냐고 하는데,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라며 “전국노래자랑을 통해서 기쁨을 얻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실격해서 목적을 당성하지 못한 분들도 계신다”며 “실패를 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새해에는 원하는 바를 꼭 이루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며(生老病死),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빈손으로 저 세상으로 간다(空手來空手去).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3가지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 혼자서 죽는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등이며, 모르는 것 3가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등이다.
티베트(Tibet)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가 있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로 ▲먹는 것은 절반으로 줄이고, ▲걷는 것은 두 배로 늘리고, ▲웃는 것은 세 배로 늘리라고 한다. 즉 식사는 과식(過食)은 피하고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함유한 음식을 소식(小食)을 하고, 적절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시하면서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다. 내가 웃거나 상대방이 웃거나 한 쪽이 웃으면 자연히 같이 웃게 된다.
우리는 곧잘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느냐’ ‘건강이 전부다’라며 건강을 잘 챙기자고 다짐하지만 평소 잊고 살아가기 쉬운 것이 건강의 중요성이다. 이에 지금부터 남은 인생의 날들을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855) 202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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