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술의 두 얼굴(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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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3-16 07:25본문
술의 두 얼굴(54)
유혹과 시험은 항상 친밀한 관계에서 파생된다. 인류 최초의 유혹이 인간의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인 먹는 것을 통해서 왔고 아담의 말씀 신앙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역할은 아담에게서 인류 최초의 사랑의 고백을 받았던 여인 하와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삶의 도처에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과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험거리들’이 혼재되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문화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술은 ‘약주’ 혹은 ‘독주’로 표현되듯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술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창세기 9장에 나온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20절)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술은 최초 농경문화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마시기 위해 만든 술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써 얻어진 축복의 일부분이었다. 유대인들이 술, 특히 포도주를 ‘환희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던 점(시 104:15, 전 10:19)은 추수 후 드렸던 감사제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의인이었던 노아의 도덕성의 실추(술에 취해 벌거벗음)와 가장파탄(함의 아들 가나안에 대한 저주)으로 연결된 점으로 미루어 술의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자연스럽게 부각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의 술은 예수님이 친히 술을 만들어주심으로 인간의 향연에 동참하신 가나의 혼인잔치(요 2장)에서는 기쁨의 표현으로, 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살균제(눅10:34)로,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게는 치료제(딤전 5:23)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감독이나 집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에서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딤전 3:3, 딛1:7),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딤전 3:8)라고 표현하듯 성경에는 술을 권장하는 기록이나 무조건 술을 금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성경은 명백하게 술에 대한 양극단의 태도를 다 배격한다.
반면에 성경은 술에 취하지 말 것(엡5:18)을 명령하고 있고 술취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방탕, 음란, 호색(롬13:13)과 무질서(고전11:21), 질병(호 7:5)과 부정부패(사 5:22,23)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더구나 술을 즐기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질병에 걸릴 확률이 간경화 7.5배, 자살 4.4배, 사고 3.5배, 식도암 4.1배, 위궤양 2.8배, 심장병 1.8배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증명하듯 술은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절대금주가 아닌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부여하되 술의 노예가 되는 상황이나 죄악 및 질병을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냉철하게 책임을 묻고 있다.
크리스천은 마땅히 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대화의 수단으로 음주가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술을 안마신다고 무조건 ‘의인’시 하고 술을 마신다고 무조건 ‘죄인’시 하는 풍토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것과 술좌석에서 이웃을 사귀는 것과도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무조건 술좌석을 피함으로 마치 이물질이나 반사회적인 인물로 낙인찍히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좌석에서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인격과 생활은 엉망인데 술만 마신다고 해서 성숙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주여부로 형제를 판단하거나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은 참으로 편협한 사고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주님과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이며 ‘전생활과 전인격을 통해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있느냐’가 아닐까. 그러나 주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고 자기 자신이나 형제들에게 지속적인 시험거리가 된다면 언제든지 술을 끊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자세가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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