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靑松 건강칼럼 (656)... 연명의료결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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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8-09-15 17:11본문
靑松 건강칼럼 (656)... 연명의료결정제도
인생을 마무리하는 지혜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470?-399 B.C.)는 죽음을 준비하며, “삶에서 멀어질수록 진리(眞理)에 가까워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죽음에 가까워져야 하므로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게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제4회 엔딩산업전(Life Ending Industry Expo)이 열렸다. 일본의 ‘엔딩 시장’은 생전에 자신이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확대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엔딩 산업’은 군자(君子)의 죽음은 종(終)이며, 종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죽음은 비록 슬픈 일이지만 저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관점으로 보면 기쁜 일이므로 즐겁고 화려한 장례식과 묘역(墓域)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즉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모두가 행복한 장례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묘역은 좁지만 흙 봉분 대신 석조묘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묘지가 산속이 아니라 도심이나 마을 언저리에 있어 산 자과 죽은 자가 공존한다.
몇 주 전 주일(主日ㆍLord's Day) 오후에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전문상담사 3명이 연세대학교회(Yonsei University Church)를 방문하였다. 각당복지재단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다.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즉,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중단을 항목별로 결정하고, 호스피스의 이용 계획 의향(있음/없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여러 명이 의향서에 동의하고 서명을 하였다.
‘심폐(心肺)소생술’은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추면서 온몸의 혈액 공급이 중단되는데, 이때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시행함으로써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응급처치법이다. ‘혈액투석(透析)’은 신장(콩팥)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기능에 이상이 생긴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혈액 속 노폐물이 배출되게 하는 의학적 시술이다.
‘항암제(抗癌劑)투여’는 암을 축소, 억제 제거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의학적 시술로, 암의 종류와 진행 정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항암제는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人工呼吸器) 착용’은 스스로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는 호흡부전 환자에게 인공적인 방법으로 호흡을 도와주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기도 확보를 위해 튜브를 삽입하는 기관 내 삽관이 필요한데, 이는 환자에게 상당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진정제 및 진통제 등의 약물이 함께 사용된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각종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인간은 누구나 삶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2016년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명 중 약 75%인 21만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 연장을 위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보낸다.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었으며, 2013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제시하며, 연명의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권고했다. 이에 2016년 2월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즉,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라면, 환자의 의향을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둘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하여 연명의료에 관한 자신의 의향(意向)을 미리 밝혀두는 문서이다. ‘연명의료계획서’란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같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임종할 것으로 예측되는 환자가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에 대한 사향을 계획하여 남겨 두는 문서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정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2018년 2월 4일 현재 총 49개 등록기관이 운영)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하여야 하며, 작성된 내용은 연명의료 정보포털(www.LST.go.kr)에서 개인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여 조회할 수 있다. 그리고 작성자는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병원 의사들이 임종기(臨終期) 환자에 대한 의료계획서 작성을 꺼리고 있는 이유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의사들이 의료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두 번 정도는 인터뷰 하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 자신의 입장을 밝혀놓는 것이 오히려 쉽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집중이 되어 있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명의 연장과는 배치되더라도 최대한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측면에서는 훈련이 부족하다. 의료행위와 달리 환자의 심리나 인격체로서의 존중 등은 교육 내용이 전혀 다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凱旋)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즉,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으므로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나바호(Navajo) 인디언의 ‘메멘토 모리’는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을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아라”는 교훈의 뜻이 담겨있다. 나바호족(族)은 미국 남서부 지역에 거주해온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부족이며, 인구는 약 30만 명이다.
나바호 인디언은 자신들의 구전(口傳)언어로 적군이 해독 불가능한 암호를 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에서 미군 암호통신병으로 활약하며 연합군 승리에 기여했으며, 북한(金日成)의 6ㆍ25남침전쟁(Korean War) 당시에도 만여 명이 참전했으며, 이 가운데 200여명이 생존해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90세 전후의 고령인 나바호 인디언 노병(老兵)들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하고 감사를 전했다.
미 육군 제2보병사단(미 2사단)의 부대 마크는 화이트 스타에 ‘인디언 헤드’가 그려져 있다. 즉, 흰 별 안에 인디언 추장(酋長)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필자가 설립한 한국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 of Korea) 산하 서울ㆍ대구ㆍ부산ㆍ광주 파인트리클럽에서 1960-70년대에 주한미군 모범장병들을 초대하여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한미친선의 날(Korean-American Goodwill Day)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초대된 미군 중에는 미 2사단(師團) 소속도 있었으며,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에게는 파인트리클럽에서 명예회원증을 수여했다. 한편 1971년 2월에는 한국파인트리클럽 총재인 필자가 미 2사단(2D United States Infantry Division) 사단장 메드손 육군소장(Major General S.H. Matheson)을 방문하여 감사패를 받았다. 한국과 미2사단의 인연은 6ㆍ25전쟁을 통해 맺어졌다. 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 미국 파병부대 중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으며, 유엔군(UN軍) 중 처음으로 평양에 입성했다.
우리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면서 죽음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은 삶과 죽음의 거처이며, 삶의 공간을 이승이라 하고, 죽은 뒤의 공간을 저승이라 부른다. 몸에 깃들어 있는 이승의 생령(生靈)과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사령(死靈)은 죽음을 경계로 달리 본 부름이다. ‘돌아가시다’라는 말은 이승에서의 삶을 다 살고 원래의 자리인 저세상으로 ‘돌아가서 살게 된다’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이승과 저승’이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나, ‘천당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의 경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종교문화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은 불교와 기독교이며, 죽음의 문제에 관하여 이들 종교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많다. 즉, 사후 세계가 있으므로 죽음은 단순히 기피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도약대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사후에 보다 나은 세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선행(善行)과 공덕(功德)을 쌓아야 한다.
불교의 회심곡(回心曲)에는 ‘모든 사람은 부처의 공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승에서 부처를 믿고 좋은 업을 많이 쌓으면 극락(極樂)으로 가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地獄)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내용이 담겨 있다. 회심곡은 인간의 출생에서 저승길까지 인생의 고비를 애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집중이 되어 있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명의 연장과는 배치되더라도 최대한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측면에서는 훈련이 안되어 있다. 의료행위와 달리 환자의 심리나 인격체로서의 존중 등은 교육 내용이 전혀 다르다.
고령화시대에서 ‘죽음’이 문화적 화두가 되고 있으며, ‘죽음의 문화’가 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슈카쓰(終活)가 한 해 20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슈카쓰’란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기 위한 활동을 의미하며 장례 및 묘지 준비, 유언, 상속절차와 같은 기본적인 준비와 더불어 간병보험, 은퇴 후 자산운용도 포함된다. 이는 배우자나 자식 없이 노후를 보내는 노인들이 많아 장례 절차나 재산, 주변 정리를 준비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大地震,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으로 1만9000명이 넘는 인명이 주로 쓰나미(地震海溢)에 휩쓸러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를 계기로 삶과 죽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마무리를 충실하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 사회적 관심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편 고독사(孤獨死)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대지진 이후 가족 간의 유대가 중시되면서 독신 노년층이 재혼에 도전하는 혼활(婚活)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장례문화를 개선하여야 한다. 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종활(終活)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고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656). 2018.9.1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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