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새 출발과 빛바랜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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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5-10 12:41본문
새 출발과 빛바랜 영성
도데체 이 방은 의학도의 방인가 신학도의 방인가
이건오 선생님은 부산 CCC 출신으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 밑에서 외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신 분이다. 당시 서울에 오셔서 시립병원에 계실 때무터 서울 아가페 모임을 만들어 성경 공부를 인도하셨는데 나는 그 모임의 초창기 멤버였다. 나는 그 분의 겸손함, 합리성과 초월성의 조화, 복음에 대한 열정, 환자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오직 한 길 사명을 위해 달려가는 급행열차 같았다. 나는 그 분을 보면서 예수께서 붙잡힌바 된 사명자의 삶을 묵상하게 되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2).
아가페 모임이 계속 발전하여 창동에 있는 진료소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주말 진료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본과 2학년 때부터 이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진료 경험이 없어 투약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마침 선배들이 없어 갑자기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임상 실습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이라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할 수 없이 진료에 임했다.
그날 처음 환자를 볼 때의 그 두근거리던 가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어찌 말로 다 표혈할 수 있겠는가. 그 후에도 당시 창동은 물론 목동과 상계동에서도 주말 진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가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해 여름, 최초로 무의촌 진료를 가게 되었는데 버스가 굽이굽이 대관령을 넘어갈 때의 그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진료지는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이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그때 시작된 작은 진료 보따리는 국제사랑의봉사단을 통해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디라도 가는 큰 보따리로 바뀌었다. 대학 시절에 뿌려진 꿈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 감격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이 이런 것인가.
나는 졸업 후 ‘예방의학’이라는 전공과목의 특성상, 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서울의대 예방의학 교실(연구실)에서 조교 겸 전공의 생활을 했다. 내가 예방의학을 택한 것은 사회과학을 선호하는 나의 경향에 부합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명과학은 내 적성에 그다지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가 되어 봉사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기에 의대에 진학했던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덜 좋아하는 일은 하는 만큼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공부에 시달리며 의대 생활에 눌려 있었다. 그런데 예방의학 신영수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내 전공과목이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예방의학은 환자 개인만을 치료의 대상으로 하지 않고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다. 이상적인 것은 치료보다 예방이라 할 수 있으니 여기에 투자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나의 삶을 극대화시키는 길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다른 임상 과목의 유혹을 뿌리치고 예방의학 교실에 남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이 교실생활이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요인이 많았다는 점이다. ‘지독한 예수쟁이’로 알려진 나는 남자들의 경우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시련이 더 많았다. 한번은 나에 대해 소문을 들은 어느 교수님이 내 방을 보시고는 “도대체 이 방은 의학도의 방인가? 신학도의 방인가?”라며 핀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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