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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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5-11 08:02본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61)
나는 주님이 좋다. 주님은 나의 전부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분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내 아내는 필자를 ‘하나님’ 자만 들리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칭찬 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쁘기 한량없다.
대학시절에 나의 별명은 4가지였다. ‘예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 ‘평강의 왕’, ‘황사또’ 마지막 별명은 고집이 세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고 나머지 3가지는 다 주님의 은혜로 얻은 별명이다. 비록 연약한 믿음이었지만 주님의 평강과 기쁨이 나의 삶을 지배했기에 가능한 별명이 아니었을까. 이토록 내게 주님은 좋은 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 주님을 만났다. 청소년 시절이었다면 갈등을 겼을 수도 있었겠지만 날카로운 이성의 시기였기에 만난 감격은 더욱 크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전인격적인 것이었으며 확고한 것이었다. 그 이후 외적으론 한 번도 슬럼프를 겪지 않고 현재까지 달려 왔다. 적어도 사역과 비전의 측면에선 그렇다.
받은 은혜를 따지자면 말로 형용할 수 없으리라. 문제는 주님을 만난 뒤 생긴 내면의 갈등이었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기쁨과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기도해도 열등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믿음과 성공은 함수관계가 아니었다. 예수 믿는 것이 곧 자동적인 행복은 아니었다.
큐티를 하는 날은 승리의 삶을 산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심지어 금식기도를 하고난 후에도 자기연민과 방황은 없어지지 않았다. 신앙의 선배들의 위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앙과 인격의 괴리 신앙과 삶의 간격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당혹감을 감추고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리고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그 갈등을 무마시켜 왔다. 내면의 문제를 선교 지향, 사역 지향으로 돌리면서 꿋꿋하게 버텨왔다.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처음 이십년 동안 사회적으로 자리매김 하는 과정에서도 나름대로 주님 위해 산다고 생각하며 ‘세계 복음화’라는 월드 비전에 몰입했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종교인으로 전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말로는 주님을 이야기하면서 인격의 에너지는 항상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인격의 에너지는 자신의 약점이나 콤플렉스가 있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즉 치유되지 않은 방향으로 자아의 중심이 쏠리는 것이다.
사역과 일도 주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이었다. 에너지가 끊임없이 병든 자아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그렇다. 치유의 비결은 병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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