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靑松박명윤칼럼(1044)... 무미일(無米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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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8-27 19:22본문
쌀의 날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The Jesus Times 논설고문)
필자는 86년전 1939년 일제(日帝) 시대 대구에서 태어나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한 세대이다. 당시 쌀이 귀하여 쌀밥은 명절 때 그리고 생일날에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올해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한 월드 센터럴 키친(WCK) 호세 안드레스 대표는 “음식은 인간 존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WCK는 우크라이나(Ukraine) 주민에게 2억6000만끼, 가자 지구(Gaza Strip)에서 1억4500만끼를 제공했다.
만해대상(萬海大賞)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범한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제정한 상으로 실천·평화·시문학·예술·학술·포교 등 6개 분야에 걸쳐 1997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다. 만해평화대상(萬海平和大賞) 수상자로 전쟁·재난 현장에서 따뜻한 식사를 직접 조리해 제공하는 구호 단체 월드센트럴키친(대표 호세 안드레스)이 선정됐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밥’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부족함 없이 흰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강점기 일본은 한국을 식량 공급기지로 설정하고 일본으로 최대한 많은 쌀을 이출(移出, 수탈)하기 위해 한국인의 쌀 소비를 줄이려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1937년 중일전쟁 도발 이후에는 군수식량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절미(節米)운동으로 혼식과 대용식을 강요했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한국의 쌀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는 절미 위반자를 엄하게 다스렸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도 쌀 부족 상황이 지속되어 강력한 절미운동이 전개되었다. 개별 가정에서의 절미운동과 함께 대중음식점에서도 절미와 혼·분식을 강제적으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1969년 1월 23일 고시한 행정명령으로 모든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여 판매해야만 했다.
‘무미일(無米日)’이란 ‘쌀’을 먹지 않는 날을 말한다. 1970년대까지 쌀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混粉食)을 장려하고 쌀 절약을 권장하도록 국가에서 정한 날이다. 1970년 식품위생법 조항에 무미일 조항이 신설되어 음식점에서는 매주 수·토요일 점심 식단에 쌀밥을 판매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도시락을 검사해 쌀밥을 싸온 학생들에게 체벌까지 했다. ‘혼분식의 노래’가 학교에서 울려 퍼졌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은 사람 신체 건강해”
안정적인 식량 생산과 보급은 국민의 생존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의 정치·경제·사회의 안정을 의미했다. 특히 한국은 급속한 공업화 및 인구팽창 문제에 직면하여 식량의 대량 생산 및 낮은 곡가(穀價)를 필요로 했다. 이에 농촌진흥청 주도로 1971년 ‘통일벼’가 개발되었고, 이후 전국 농촌에 보급되었다. 통일벼가 보급되자 1977년 쌀 총 수확량은 1960년대 말에 비하여 30% 이상 급증했다. 증산에 힘입어 정부는 1977년 ‘녹색혁명(綠色革命) 성취’를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녹색혁명’을 통해 통일벼가 대량으로 보급되어 1976년 드디어 쌀 자급에 성공하였고 다음 해에도 풍년으로 1977년 국내 쌀 생산량이 4,000만 석을 돌파하였다. 이에 국민의 배를 든든히 채워준 쌀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혼분식 장려 및 절미를 위해 1969년부터 시행된 행정명령이 1977년 1월 1일 자로 해제되면서 ‘무미일’도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매년 8월 18일은 ‘쌀의 날’이다. 우리 농작물 중 국가기념일로 정해 그 의미를 기리는 건 쌀이 유일하다. 8월 18일 이 날짜가 특별한 이유는 한자(漢字) 쌀 미(米)에서 찾아볼 수 있다. ‘米’를 풀어보면 팔·십·팔(八·十·八)로 이루어져 있으며, 쌀 한톨을 생산하기 위해 여든여덟(88)번의 농민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쌀의 날’은 쌀의 가치 확산 및 소비 촉진을 위한 날이다.
올해 제11회 ‘쌀의 날’ 기념식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립농업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올해의 주제는 “쌀, 힙해지다”였으며, 쌀은 젊은 세대도 즐길 수 있는 트랜디(trendy)한 식재료로 재해석한 것이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쌀’ 시상식이었다. 국민평가단과 전문가 평가단이 6주간 식미, 외관, 향, 윤기 등을 종합 평가해 횡성 쌀 ‘어진사미’가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백반기행’ TV프로그램에서 쌀 주산지인 경기도 이천의 한 쌀밥집에서 ‘식객’ 허영만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방송인 박수홍과 마주 앉았다. 이들은 이천 쌀로 갓 지은 돌솥밥을 앞에 놓고 “무더위에 밥만 한 보양이 없다”며 서로가 생각하는 밥심과 거기 얽힌 추억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 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에는 ‘밥심’이 있고,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장수국가이자 국민들 모두 피부마저 좋다”며 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박수홍은 윤기 자르르한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서 “밥알이 꼭 보석 같고, 입안에서도 살아 있다”며 “없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다”고 감탄했다. 허영만도 “우리쌀로 지은 밥을 먹다보니 고소하면서도 참 달다”고 호응했다.
필자도 집에서는 주로 쌀과 잡곡으로 지은 밥을 먹지만, 가끔 외식할 때 흰쌀밥을 즐겨 먹고 있다. 우리집 인근 월드컵경기장 2층 홈플러스 푸드코트에 있는 채선당에서 따끈한 돌솥밥과 구수한 청국장을 맛있게 먹곤 한다. 흰쌀밥을 그릇에 퍼고 돌솥에 물을 부어 만든 누룽지도 맛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양곡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부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kg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쌀 소비량 감소는 확고한 흐름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미세한 변화가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비자들의 ‘일반 밥’ 섭취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22-23년 대비 2023-24년의 흰쌀밥 섭취 빈도는 4%, 잡곡밥은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의 소비자패널 자료를 통해 즉석밥 구매 추세를 분석한 결과, 2016년에는 210g 미만 즉석밥의 구매 비중이 27%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43%까지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지표는 한국 소비자들이 양적인 측면에서는 밥을 과거보다 ‘더 적게’ 먹지만 횟수는 ‘더 자주’ 늘려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식사 마지막에 밥을 두어 숟가락 곁들여 먹는 식습관이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인은 이제 허기(虛氣)를 채우던 ‘고봉밥’이 아닌 ‘입맛 돋울 쌀’을 선호하고 있다.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적게 먹어야 하고, 그래서 이왕 먹을 때 내 입맛에 맞게 먹겠다는 성향을 보인다. 이에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은 ‘고품질 쌀’이 시장에 나와야 한다. 밥맛을 평가하는 요소는 ▲아밀로스 함량 ▲단백질 함량 ▲젤화 온도 ▲쌀 외관 ▲밥의 향과 보존성 등이다.
쌀은 다당류 아밀로스(amylose) 함량이 높을수록 푸석거리고 적을수록 찰기가 많아진다. 밥맛이 좋게 평가되는 함량은 16-18%이다. 단백질(protein)도 함량이 높으면 밥이 딱딱하게 느껴지고 탄력과 점성이 떨어져 6.0-6.5%가 좋은 밥맛이 느껴지는 구간이다. 전분이 익는 온도를 뜻하는 젤화(gel化) 온도는 섭씨 71-74도가 적당하다. 너무 낮으면 쌀이 쉽게 퍼지고, 높으면 설익은 식감을 유발한다. 밥은 고소하고 담백한 향이 나며, 식어도 쉬이 굳지 않아야 한다.
쌀 20kg의 소비자가격이 6만원이라면 밥 한공기용(120g) 쌀값은 361원이며, 하루 세끼를 꼬박 먹어도 1083원으로 껌 한통 가격에 지나지 않는다. NH농협(농업협동조합)은 신문광고에 “밥의 힘을 믿자, 삶의 힘을 얻자”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사랑하는 밥, 우리는 지금 밥심으로 살아갑니다. 밥 먹는 대한민국! 농협이 함께 합니다”라고 적었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 박명윤 칼럼(1044) 2025.8.26.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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