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반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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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7-05 08:30본문
반달 할머니
반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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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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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다니던 직장이 도산하고 졸지에 실업자가 된 남편은 낮엔 해를 친구 삼아 밤엔 달을 이웃 삼아 30여 곳에 이력서만 넣고 다니며 취업 문을 두드린 결과 드디어 합격이라는 영광을 거머쥔 게 자랑스러웠기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치고는 시댁과 처가댁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드디어 출근하게 된 첫날 “여보…. 여보 잘할 수 있제?“ ”오늘부터 그 회사는 내가 확 접수 했뿔끼니까네 걱정 마라““
”너거들 뭐 하노 아빠 첫 출근이신데….“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준비하는 딸과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의 열열한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 남편 "죄송합니다…. 동명이인이 있어서 저희 직원이 착오가 있었네요" 그날 그 길로 저는 소선생(소주)과 친구가 되어 새벽을 달리다 들어온 모습에 ”당신…. 오늘 거하게 환영식 받았나 보내“실망할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답 대신 진한 술내를 풍기며 잠든 척 연기를 했지만
몇 시간 후 다가올 아침을 어떻게 맞을지 밤새 궁리만 해대다 아내를 실망 시킬 수 없었던 남편은 마트에서 카트 정리를 하는 일용직 알바를 하고는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랜 뒤, 해 저문 저녁 대리운전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꼬르륵“ 다시금 울려대는 배꼽시계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저녁 아홉 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칠 시간 임미데이“ ”알겠씸미더” “아직 저녁을 못 드셨슈?” “아. 네 일하다 보니 저녁 먹을 때를 놓쳤뿐네예”
“그럼 거기 아무 데나 앉으슈 남은 국수로 한 그릇 후딱 말아다 드릴 테니….” 뛰어도 달려도 제자리걸음이 돼버린 인생을 삼켜버릴 듯 국수 국물을 들이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던 주인 할머닌 “아이고 맞네…. 맞아 그때 그 사람이 맞구먼” 남편도 그제야 주인 할머니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그 할머니란 걸 알게 되었는데요 “손자는 유치원에서 기다리고 있고 선생님은 부모님 생신이라 퍼떡 가야 한다고 하고…. 그때 참말로 고마웠심더.“
“빨리 가셔서 손자를 만나셨다니 다행이네예“ “다 손님 덕분이라예” 그때 워낙 겨를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며 내미는 소주 한잔을 받아든 남편은 자폐증인 손자를 홀로 돌보는 할머니의 애간장 녹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답니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손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남편이 서 있는 자리를 양보하고 맨 뒷줄로 가준 남편 덕분에때마침 온 좌석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지난 고마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할머니와 두 다리로 걸어왔던 지난 이야기를 소주잔에 실어 보내며 땡벌 같은 하루를 마감하던 두 사람은 ”그럼 좋은 직장 구할 때까지 우리 식당 주방에서 일해보는 건 어떻는교?“
자네처럼 마음 따뜻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그날의 그 인연으로 다시 만나 시곗바늘처럼 일하던 어느 날 “니 나랑 오늘 같이 갈때가 있데이”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다녀오시는 곳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곳을 함께 가자는 말에 “이 밤에 어딜 가실라꼬예“ 따라나선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쪽방촌이 모여있는 골목이었는데 남편은 할머니를 따라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먹거리와 속옷들을 문 앞에 두고 나오서는 “할머니…. 낮에 뵙고 드리시지 왜??“
“뭐 대단한 거라고 동네방네 애고 펴고 주겠노 그라고 우리 나이쯤 되면 남이 주는 걸 받는 게 숙쓰러운 나이데이“ “할머니도 넉넉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나는 저 분들에 비해 쪼매 나은 형편이 주어진 거에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기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행운이 주어진 것뿐이라는 할머니 말에 “다들 그 행운을 지키려 아둥바둥 사는 거 아임미꺼?“
“그만큼 누렸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좀 더 가진 사람의 태도가 아니겠나“ 몸은 고되지만, 마음 부자가 된 것 같은 행복감에 둘만의 세상을 그리다 한적한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밤하늘을 밑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저기 저 반달같이 살아야 한데이“ “할머니…. 꽉 찬 보름달처럼 살아야지예“ 애미 애비없는 손자와 같이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세월을 살아오신 할머니는
“꽉찬 둥근달은 줄어들 일만 남았지만도 저 반달은 둥근 달이 되기 위해 열심히 차올라 안가나 인생도 저 반달처럼 살아야 되는기다“ 더 깊은 이야기는 죽어서 신께 물어보라며 웃고 계신 반달 할머니의 따사로움을 어느덧 닮아가고 있었습니다내 손에 없는 내 것만 찾다 가는 사람들 속에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내 손에 있는 내 것을 나눠줄 줄 아는 하루를 사는 따뜻한 자네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자네가 이 국숫집을 맡아서 해보거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심미꺼?” “나도 이제 좀 쉬고 싶다 손주 놈도 도시보단 시골에서 사는 게 좋을 듯 해서 말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가지고 놀던 주사위를 던져 보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뭔 숫자가 나왔노?" "1이네예" "1 밑에 있는 더 큰 숫자 6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데이" 내일은 우리의 오늘이 만들어 간다며 잠든 별들이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남을 돕는 그날을 내가 살아갈 나의 첫날로 잡아보라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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