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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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3-08-12 13:12본문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25,26)
◀ 말씀:소진우 목사(예복교회 담임/지저스타임즈 사장)
제목 : 새 삶을 시작하라
성경: 마 3:13-17절 찬송 347장
새로운 삶을 위해 먼저 낡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복음의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해 먼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는 옛것을 철저히 죽고 씻는다는 의미와, 물에서 나옴으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하나님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워지고 새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하늘을 열고 다가오시는 성령님을 모셔야 합니다. 홀로 하나님과 말씀과 기도로 독대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셔서, 하늘 문이 열리는 깊은 경험을 하시고 삶이 새로워지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제목 :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
성경 : 마 5:43~48절 찬송 290장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한 최선의 윤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할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는지요? 바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늘 아버지처럼 우리가 완전해지는 길은 말없이 평화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처럼 원수까지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 : 하나님이 보시게 하라
성경 : 마 6:17~18절 찬송 298장
금식은 종교 체험의 방편이 아니라 죄책과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스스로 육체적 먹을 것을 끊음으로써, 잘못된 모든 행실을 끊고, 죽기로 구원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이켜서 오직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도 돌이켜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금식이 사람 앞에 보이는 형식적 의례로 변질되어 간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철저히 끊어 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끊고, 내 욕심을 끊고, 내 행실을 끊는 것입니다. 금식은 무엇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금식은 다만 하나님 앞에서, 다만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 그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제목 : 시험을 이깁시다
성경: 마 4:1~11절 찬송 342장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빵은 돌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빵은 땀과 눈물로 ,노동과 사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생명을 바쳐 스스로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꼭대기가 아니라 맨 밑바닥에 서셨습니다. 꼭대기에 오르게 되거든 언제나 조심하십시오. 세상의 영광을 얻는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이익이 되는 곳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그 대가였습니다. 주어지는 시험을 잘 분별하고 주님이 앞서 지혜를 주셨듯 말씀의 지혜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제목 :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길
성경 : 마 5:11~12절 찬송 283장
산상수훈의 큰 전제는 바로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산상수훈의 첫 가르침이 바로 '팔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거듭되는 9번의 '행복'의 탄성으로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는 일은 기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은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비난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박해를 당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그 어떤 유혹도, 죽음도 빼앗지 못할 기쁨입니다. 기쁨의 뿌리를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기쁨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제목 : 등불을 밝혀라
성경 : 마 6:22~23절 찬송 384장
나는 빛이라고 우기는데, 정작 그것이 어두움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꺼진 등불을 보고 다녀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처럼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1)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어두운 세상에서 자기들만은 밝은 등불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3)그러나 그들이 자랑하는 빛은 빛이 아니었습니다. 본질은 버리고 형식과 탐욕에 사로잡혀 길 잃은 사람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바리새인들의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자신의 등불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나의 눈이 밝다면, 나의 몸도 환하다면, 나의 길이 바르고, 나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내 안에 있는 빛은 참 빛일 것입니다.
제목 : 기도의 방향이 어디로
성경 : 마 6:33절 찬송 368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염려(추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이미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예비하셨고, 날마다 은총으로 그것들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호흡도, 돌봄도, 만남도, 열정도, 지혜도) 그러나 무엇보다 먹고 입고 마시는 삶, 오직 연회의 쾌락과 방탕에 목숨을 건 삶에는 결코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목 :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성경 : 마 7:7~12절 찬송 369장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산상수훈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전체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6장> 예수님은 먼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본래 '기도'라는 히브리말 자체가 "나를 찟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기도란 나를 찢는 것, 나를 포기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절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벌써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십니다.
제목 :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성경 : 마 7:12절 찬송 218장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싫은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뭔가 해야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하면, 그때는 '나와 남'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남'이 '나와 너'가 되고,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목 : 좋은 나무의 열매
성경 : 마 7:19-20절 찬송 420장
예수님은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려면, 그 열매를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하나님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시지만, 악인은 삼사 대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무를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데 계속 좋은 열매를 맺을 테니, 잘 지켜 주고, 씨를 남겨서 자손 대대로 보존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라면 삼 사년 기회를 줄 수 있겠지만, 결국은 잘라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 좋은 나무는 못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연결되어있는 나무라면,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좋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제목 : 예수님이 주시는 칼
성경 : 마 10:34-39절 찬송 461장
마태복음10장에서 예수님은 부름받은 제자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본문 바로 앞 12절에서,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제자들은 분명히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또한 칼을 지녀야 합니다. 여기 칼은 예수님이 주시는 칼이라는 것입니다. 이 칼은 안으로 나를 향한 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전하는 일은, 또한 나 자신을 향하여는 칼을 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칼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욕심을 끊어내고 탐욕을 잘라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칼입니다.
제목 :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경 : 마 11:29-30절 찬송 449장
예수님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부르시고 편히 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평안하게 하실까요?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내 멍에를 메라'고 하셨습니다. 짐을 포기하라거나 무시하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멍에는 짐을 효율적으로 잘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짐이 있나요?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감춰두신 은총일지도 모릅니다. 기꺼이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울 수 있다면, 평안 또한 누리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주님은 우리와 멍에를 함께 메자고 하시네요.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는 편합니다. 주님과 함께 지는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제목 : 진정한 주인을 모셔라
성경 : 마 12:43-45절 찬송 455장
예수님은 빈집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집의 문제는 '비어 있는'데 있었습니다. 더러운 영이 나갔을 때, 깨끗한 영, 새 주인이 들어와야 했습니다. 주인 없는 집은 깨끗하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집을 깨끗하게 청소한 것이 되레 화근입니다. 병 속에 있는 공기를 다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기를 뽑아 진공을 만들면 되겠지요. 그러나 그 진공상태는 작은 틈만 생겨도 다른 공기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서 가득 차게 됩니다. 병에 맑은 물을 가득 채워보십시오. 그러면 물이 차는만큼 공기는 빠져나갑니다. 맑은 물로 가득 채운 병에는 다시 공기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집을 어지럽히는 일곱 악한 영을 쫓아내려면, 거룩한 영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 나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제목 : 곡식이 다치지 않도록
성경 : 마 13:27-30절 찬송 305장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가리지를 본 일꾼들이 한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주인의 대답이었습니다. 주인의 마음은 가라지를 없애는 것보다 밀을 다치지 않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나쁜 것을 심판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구원하는데 주님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악한 세상의 심판을 유보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밀은 가라지와 함께 자라도 가라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내버려 두는 농부는 가라지가 아니라 밀을 믿어 줍니다. 가라지가 극성을 부리는 기간은 추수 때까지인 것처럼, 악은 심판 때까지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가 아니라 밀을 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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