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제3장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사도영성 신학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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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3-16 07:45본문
4) 십자가에 표출된 사도영성
십자가를 부활보다 더 강조하는 것은 서방 기독교와 종교 개혁의 전통이다. ‘십자가 신학’이라는 표현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자기 신학을 스콜라 신학과 구별하기 위해 지칭한 것이다. 그가 ‘영광의 신학’(theologiagloriae)으로 단정한 스콜라 신학은 ‘자연의 찬란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하는 반면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유일하고 참다운 인식이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인식’이라고 단언한다.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Heidenberg Disputatation)에서 루터는 참 신학(혹은 참 신앙)의 본질을 ‘십자가의 신학’(theologiacrucis)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그의 위대한 능력과 기적적 행사와 영광된 모습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만나고 알려는 신학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이 세상에서는 가장 무력한 힘없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적인 자기부정, 자기 포기, 자기의 죽음, 그리고 끝없는 자기 비움과 겸허와 희생을 의미한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십자가로 인도되고, 상호 연결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참사랑의 비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 것 같이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도 우리 자신의 진정한 죽음과 포기와 자기부정의 고통 속에서 드러나고 알려진다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신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활동을 힘입어 우리의 영혼이 참으로 새로워지고 변화되어 참 의인이 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신앙의 힘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철저한 섬김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루터의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the Cross)이다.
‘루터’는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했고, ‘칼 바르트’는 “나는 십자가만 쳐다보면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E. 케제만’도 ‘십자가가 부활하신 분의 부호로 머물러 있다’고 하며 “사람들이 항상 부활의 영광을 아무리 높이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영원한 통치 이외에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거짓된 신앙만을 일으킬 뿐.”이라고 한다. ‘H. 메르클레인’에 의하면 ‘바울은 부활 복음이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에 대하여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는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결정적인 구원 행위가 된다’고 하였고, ‘H 콘첼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중에서 십자가가 그 절정을 이룬다고 하였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에 의해 처해지기 전에 죄인의 공개적인 죽음을, 이에 수반되는 치욕적인 고난을 가리켰다. 십자가 자체 안에는 죄인의 당연한 벌, 고통과 죽음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죄와 고통과 죽음을 진지하게 다룬다. 반면에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의인의 부당한 죽음, 무죄하면서도 부당하게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고난과 치욕적 죽음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기 죄와는 전혀 무관한 고통의 의미,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악의 정체를 밝혀준다. 또한 십자가 사건 안에는 세 주역이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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