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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기배우 남석훈, 54년만에 조국땅 밟아!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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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2-01-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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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배우 남석훈, 54년만에 조국땅 밟아![2]

- 조선악극단 창시자 남명덕과 숭실여중고 무용 가야금 전공자 오명심

- 영화 제작준비중인 작품

- 화가로의 삶 -남석훈 세계적인 화백으로 컴백하다

 

남석훈 딸과 함께.jpg

 

남석훈(82)은 평양에서 악기상을 운영하던 남명덕과 숭실여중고에서 무용과 가야금을 전공한 오명심을 통해 평양 신양리 19번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20세 때 상해로 가서 몇 년간 각종 악기를 배워 조선악극단을 세웠고 무대가 없어 학교 강단을 빌려 연습과 공연을 해 왔다. 오늘날 BTS와 같은 케이팝 스타들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유행가는 찬송가를 한국의 창을 가지고 바꾸어 가요가 나오게 되었다. 아버지 남명덕의 일본인 친구이자 애제자 고가마사오는 일본으로 건너가 뽕짝스타일을 접목하여 대유행을 시켰다. 뽕짝은 조선에서 먼저 시작된 노래이었지만 일본이 먼저 레코드 회사를 차려 대중화시킨 뒤 조선으로 다시 들여오게 되었다.

 

- 남석훈의 유년시절

한참 재롱을 피우던 다섯 살 때 서울로 이사 왔지만 남석훈이 7살 때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아무도 없는 데서 어머니 오명심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홀로 지켜보았고 고아처럼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는 아내의 시신 옆에서 3일을 같이 자며 아쉬움을 달래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명심이 세상을 떠났을 때 최민수의 어머니이자 연극의 천재라 불렸던 전옥이 장례를 함께 치러주며 가장 친한 친구의 영별을 아쉬워했다.

 

12살 때 독립문 형무소 옆 영천에서 육군군악대장인 아버지가 6.25때 아들 남석훈을 혼자 놓아두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9.28 수복 때 올라와 아들을 데리고 함께 거제도로 내려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근처 거제도 수월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산 중턱에 있는 집에서 수용소가 내려다 보여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옆집에 살던 두 살배기 어린 문제인을 만나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내며 함께 놀고 보살펴 주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이 겨란 장사를 했는데 포로들은 배가 고파 미군복 옷과 겨란 꾸러미를 맞바꾸어 허기진 배를 채웠고, 등 뒤에 PW라고 적힌 수용소 미군복을 물들여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버지는 남석훈이 12살 때 재혼해 거제도에서 딸 양순이를 낳았는데 집에 혼자 있다 불이나 남석훈은 까맣게 타버린 여동생을 담요에 쌓아 산에 가서 묻어준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15살에 춘천에 가서 춘천중학교를 다녔고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워 1957년 서울로 올라가 서라벌 고등학교에서는 장차 영화감독이 되고자 관련된 공부에 집중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노래와 연극 등 재주가 많아 미 8군에 취직을 하였다. 그 당시 이미자도 같은 쇼에 나가고 다들 어려워 한방에서 옹기종기 지낸 적도 있었는데 어린 이미자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10살 때부터 노래를 불러 아버지가 지병으로 가세가 기울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생계를 도왔다. 남석훈의 연기 데뷔작은 <두만강아 잘있거라>(임권택, 1962)이다.

 

- 영화 제작준비중인 작품

싸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강남스타일 영화와 한국인과 미스 사이공의 사이의 아이가 키도 훤칠하고 축구에 기가 막힌 천부적 재질을 나타내며 베트남의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의 감동 스토리 기적의 도전(Miracle Challenge)”이 방글라데시에서 조만간 촬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촬영지; 방글라데시, 시나리오 작가: 남석훈, 박항서 감독역: 이경철, 박항서 감독 아내역: 김연재, 기획/디자인: 최상근, 감독코치: 윤범호, 월남 트레이너: 김동선, 건강식단 주방장: 김광철, 기타 주요배역은 세계적인 스타들로 향후 발표될 예정이다.

 

통일강산 남석훈 화백의 작품.jpg

 

*화가로의 삶 -남석훈 세계적인 화백으로 컴백하다

남석훈 화백의 그림 톤은 우중충한 색에서 탈피해 밝은 톤을 주로 쓴다. 피카소 아버지는 미술교사였는데 피카소에게 몇 년 동안 비둘기 발만 그리게 해 그의 천재성을 키웠다. 남석훈 화백은 40년 이상 그림을 피카소처럼 그려 왔는데 하루에 그림 두 장 이상을 그리지 않으면 잠을 안 잘 정도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다는 사실이 남석훈이 오늘날 화백으로서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국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집사의 신분으로 ‘2020 다니엘기도회 초청강사로 오직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며 50년간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오면서 한국색채심리협회가 주관한 만다라를 통한 미술치료 저자 수잔 핀쳐 초청대회에서 만다라(Mandalas)의 한국 대표로 선정되어 수잔 핀쳐와 함께 워크샵을 진행해 미술계에 화재를 모았던 미술치료 전문가 김연재연구소-엘 대표 김연재 교수는 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meesool)에서 남석훈 화백의 그림 열정은 순박한 사춘기 남학생의 끼를 보여 주다가도 넓은 대륙을 달리던 기마병의 기상을 담아내기도 한다고 말한다.

 

짙고 밝은 보색의 조화는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와의 거리를 좁혀 나가 본인의 내면에 충실하다. 짙푸른 초록에서 고운 핑크색 톤과 흰색의 조화로움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화백만의 고유한 터치와 색이 있다. 남석훈의 예술세계는 고독과 기다림과 하나님의 은혜와 인내의 시간을 볼 수 있다. 반복적인 선의 방향과 다양한 소재에서 보여 주는 메시지는 화백의 이루지 못한 꿈의 간절한 외침이다. 소명의 끈을 절대 놓칠 수 없는 작가의 혼과 한과 영감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뭉크의 절규 작품에서도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자신의 공포와 두려움을 묘사하고 있고, 반 고흐도 외로운 심경을 하늘에 담아내었듯이 남석훈 화백의 그림에도 오로라를 표현했고 하늘 표현에서 고국을 떠나온 그 당시 심경을 표현했다. “코리아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어 오면서 살아왔다. 예수님은 늘 나에게 은혜를 준 삶을 주었다.”고 고백하는 남석훈 화백은 알래스카와 이십 여개 나라를 돌면서 격변기에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영감을 받아 남석훈 화백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담아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20211212_203149.jpg

 

<눈 위에 걸어가는 사슴> <눈 위에 쓸쓸한 집> <양치는 예수님> <꽃 속에 미녀> <콧속의 천사> <금강산> 남석훈 화백의 몇몇 작품을 통해 마음 깊이 감상하며 남 화백과 함께 깊은 작품의 세계로 녹아 들어가 본다.

 

다음 시간 3부에서 게재됩니다.

지저스타임즈 펀집국장 정기남 / 이경철 기자(jtpress@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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