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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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11-01 06:43본문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제 목 :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하라
성 경 : 삼상 2:17 찬송 412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여호와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삼상1:3). 그러나 이들은 제사를 멸시했다고 합니다. ‘멸시’의 뜻은 하찮게 여기고 가볍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하찮게 여길 수 있습니다. 직분이 그 사람의 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습니다(삼상2:18). 홉니와 비느하스도 에봇을 입었지만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주님 앞에 헛수고가 되지 않게 예배하고 찬양 한 곡도 온 정성 다하여 드리시길 바랍니다.
제 목 : 먼저
성 경 : 마 6:33 찬송 96장
본문에서 먼저란 절대적인 의미로 ‘무엇보다 먼저, 첫 번째로’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것은 어느 다른 것과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에 적합한 삶을 구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삶이 주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믿는 않는 자들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제 목 : 떠나지 말게 하며
성 경 : 수 1:1~9 찬송 27장
우리는 무엇을 할 때 낙심이 되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은 우리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낙심과 안주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무데나 가면 안됩니다. 십자가와 하나님 나라 바라보고 거북이처럼 푯대 향하여 가야 합니다. 푯대가 없으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방향을 잃지 않고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 주신 말씀에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떠나고 안 떠나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내가 바라는 한가지
성 경 : 시편 27:1~6 찬송 365장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24:4). 원문에는 ‘한 가지 일’이 이 맨 앞에 기록되어 강조하고 있고, ‘바라는’은 완료시제로서 다윗이 이 한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계속 요구하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생존할 모든 날 동안에 여호와 집, 곧 성소에 거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성소에 상주 할 것을 소원했다는 것은 아니며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아는 것에 집중되기를 소망합니다.
제 목 : 나음을 얻었나니
성 경 : 벧전 2:24 찬송 472장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결과가 이를 믿는 성도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사야 53장 5절을 인용하면서 주님께서 대신 고난 당하신 결과 죄인들이 혜택을 입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타박상이며 깊은 상처를 예수님이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는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기에서 죄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 영혼이 평안을 얻게 된다는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치유와 회복을 주신 주님만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제 목 :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성 경 : 사 5:1~7 찬송 391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있는 옥토 같은 가나안 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2절 말씀같이 돌 같은 가나안 족속들을 다 내쫓아 주었습니다. 포도원에 망대를 설치했듯이 성전을 세워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그 안에 술틀을 만들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 평안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 목적은 땔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열매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나쁜 열매를 맺어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정의와 공의의 열매였으나 포학과 포학으로 인한 부르짖음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나요?
제 목 : 그 하나님의 은혜가 1
성 경 : 룻 4:13~17 찬송 300장
성경에 보면 출생에 대한 기록이 있는 자와 전혀 없는 자가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나오미 가문에 대를 이을 자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오미 가족은 유다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어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땅 모압지방으로 떠나게 됩니다. 나오미의 고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약속의 땅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영적 고통이 가장 힘든 것입니다.
제 목 : 그 하나님의 은혜가 2
성 경 : 룻 4:13~17 찬송 308장
우리는 마음 놓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시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하러 갔다가 예배가 파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경험합니다. 사별의 고통과 경제적 고통까지 받습니다. 나오미와 며느리 룻은 다시 약속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와서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어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찾아와 주셔서 이삭 주어 먹던 땅 주인의 남편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곤고할 때 찾아와 주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제목: 하나님의 심판은
성경: 시편 38: 10~11 찬송 400장
상처의 원어적인 뜻은 한 번 내려치기, 한 번 바람이 불기입니다. 여기의 한번 내려치기란 하나님이 인간 위에 내리신 재앙이나 심판이란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그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까지도 그를 멀리했다는 문맥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한 번이자 엄청난 크고 무서운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제목: 문제보다 더 크신
성경: 시편 38:12 찬송 545장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라는 말은 이것을 본 시편 기자가 약해지고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린 사실을 이용하여 대적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고 기억할 때는 그 문제를 능히 감당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지만 문제를 하나님 보다 크게 본다면 우리는 문제 앞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제목: 누구를 기쁘게 하랴
성경: 시편 38편 16~17 찬송 333장
본절에서 저자는 자신의 힘이 거의 고갈되어서 계속되는 죄악 속으로 넘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혹은 가중되는 짐 때문에 자꾸 가라앉고 있는 그래서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승리의 쾌재를 부를 기회를 제공하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박수치고 좋아 할 일에 목숨 걸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어둠의 권세들과 영적전쟁을 선포하며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내 삶을 드리며 삽시다.
제목: 그의 시련이 주는 바 된 교훈
성경: 시편 38:21~22 찬송 429장
그의 시련은 하나님 앞으로 그를 인도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고통과 시련이 의도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시련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시련은 괴로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시련의 종국적인 목적도 달성치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련과 괴로움을 고난과 고통으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며 하나님이 주시기로 예비한 복을 앞당겨 받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써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제목: 나의 각오는
성경: 시편 39편 1절 찬송 95장
여기의 각오는 혀로 범죄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불평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중얼거림으로 잘못 비추어질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신음하나도 응답하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내 안에 있다면 무조건 긍정 할 수 있습니다. 내 입술이 좋은 날 보기위하여 내 입에서 거짓을 멀리하며 복 담길 그릇이 되기 위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제목: 억누를 수 없는 감정
성경: 시편 39:2~3 찬송 205장
그 감정의 불꽃이 솟아올라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는 도저히 그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그 감정을 말로 토해 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감정과 아픔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려 하지 말고 전능자의 손이 나 자신과, 내 가정, 내 기업에 간섭하여주시길 간구합시다. 그분의 섭리와 은혜로만 충분합니다.
제목: 신앙의 여정
성경: 시편 39:4~5 찬송 341장
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손가락을 가지런히 포갠 한 손바닥 폭의 직선 길이로 10cm 정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수명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몹시 짧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탄생과 죽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며 우리는 그저 신앙의 여러 갈림길 속에서 만나는 선택 속에서 주님 편을 택하며 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그 여정을 완주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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