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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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10-01 20:38본문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제 목 : 복음을 위하여
성 경 : 빌 2:19~30, 찬 25장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도록 빌립보 교회에서 파송한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그는 죽을병이 걸릴 만큼 바울에게 헌신적이었으며 본 서신서의 전달자입니다. 그는 바울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며 복음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한 형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위하여 함께 합시다. 함께 수고합시다.
제 목 :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1
성 경 : 롬 14:13~23, 찬 314장
바울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는 문제로 분쟁하지 말고 서로 간에 섬기는 마음으로 배려할 것을 말씀 가운데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 아닌 일에 목숨 걸지 맙시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14:13). 내가 먼저 평안해야 평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보게 됩니다. 내가 불안하면 모든 상황이 문제요 불안하게 보입니다. 내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포용력 있는 믿음을 가지길 바랍니다.
제 목 :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2
성 경 : 롬 14:13~23, 찬 312장
구원의 본질에 나를 죽입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나의 뜻을 굴복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자입니다. 그런데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공동체 안에서 수군수군하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께 토로합시다. 수군수군하지 말고 소곤소곤하며 서로를 칭찬합시다. 성령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성령에 이끌려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왕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한다면 기쁘게 감사함으로 덕스럽게 복이 되게 말없이 끝까지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 목 : 스승보다는 아버지로
성 경 : 고전 4:10~16 찬 254장
스승은 사명 쪽이 강하다면 아버지는 사명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거는 쪽입니다. 스승은 가르치기는 하지만 제자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교회와 성도를 향하여 영적으로 권면하는 일에는 스승의 마음, 즉 가르치는 쪽의 마음이 아니고 정말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식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할 때 스승의 마음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 영혼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까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다려주고 참아줍시다.
제 목 : 불쌍히 여기소서
성 경 : 막 10:46~52, 찬 292장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막10:48) 이와 같은 바디매오의 모습을 통해 응답받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앞서 가던 무리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이것은 바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주신 기회를 놓치고 삽니다. 기도할 기회가 주어져도 장애물들이 가로막습니다. 그 장애물들은 기도를 못하게 하는 수많은 이유들입니다. 그러나 기도 못하는 이유들은 그저 모두 핑계일 뿐입니다. 바디매오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 더욱 소리 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가던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제 목 : 먼저 그리고 그 후에
성 경 : 눅 14:25~35, 찬 321장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에서 우리가 그분을 따르려면 그분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름지기 모든 일을 할 때는 먼저 계산을 한 다음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너희들도 날 따르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는지를 계산해보고 결정해라, 날 따르는 것이 세상 모든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처럼 먼저 계산해보고 던질 것은 던지고 버릴 것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일에 내 물질을, 내 시간을, 내 건강을,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는지 먼저 계산해보고 가치가 있다고 믿어진다면 그 후에 주님을 따르는 데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철저히 버리고 던지고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제 목 : 그렇게 하라
성 경 : 눅 10:1~9, 찬 455장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 특공대를 둘씩 짝지어서 보내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전도자의 자세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자로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것 중 하나는 양이 이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것과 같은 상황에서의 담력과 담대함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상 것에 연연하지 말고 목적이 전도와 선교와 천국이라면 거기에서 이탈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갈지라도 항상 언어에 덕을 끼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제 목 : 그 날에
성 경 : 신 31:14~23, 찬 406장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가면 게으를 것도, 아까울 것도 없고 인색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인생 가운데 서로 아웅다웅 싸우는가 하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붙잡고 쓰시던 그도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누구도 그 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시지만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통해 그분의 일을 이루게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 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동안 변질되지 않도록 훈련하십시오.
제 목 : 오직 예수로
성 경 : 요 14:1~6, 찬 288장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1-6).
우리가 부산을 가려면 부산행 티켓을 끊어야 가는 것처럼 천국행 티켓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천국은 착하게 산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가리워지고 씻김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의인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가는것입니다. 우리가 저 집에 가는 것은 저 집 아들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지 아들로서 모든 면에 떳떳해서 가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즉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제 목 : 그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 경 : 행 9:1~9, 찬 310장
성경에서 크게 쓰임 받는 자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철저하게 자기들의 과거를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자기의 잘못된 과거를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철저히 끊어버리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라 하면서도 인간의 비위를 맞추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세상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철저히 자기 과거를 버리고 내가 무엇을, 얼마나 했다고 자랑하지 않으며 오직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제 목 : 쉽게 가볍게 가랍니다
성 경 : 마 11:28~30 찬 589장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짐 지는 요령이 없어서 수고하고 무거워한다는 것이며 짐을 지는 방법은 바로 온유와 겸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할 때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의 짐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벼운 것이었을까요? 찔리고 매 맞고 죽음의 잔을 마셔야 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신 것은 감사를 놓치지 않고 일하면 가벼워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은혜가 있고 그분의 은혜를 기억하는 믿음이 있으면 그 짐이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힘은 들지라도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목 : 그래서, 그래도
성 경 : 합 3:13~19, 찬 590장
우리를 죄의 구렁텅이와 마귀의 종 된 자리에서 뽑아내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것, 과거를 잊지 않고 은혜를 잊지 않는 것, ‘그래서’ 감사하는 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진짜 감사는 ‘그래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3:17) 우리를 구원하여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다면 나머지 길까지도 책임져 주실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을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감사하는 것이 진짜 감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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