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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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7-13 07:41본문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셋째 단계는 중세 신비주의의 요소로서 ‘결합’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인격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생활을 가르치면서 지도했다.
제2단계는 6-11세기의 서방 수도원 확립기로 ‘성 베네딕트’(St. Benedict)가 ‘몬테카지노’(Montecasino)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 회칙의 대헌장인 베네딕트 계율을 세웠다. 실제 8-11세기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성기라 할 만큼 베네딕트 수도원 제도의 영향은 컸다. 베네딕트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원은 개인 중심적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를 보다 높은 영성신학으로서 진리의 빛을 찾는 ‘하나님을 찾는 학교’로 수도원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체의 몸의 신학과 경건 훈련을 확립하였다. 이 베네딕트 수도원은 엄격한 금욕적 절제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청빈.순결.겸손.봉사.고행을 통해 영성을 쌓았다.
제3단계는 12세기의 제도적 부흥기로서 이 수도원의 부흥운동은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이 개혁운동은 프랑스의 클루니 수도원과 클레르보 수도원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는데 세속적 권력개입을 벗어나 독립성을 유지하고 영성훈련이 잘된 인물을 교회 감독으로 세우며 성직자 독신주의를 권장하였다.
제4단계는 12세기의 운동들이 13세기에 이르러 걸식 수도회를 창립한 것이다.
이 시기의 수도회로는 프란시스코(Francisco)회, 도미니코(Dominico)회, 깔멜(Calmel)수도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수도회들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이 때에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가 과거 수도사들과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였다. 성 프란시스코의 성인운동은 평신도 운동이란 점이 특징이다. 성 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이 수도회원들은 수도원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일했기 때문에 탁발수사라고 불렀다.
수도원 운동은 은둔. 독거. 묵상. 노동. 검소. 청빈. 극빈. 성경연구. 기도. 명상. 침묵. 예배 등을 통해 영성훈련을 쌓아 인간 영혼의 신적 상태로의 상승을 목표로 일어나 운동으로 비록 문제점도 많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당시 교회의 이단들을 회개시켰으며, 성직자들을 각성시켰으며, 선교에 열심을 가져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 125 왔고, 교육과 성서번역 사업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영성생활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신적인 체험을 강조하다 보니,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천, 즉 체험을 위한 자기포기의 헌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성서적인 기초가 부족했다. 이들에게는 빈약한 역사성과 도피. 은둔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영성적 빈곤 상태에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이들의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정화는 부패했던 시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기본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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