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5. 칼빈의 경건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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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31 09:20본문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⑽
5. 칼빈의 경건 훈련
2)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칼빈의 책 ‘기독교강요’의 ‘성령론’ 안에서 ‘신생’(Regeneration)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다루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루터의 ‘이신득의’에서 멈추지 않고 ‘성화’(聖化)에로 지향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중생’은 양면성을 동시에 다 가지게 되는데 한 면은 회개로 인한 옛사람의 수정이고, 또 한 면은 새로운 삶으로의 참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생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 회복은 단시일 내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적인 뉘우침과 참된 경건의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완전전한 교제를 향한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칼빈은 ‘내면적인 경건과 외형적인 경건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로 결합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칼빈은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자의 제1의 기본적 실천은 바로 기도’라고 강조하고, ‘기도의 삶을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해서 명상하라’고 권유하였다.
칼빈이 ‘의인과 함께 경건의 재갈을 물린다’고 한 말은 성령 안에서의 자기 부정의 경건이요, 그 자기 부정은 신비주의자들의 자기 탈피와는 다른 것으로서 선과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정화된 자기 부정인 것이다. 이처럼 칼빈의 영성 목표는 신령한 지식을 얻고 신생과 성화를 통한 구원이다. 결론적으로 개혁자들의 영성은 ‘성령운동’과 ‘성서주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제시된 그의 설교는 ‘논리적’이었다. 그의 성경 해석은 ‘역사상 가장 권위가 있었고, 가장 건전하고, 가장 분명하게 성경의 뜻을 드러내는 설교’였다.
3) 개혁주의 영성운동의 확산
중세시대는 ‘말씀’보다는 성례를 중시하는 ‘성례제도주의’와 단순한 ‘말씀의 선포’보다는 철학적인 연설을 중시하던 ‘스콜라 신학’에 의하여 오랫동안 설교다운 설교가 들려지지 않았다.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 또는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무지와 미신 가운데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 므로 종교개혁자들은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말씀 증거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하여 말씀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말씀의 부흥운동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결국 개혁파교회를 새로이 형성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칼빈은 사실 영성운동을 일으키고자 종교개혁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부패한 교회와 성경의 원리에서 어긋난 제도들을 새롭게 회복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영성운동이었다. 그는 영성운동을 진행함에 있어, 과격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폭력 사용을 정당화한 것을 배척하였고, 성경적 원리에 따라 설교를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검은 문자적인 검이 아니라 영적인 검, 곧 말씀으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설교라는 방편을 가지고 제네바를 개혁하기 위해서 자유교회를 세웠다. 칼빈이 신학자 혹은 복음 변증가로서의 삶에서 목회자로의 삶으로 바뀐 곳은 스위스의 수도 제네바였다. 이때가 칼빈의 나이 27세 때였고 1536년 7월 하순경이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칼빈을 만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제네바는 ‘날개 없는 새가 날개를 가진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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