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당신 남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1-17 00:03본문
당신 남편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먼저 선택하고 난 나머지 안에서만
가족의 사랑을 찾는 날이 전부가
돼버린 남편과 나 사이엔
말에 향기는 간데없고
냉랭한 눈빛만으로
메마른 안부를 물어오던 날
새벽
-am 01:00-
무엇을 하고 오는지
밤늦게 돌아다니는
남편을 함께 기다리던 벽시계도
지쳤는지 울려대는 소리마저
힘들어 보였고
벌어진 넓이만큼 좁혀지지 않는
남편과 나와의 거리만
소파에 앉아 재어보다
“당신 어디야?
내가 오늘 둘째 생일이라 일찍 들오라고 했지 또 술 마시고 있는 거야?“
“여보…. 그게 아니라..”
"당신은 정말 구제 불능이야"
딱 한 번만이라도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해주길 바랐던
자신을 눈물로 몰아세우며
한 달 전
내 결혼반지까지 전당포에 잡혀가며
사고 친 일을 해결해 줬을 때
두 손 싹싹빌며 써놓은
남편의 반성문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내 수준에 맞는 배우자를
얻을 수밖에 없는 게
삶의 진리라는 믿음 속에서
찾아지지 않는 정답만 찾아 헤매다
대하드라마 한편을 만들고도 남을
남편의 인생에 괜스레 끼어들어
마음 졸이며 산 시간들을 조각내 보다
마주친 아침 난 이런 선택을 하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각자 따로 밥을 먹고
잠도 따로 자면서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
부딪힘 없이 스쳐 지나는 공기처럼
투명 인간이 되어 마주하는 하루하루로 마음의 두께마저
더해가는 나와는 달리
집이란
일터에 출근한 사람처럼
휴대전화로 세상 구경을 해대며
한철 보내기 좋아하는 매미를 닮아가던 남편이
구멍 뚫린 시간들을 채워보려는지
내 생일날 가족외식을 하자며
제안하고 있었다
“너희 생각은 어때?”
“ 가족 외식 십 년에 한 번 해도 좋으니
제발 싸우지나 마세요”
큰아들의 뜬금없는 말에
쇠해진 분위기를 모면하려는
작은아들이
“엄마 엄마....
엄마는 다음에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그 말을 기다린 사람처럼 난
단번에 소리치고 있었다
“사고 치는 남편...“
그 말에 큰아들은
왜 그딴 질문을 했냐는 눈빛으로
작은 아들을 쏘아보고 있었고
작은아들은 그 눈길을 피해
자기 아빠를 바라보며
김빠진 맥주처럼 묻고 있었다
“아빠는?“
물속에서 입만 끔뻑거리고 있는
물고기처럼 입만 쭈빗거리며
고개를 쑥인 채 아무 말이 없었고
“우린 빠질테니 그냥 두 분이서 오붓하게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사막에 내버려진 선인장처럼
덩그러니 각자의 방만 지키다
마주친 다음 날 오후
회사에서 퇴근을 준비하며
혹시나 하며 휴대전화기를
열어 보았지만,
남편에게서 들어온 문자는 없었고
“그럼 그렇지…….
이 인간이 재수다 싶어
또 술 먹으러 갔겠지....“
밤하늘 한편에 그려지는 미운 남편의 얼굴을 병든 마음으로 그려놓고
위태로워 보이는 거리를 물결치는 사람들 속에 떠밀려 다니다 들어온 집에선 내 맘을 똑같이 닮은 어둠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을 뿐이였다
“카톡”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기울어진 식탁에 앉아 깨진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달빛을 조명 삼아 열어본 핸드폰에는
"정수기 옆에 붙은 메모지를 봐 줘"
라고 적혀 있었고
"( 당)신한테 정말 미안해
그동안 많이 지치고
서운했지?"
(티브 옆에 붙은 메모지를 봐 줘)
...라는
메모지가 정수기옆에 붙어 있었고
“(신)뢰할 수 있는 남편이 되어 내게 가장 큰 사랑을 주는 당신에게 보답하며 살아갈게..“
(거실 전화기 밑을 봐 줘)
라는
메모지가 티브이 옆에 붙어 있었고
“(남)편인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땐
당신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볼 때였다는걸 알게 되었어
( 식탁 꽃병 밑을 봐 줘)
라는
메모지가 전화기 밑에 붙어 있었고
“(편)먹고 이 세상 열심히 살아가자
우리의 행복은 현재 진행 중이니까...
(내 배게 밑을 봐 줘)
라는
메모지가 꽃병 밑에 붙어 있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당신이 있었기에 한 달 전부터 대리운전을 해가며 용기 낼 수 있었다며 배게 밑에는 전당포에 맡긴 결혼반지가 놓여져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내게 물었지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냐고?
그 대답을 지금 할 테니 넉 장의 메모지를 나란히 놓고 첫 글자를 읽어봐 줘)
다시 태어나도
당...............
신..............
남............
편..........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위 컨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으며 임의 도용및 수정 그리고 허가 없이는 게재하는 모든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