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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칼럼

작가에세이 눈으로 그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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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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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그린 사랑.jpg

 

 

눈으로 그린 사랑

 

 

 

봄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여름이 지나가고

 

산마다

단풍잎 물들이는 가을이 왔나 싶더니

겨울이 머물러 있는 이 마을엔

달과 별들도 부러워한다는

금실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할아버지의 등 뒤엔 지게가 아닌

할머니가 업혀져 있었는데요

 

 

임자...

밖에 나오니 춥지 않아?“

 

영감 등이 따뜻하니까 춥지 않네요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업고 다닌다는 할아버지는

 

임자..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

밭에 씨 좀 뿌려놓고 올테니...“

 

씨앗 한 움큼을 던져 놓고

할머니 한번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초가 삼가..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구성진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는 모습에 이젠 할머니까지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고 있는 게 부러웠는지

날아가던 새들까지 장단을 맞추어주고 있는 걸 보는 할아버지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오고 있었는데요

 

나만 볼 수 있는 게 미안하다며

눈물짓고 있는 할아버지는

 

봄처럼 푸른 새싹을

여름 햇살에 키워

가을을 닮은 곡식들로

행복을 줍던 날들을 뒤로한 채

찬서리 진 겨울 같은 아픔을

맞이하고 말았는데요

 

고뿔이 심해 들린 읍내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할머니 몰래 진찰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하얀 낮달이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걸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과 들로 다니며

행복을 줍고 있었지만

 

갈수록

 

할머니를 업기에도..

힐체어를 밀기에도...

 

힘에 부쳐가는 시간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만 있었습니다

 

 

노부부의 앞마당 빨랫줄에 매달려

놀고 있던 해님이 달님이 불러서인지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임자...됐어. 됐다구

 

읍에 갔다 오더니 뭔말이래요?“

 

그동안 고생했어.”

 

할머니에게

망막 기증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섰다며

 

봄을 만난 나비처럼

온 마당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는

할아버지의 애씀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나 할머니는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임자..

수술 잘 될 거니까 걱정말어

 

그래요....

이제 나란히 손잡고 같이 걸어갑시다

 

이 다음에

저승에서 만나면

꼭 그렇게 하자는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할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기고 간 선물로 눈을 뜬 할머니는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시더니 이내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임자....

이제 그 눈으로 육십 평생 못 본 세상 실컷 보고 천천히 오구료

세상 구경 끝나고 나 있는 곳으로 올 땐

포근한 당신 등으로 날 업어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못다 한 이야기나 해 주구려

 

비록 멀어졌지만

 

우린 함께

세상을 보고 있는 거라고....

 

씌여진

편지를 읽고 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하늘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했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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