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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세이 #웹에세이 너는 내 내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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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3-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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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성 작 노루귀2.JPG

 

너는 내 내생의 전부

 

 

해묵은 침묵이 하늘과 맞닿은 날

가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닫은 채 고개만 숙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쓰러져

치매 증상까지 겹친 엄마를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어깨에

70여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 끝에

간신히 거동만 하게 된 아버지 혼자 병간호할 수조차 없게 된 지금

자식들조차 모실 수 없는 처지인지라 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요

 

 

눈에는 두려움이 어린 아내의 손을 꼭 쥐고 자식들이 내려주는 처분 만을 기다리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내일 아침 일찍

요양원에 입원시키자며

통보하 듯 내뱉은 자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허접한

빈방에 나란히 누운 부부

 

내일이면 아침처럼

다가올 이별을 알지 못하는

아내의 머리를 말없이 쓸어넘기며 울고 있는 남편은

 

이별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 밤이

같이 누워보는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

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자꾸 기억이

가물가물해 하는 아내를 보면서

흘러간 시간들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나 애꿎은 세월 탓도 해보다

 

임자...다 잊어먹어도...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는 건

잊어버리면 안 되네 "

 

.....

 

"임자 내가 많이 사랑하는 것 알지?"

 

........

 

대답없이 두 눈만 껌뻑이며 자신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아내에게

 

".. 미안허네..."

 

떠나는 가슴이든

보내는 가슴이든

아무리 뒤져봐도 남편은

이 말밖에 해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별하는

법이라도 배워뒀더라면....

 

 

녹슨 어둠이 내려선 이 밤을

그렇게 꼬박 새운 남편은 먼 길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찾아온 큰아들 내외를

맞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기다림은

더 견디기 힘든 걸 알고 있는 남편은

 

"너희 엄만 죽을 때까지 내가 돌볼 것이여

 

쇠못 같은 아버지 말에 큰아들 내외는

얼마 견디지 못할 거란 속내를 안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헤어짐이 너무 어려운 줄 알기에

 

똥을 싸도 좋으니

나를 기억 못 해도 좋으니

그저 옆에만 있게 해달라며

 

남편의

아내를 위한 간병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매끼 밥상을 차려놓아도 먹지 않다가

남편이 없을 때만 몰래 먹는 아내"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자고 보채는 아내"

 

"금방 밥 먹고 또 밥을 달라는 아내"

 

이렇듯 코끝에

매서운 찬바람 같은 아픔이 있어도

말없이 집안 곳곳 아내의 지나온 길을

채워가고 있는 남편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목욕시키고

머리 빗기고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에서 아내가

제일 예쁘다는 남편은 힘듦조차 행복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밭일하다

마음 한구석을 비운 채로 집에 와보니

아내가 보이질 않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슈퍼에서 물건을 손에 쥐고 자기 거라고 주인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걸 보며

가끔 담배 사고 돈이 남으면

꿀 과자 한 봉지 건네줬었는데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 가늘고 무딘 길을

아픈 걸음으로 여기까지 왔을지.

 

 

"생각만 해도 애틋한 사람

 

집에 와서 과자를 하나씩 꺼내어

입에 넣어주니 아내는 발그레 웃음 지으며 천진을 달고 맛있다며 받아먹습니다

 

아프기 전에 왜 몰랐는지...

 

이런 아내의 작은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미워져

아내를 말없이 안아줍니다

 

눈물은 필요 없는데

왜 자꾸만 흘러내리는지..

 

소매끝으로 눈물을 닦고선

과자를 다 먹은 아내를 의자에 앉히고

두발을 씻겨주던 남편은

 

우리 할멈 발이 어찌 이리도 예쁜지...”

 

나뭇가지에 걸린 달님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그런 밤입니다

 

 

 

 

쓸쓸한 행복에 기대어 사는

남편의 사랑은

있어야 할 빈자리에 있는 낙엽처럼

지치도록 눈물겹지만

 

그저 말없이 자신만 의지한 채

눈망울로만 얘기하는 아내가

더욱더 애처로워

 

밭에 나가 일할 때는

밭 한편에 앉히고

호미질 한 번에 아내 얼굴 한번 보고

 

그렇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남편은

늘 받기만 하던 아내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똥오줌 받아내고

말도 안 되는 얘기 받아주어도 좋으니

그저 옆에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 말합니다

 

 

"따르릉..."

 

파출소에서 아내를 보호하고 있다는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잠든 줄 알았던 아내가 보이질 않습니다

 

임자 여기서 뭐 해?“

 

남편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보따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내어놓습니다

 

미역.....

 

오늘이

남편의 생일이라고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습니다

 

"다 잊어도 어떻게

그 기억만은 어떻게 매달고 있었는지"

 

아내의 마음이

보이는 거리만큼 서 있는 남편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형광등과 창문을 번갈아 올려다보지만

울컥울컥 목이 멥니다

 

임자.. 고맙소

잊지 않고 이렇게 차려주니..."

 

남편은

보따리를 하나하나 다시 동여맨 뒤

아내의 두 손을 꼭 쥔 채

두 사람이 있어야 할 그곳으로

말없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눈물은 눈물끼리

다독거리고

 

외로움은 외로움끼리

기대면서 말이죠

 

 

 

아픔으로 건너는 이 세상에서

서로에게 위안받고

빈 가슴으로 언 손 녹일 수 있는

그곳으로 온 남편은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시집와 살던 옛집도 가보고 그동안 같이했던 기억을 찾아

옛이야기 하나하나 들려주며

하루를 그렇게 보냅니다

 

 

달빛이 강물 따라 흐르는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배고픔도 함께하며 같이 살아온

빛바랜 앨범 속 사진들을 들춰보다

남편의 다리를 베고 말없이 잠들어 있는 아내의 긴 침묵에도 먹물처럼 번져가는 추억 속에 잠겨있던 남편은

 

당신 혼자 병마와 싸우니 너무 안쓰럽소

 

언젠가부터 전부가 되어버린

남편의 독백은

그렇게

강물에 쓸려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새벽을 흔드는 초록 바람에

일어나 보니 숨소리 새근거리며

잠자고 있을 할머니가 보이질 않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순 없지만

한 손으로 띄엄띄엄 거리며

아궁이에 붙어 앉아 부산스러움으로 불을 피우고 있는 아내를 본 남편

 

 

임자..

잠 안 자고 뭐 한겨?“

 

아가들이 오늘 올 건데

밥 먹여 보내야죠

 

아내가

기억이 돌아온 걸까요

 

오늘이

자기 생일인 걸 안 걸까요

 

두 손 걷어붙이고

그 옛날에 그날처럼

고깃국도 끓이고

고슬고슬 밥도 지어 따뜻함이

묻어나는 밥상을 차려냅니다

 

 

내 안에 아직

당신에게 줄 사랑이 남았기에

 

당신이 치매라도

바지에 똥을 싸도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영원히 사랑할 거라 말하는

남편의 아름다운 로맨스는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계속되려나 봅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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