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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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7-06 08:28본문
아가서 강해(5) 아 1:6절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한 신부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 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지난 주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하는 체험을 하시면서 사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하기에 자신이 검다는 사실과 게달의 장막 같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롬 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하심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하면 할수록 주님의 은혜로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과 솔로몬의 휘장과 같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검다가 아름답고 아름답다가 검고” 이 반복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흠도 점도 없는 신부가 되실 줄 믿습니다. 자신이 비록 검으나 아름답고 게달의 장막같을 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신부가 겪게 되는 과정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 할지라도”입니다. 일광에 쬐어서, 곧 햇빛에 쬐어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과 교회에서 겪게 되는 핍박과 고난과 괴로움을 말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없이 무탈하게 살았다면 자신의 거무스름 곧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왕의 침궁을 체험한 신부가 그 영광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왕과의 친밀함을 잃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계속해서 그 친밀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어미의 아들들이란 교회의 리더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아직 왕의 침궁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술람미 여인의 주님과의 친밀한 체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그 체험에 대해 노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제가 1988년 초에 조그만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뜻대로 산 결과가 무엇이냐? 이제 내 뜻대로 살아라” 하는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제 처지를 비관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7월 17일에 자살을 결심하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찾아 오셔서 마음에 강한 음성을 주신 것입니다. 난생처음 겪은 일이라 굉장히 놀랬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산 지 7년이나 되었는데요! 저는 원래 천주교 모태신자였습니다.
1981년 7월 17일 제헌절 아버지께서 작약도에 가셔서 수영하시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셔서 인천 기독교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병원에 가는 차안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버지가 불구자가 되어도 좋으니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저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제 아버지는 이미 영안실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셨죠! 이제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을 겁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 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무엇인지 아십니까? 술과 담배, 여자, 환각제, 대마초, 히로뽕 결국에는 자살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보다 못한 저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네 뜻대로 산 결과가 무엇이냐? 고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네 뜻대로 산 결과가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제가 발견한 사실은 나에게 자살을 결심하게 만든 모든 원인이 바로 하나님 없이 내 뜻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살 소망이 없어서 자살을 결심한 저에게 주님은 “이제부터는 네 뜻대로 살지 말고 내 뜻대로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놀라 메모지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계속 나오는 음성을 받아 적기 위해서였습니다. 화장실이 답답하여 뛰쳐나와 공장 근처 다방에 들어가 안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 받아 적을 글을 인하대 국문학과 교수님에게 보여서 잘 정리를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하대로 향했습니다.
인하대로 가던 중에 인하대 후문에서 자취하는 선배에게 발길이 멈춰져서 그 선배에게 제 상황을 설명하고 적은 글을 보여주었더니 선배는 놀라면서 성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성경 안에는 제가 적은 글의 내용 중 하나가 적혀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하는 롬 5:19절 말씀이었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도 한 번도 성경을 읽지 않았던 제가 좀 전에 받아 적은 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선배가 “이건 특별한 일이야 넌 지금 나와 함께 교회에 가야해!”하고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였기에 그때까지 교회를 이단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뭇거렸으나 그 선배의 손에 끌려 교회에 갔습니다. 수요예배가 다 끝날 시간에 도착해서 맨 뒷 자석에 앉았는데 갑자기 어려서부터 지은 죄가 눈앞에 필름같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난 살인한 애들보다는 착한 사람이야”하면서 나를 스스로 위안하며 살았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바닥을 뒹굴며 “내 죄를 용서해주세요!”하며 통곡을 했습니다. 한 한 시간 가량 통회자복을 하고 일어났는데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배만 혼자 남아 저를 미친 줄 알고 경계를 했습니다. 이때 그 교회에서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아무도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제 속에서는 계속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그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산상에서 기도회가 열렸는데 자연스럽게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인데 갑자가 제 입에서 모르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기분은 좋았고 그 선배와 친구들이 있는 텐트로 달려갔습니다. 그 텐트에서는 선배와 친구들이 다 환각제를 먹고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온다고 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니까 대뜸 그들이 하는 말이 “야 그거 마귀 방언이야! 우리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방언을 못하는데 네가 방언을 할 수는 없지, 그건 마귀가 준 방언이야!”
그때 방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속으로 “아 내가 방언을 받았구나!”하며 도리어 기뻤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 곧 성령님의 음성을 수시로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저를 계속해서 성경을 읽게 했고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체험한 일들을 처음에는 답동성당에 가서 수녀님들에게 말했는데 어느 누구도 저를 이해해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출석한 교회에서도 다 저를 이상하게 보고 초신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냐고 하면서 제 체험을 노여워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제가 경험한 체험을 애기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지방에 내려가 6개월 동안 선배의 갓난아이를 돌봐주면서 오직 성경 읽기와 기도만 하면서 신앙 훈련을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직접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와 은혜를 체험하면서 신학교에 들어갔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 후에는 교회 체제에 맞춰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사역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들렸던 성령님의 음성, 그 음성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무엇입니까?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목사가 된 후에 정작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친밀함은 잃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잃었습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잃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제 마음은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난 것같이 저도 제 포도원 곧 제 마음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이것입니다. 교회의 먼저 된 리더들이 제 경험에 대해 노여워했습니다.
제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사실에 “이미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는데 무슨 성령의 음성이냐?”고 하면서 자기들이 경작하던 포도원지기, 곧 기독교 전통과 제도와 형식의 수호자를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작 제 포도원은 지키지 못하고 남의 포도원지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거무스름해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성수입니까? 십일조 생활입니까? 전도입니까? 봉사입니까? 믿음의 교제입니까? 사명 감당입니까? 말씀 순종입니까?
이것들을 행하기 위해 맘 고생이 심해 얼굴이 검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이런 여러분을 흘겨보지는 않겠습니다. 어미의 아들들이, 교회의 리더들이 그들이 원하는 포도원지기를 삼았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포도원, 곧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의 근원되시는 성령님이 말씀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만이 성령님과 친밀함을 가지고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순종이 나와 주일성수도, 십일조 생활도, 전도도, 봉사도, 믿음의 교제도, 사명 감당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포도원은 지키지 않고 다른 이의 포도원지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 포도원은 잡초가 무성하고 열매가 없고 황폐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답답하지 않습니까? 곤고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하는데 만족은 없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은 다 자기 포도원은 지키지 않고 다른 이의 포도원지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자기 포도원, 곧 자기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은 바로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살전 4:3~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자기 포도원, 곧 자기 마음을 부정케 하심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마음을 거룩케 하기 위해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않고 다른 이의 포도원지기가 된다면 외적인 사역의 열매는 있어도 내적 사역의 열매, 곧 거룩한 성품은 없는 거무스름한 신부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하심같이 주님 다시 오실 때 자기 마음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인 거룩함을 이루지 못한다면 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자기 포도원을 지켜 주님의 뜻인 거룩함을 이뤄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신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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