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레위기 강해(4) 레 2:3~6절 다섯 종류의 음식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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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3-02 06:24본문
레위기 강해(4) 레 2:3~6절
다섯 종류의 음식제사
레 2:3~6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4 네가 화덕에 구운 음식제사의 헌물을 가져오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누룩 없는 과자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으로 드릴지니라. 5 네 헌물이 철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6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그것이 음식제사니라’. 아멘.
할렐루야! 전국에서 해외에서 이 방송을 구독해 주시는 애청자 여러분 오늘도 만남의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소망으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기적의 역사만 있기를 축원한다. 레위기 강해(4) 시간으로써 레 2:3~6절 말씀을 중심으로 “다섯 종류의 음식제사의 제물”에 대해서 부제로 “누룩 없는 과자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으로 드리라”. 는 말씀으로 선포하면서 다함께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아멘.
개역 성경을 보면 ‘소제’라고 했는데 표준 성경을 보면 소제는 음식제사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 이 음식제사의 규례를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하면 첫째, 고운 가루를 그대로 예물로 드리는 방법이 있다(1~3절). 둘째, 고운 가루를 요리해서 드리는 방법이 있다(4~10절). 셋째, 음식제사의 제물을 드릴 때 유의할 사항을 말하고 있다(11~13절). 넷째, 첫 이삭의 음식제사를 드리는 방법이다(14~16절). 지금 말씀드린 음식제사는 대개 번제희생 제사나, 화목제 등 다른 피 제사와 함께 드려졌었지만, 레 2장의 경우는 독자적인 음식제사 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식물성 제사인 음식제사는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① 고운 가루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간의 거칠고 일그러진 성품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복종시켜 순전하고 흠이 없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가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② 발효성 있는 식물(누룩이나, 꿀)이 금지된 대신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사용된 것은, 타락하고 패역한 삶을 지양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켜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한다.
③ 음식제사 제물로 첫 이삭이 드려진 것은 땅의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 고백적 행동으로서, 곧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제인 음식제사는 ‘피 없는 제사’를 가리킨다. 그래서 피 없이 음식제사 제물로 즉 식물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제사 제물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신 성품을 뜻하는 동시에 우리 성도들의 성결한 임마누엘 생활을 뜻한다. 거듭 말해서 음식제사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우리가 마땅히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죄 없는 성결된 생활을 뜻한다.
우리 개역 성경에 ‘소제’라는 말은 중국과 일본역의 영향이라고 본다. 공동 번역은 ‘곡식 예물’ 새표준역에는 ‘곡식 제물’, 킹=>‘음식 제사’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절기와 제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경에서 정답을 찾아볼 수 있기를 권한다. 골 2:16~17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제 우리는 구약의 제사법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구약의 모든 제사법은 하나의 그림자였고 모형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실체이고 원형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다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레위기를 통해서 보면 여기 제사법의 형식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지만, 그 제사법 말씀 속에 흐르고 있는 실체의 모습은 우리가 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제사에 쓰여지는 제물은 1차 적으로 예수님이 먼저 제물이 되시는 것이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과 희생으로 드린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행하라’. 하셨다. 그 다음 2차 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우리들이 제물이 되어져야 한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고 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음식 제사인 소제가 있다.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인데, 여기서 음식제사 제물은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고운 가루로 드리는 음식 제물이 있고, 화덕에 구운 음식 제물이 있으며, 철판에 구운 음식 제물의 제사가 있다. 그리고 튀김판에 구운 음식 제물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첫 번째로 음식 제물이다. 여기 음식 제물은 곡식 가루로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곡식 가루 제물로 드린 이 음식 제사는 언제나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려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음식 제사의 의미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삶을 드리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와 관련된 음식 제사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음식제사는 많은 음식제사 중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것이 음식제사이다. 이 음식제사의 모형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며 그것은 충성과 감사를 상징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결하신 고귀한 품성을 예표하고 있다.
1.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소제)를 드리고자 하면’
여기서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이 말은 자원하여 드릴 것을 의미한다. 음식제사 역시 번제희생제와 마찬가지로 IS 백성들 중 누구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또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할 것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가리켜 자원제(自願祭)라고 한다. 자원제란 구약의 5대 제사 중 하나이다. 자원제는 번제 희생제와 음식 제사, 이 외에도 화목제가 있었다. 그 외 속죄제와 곡건제는 죄지은 자는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제(義務祭)였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다.
2. 다섯 종류의 음식 제사가 있다.
음식 제사는 단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다섯 종류가 있는데 ⑴ 고운 가루에다 기름을 부어 유향과 함께 드려지는 음식제사(2절)이다. ⑵ 화덕에 구워 과자를 만들어 드려지는 음식제사(4절)이다. ⑶ 철판에 구원 여러 조각을 만들어 드려지는 음식제사(5절)가 있다. ⑷ 튀김판에 구워 드려지는 음식제사(7절)가 있다. ⑸ 첫열매 음식제사(12,14절)라 하겠다. 성경에서 다섯은 오순절(五殉節) 성령강림의 은혜의 수이다. 그래서 음식제사는 유월절(번제) 이후, 부활의 첫 열매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1. 하나님은 고운 가루를 원하신다.
레 2:1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그랬다. 고운 가루로 드리는 음식제사(소제)는 세 가지로 원료가 사용되었다. 그 세 가지 원료는 ① 고운 가루, ② 기름, ③ 유향, 이 세 가지 원료가 사용되었다. ① 고운 가루 히=>(סֹלֶת, 쏠레트): 이는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뜻한다. 요 12:24절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많은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됨을 의미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은 것은 그리스도의 육적 죽으심을 뜻하고, 거기서 새 싹이 나서 많은 열매를 맺는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많은 구원의 열매를 가리키고 있다. 한 알의 밀이 고운 가루가 되기 위한 과정은 맷돌에 들어가 깨어지고 바스러지고 가루가 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그 옥체를 깨뜨려 온갖 고통을 다 겪으셨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순종과 헌신이 되기 위해서는 내 이 심령이 맷돌(신구약)에 들어가 깨어지고, 바스러지고 고운 가루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아멘.
② 기름(שֶׁמֶן,쉬멘): 고운 가루 위에는 고운 기름을 부었다. 그리스도은 메시야 곧, ‘기름을 붓는다’는 뜻이다. 구약 때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의 임직시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만왕의 왕이시다(마 27:29). 선지자시요(요 4:19). 대제사장이시다(히 2:17, 3:1).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 1:3~4절).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고(마 1:18), 성령으로 기뻐하셨고(눅 10:21),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고(마 3:16).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내셨으며(눅 4:14). 고운 가루는 그리스도의 부드럽고 온유 겸손하신 성품이시요, 그 위에 기름을 부은 것은 성령의 임재를 뜻하고 있다. 한편 깨어지고 바스러진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성령의 권능(기름)을 받아야 온전한 헌신과 순종의 제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음식제물을 받으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③ 유향(לְבוֹנָה, 레보나): 향은 기도를 뜻한다(계 5:8, 8:3). 또한 제사장의 용품이다. 하늘에 오르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이러므로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 (히 7:25).
성막 안의 향단은 성소를 지나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두었다. 이는 곧 중부자의 위치이다. 예수님은 오직 유일하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대제사장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 한편 기도는 성도들의 향기로운 기도생활을 듯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시나니 기도는 곧 임마누엘의 은혜이다. 아멘.
2. 음식제사 제물은 화덕에 구워 드린다.
“네가 화덕에 구운 음식제사의 헌물을 가져오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누룩 없는 과자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전병으로 드릴지니라”(레 2:4). 음식제사 제물(소제)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을 가리킨다. 여기서 기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리는데 화덕에 잘 구워서 드려야 한다. 누룩 없는 전병이란 죄 없으신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눅 22:19). 그리고 누룩 없는 전병을 화덕에 구운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당하신 육적 고난을 의미하고 있다.
굽지 않은 전병은 제물이 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화덕이 없다고 하면 전병을 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전병을 구우려고 하면 반드시 화덕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속하기 위한 육적 고난은 필연적인 당연사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다고 하면 죄인을 대속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⑴ 누룩 없는 과자(무교병, חַלָּה, 할로트). ‘구멍을 뚫다’란 뜻의 ‘할랄’에서 파생된 용어로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가리킨다. 따라서 무교병은 가운데가 구멍이 뚫린 두꺼운 과자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양 손에 못박힐 때 입으신 고통과 상처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⑵ 누룩 없는 전병(무교전병) 원어상으로 ‘두들겨서 얇게 편다’란 뜻의 ‘라카크(רָקִיק)’에서 파생된 언어이다. 무교전병은 무교병보다 두께가 얇은 과자를 가리킨다. 이것도 역시 로마군병들에 의해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이다. 과자에 기름을 섞어 만든 것은 예수님의 성스러움을 의미하고, 기름을 바른 것은 성별의 뜻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빵을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뜨거운 죽음의 고난을 맛보신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한다고 하면 누룩 없는 과자와 같이 우리는 죄 없는 성결한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과자 속의 기름은 성령의 내재성을 의미하고, 겉에 기름을 바른 것은 성령의 외적 감화력을 의미한다.
성령의 기름이 내 심령 속에 있는 자는 부패할 수가 없고, 또한 늘 성령의 감동을 받는 자는 세상과 짝할 수가 없다. 기름은 언제나 분리를 뜻한다. 무교전병 밖에 기름을 바름으로 화덕이나 번철에 붙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과 짝하지 아니한다. 또 기름 바른 과자를 화덕에 굽는 것은 성령받은 사람의 불같은 시련과 연단을 의미한다. 불이 없으면 과자를 구울 수 없듯이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연단이 없다고 하면 아직은 미숙한 단계이다.
과자를 익히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고, 성도 여러분의 신앙 연단을 위해서는 불같은 시련이 필요하다. 또한 성령받지 아니한 사람은 불같은 시련을 이기지 못한다. 무교병이나 무교전병을 화덕에 구을 때 반드시 기름이 필요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성령을 받았는데, 불같은 시련이 없는 사람은 아직 설익은 빵과 같이 미숙한 단계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에게 불같은 신앙의 시련과 고난이 있다고 하면 이것은 곧 자신의 신앙완숙(信仰完熟)을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과정인 줄 알고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아멘.
오순절 경험을 통하여 순교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른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벧전 4:12~13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13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다. 불같은 시련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 없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완성되어 진다.
3. 철판에 구운 음식제사
‘네 헌물이 철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6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그것이 음식제사니라(레 2:5~6)’.
철판에 구운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뜻한다.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하고, 기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뒤에 기름을 부어서 만든 것이다. 빵을 조각으로 나눈 것은 개인의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빵)은 본래 하나인데, 그것을 조각으로 나누듯이 신앙은 각 사람, 개개인 고백이어야 한다. 또한 빵을 조각으로 나눈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각각 찢어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진 모형도 된다(마 27:35).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은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몸을 온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 그 위에 또 기름을 부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언급한 대로 속의 기름은 예수님의 내적 영성을 뜻하고, 나눈 조각 위에 기름을 또 부은 것은 외적 그리스도의 영적 사역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 심령에 비유하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나누인 조각)은 각자 심령 속에 성령을 모셔드려야 하고, 성령을 심령 속에 모셔드린 자는 외적으로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충성하고 봉사해야 된다.
한편 철판에 부치는 것은 성령받은 자들이 신앙의 완숙을 위하여 당하는 환난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화덕에 구울 때도 그렇지만 철판에 부칠 때에도 기름은 절대 필요한 불가불리(不可不離)의 관계이다. 기름이 없으면 빵은 번철에 달라붙어 모두 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빵을 철판에 부칠 때는 자주 자주 뒤집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은 검게 타고 다른 한쪽은 설익은 빵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위해서는 자주 자주 뒤집어 주는 역사가 필요하다. 자주 자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더 큰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방편이 된다. 아멘.
‘스스로를 혼합시키는 것은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과 같다’(호 7:8). 고 하였는데 뒤집지 않는 빵은 바빌(혼합)의 빵이다. 우리가 자주자주 뒤집어질 때 내 심령 속에 있는 불순물 혼합사상이 모두 빠져나가게 된다. 불이 뜨거울 때 독사가 쫓겨나간다(행 28:3). 자신의 심령 속에서 마귀의 영, 곧 독사의 독기가 모두 제거되어야 임마누엘 축복이 임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화덕에 굽고 철판에 부치는 뜨거운 연단 과정이 필요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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