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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아가 강해(53) 아 6:5~6절 황홀한 신부에 대한 칭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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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7-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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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강해(53) 6:5~6

황홀한 신부에 대한 칭찬-1-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지난 한 주간 내적으로는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 같은 곱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신부가 되고 외적으로는 디르사 같은 주님의 뜻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순종하는 신부가 되어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가 되셨습니까? 요즘 향유중보기도단의 주일 찬양을 들을 때나 수요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습니다.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 같은 곱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신부가 되고 외적으로는 디르사 같은 주님의 뜻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순종하는 신부가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적으로는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 같은 곱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신부가 되고 외적으로는 디르사 같은 주님의 뜻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순종하는 신부가 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경건에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하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신부는 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외적으로는 주님의 뜻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순종하는 경건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외적인 어여쁨이 디르사 같이 되면 내적인 고움이 예루살렘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적인 고움이 예루살렘 같이 되면 외적인 어여쁨이 디르사 같이 된다고 했는데 기억하십니까? 이 순서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적인 고움이 예루살렘 같이 되면 곧 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면 외적인 어여쁨이 디르사 같이 곧 주님의 뜻을 향한 간절함과 열정으로 순종하는 경건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경건이 외적인 경건의 모양으로 나와야 옳은 것이지 외적인 경건의 모양만 있다면 내적인 경건이 없기에 외식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적인 경건 없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지 않으면서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가진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현대 교회에서는 외적인 경건의 모양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신약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과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외적인 경건의 모양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면서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이 바로 외적인 경건의 모양입니다. 지금도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닮아나가지 않고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내는 모든 종교 활동들은 다 외식 곧 겉만 보기 좋게 꾸며내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23:25~28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의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닮아나가지 않고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낸 모든 종교 활동의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낸 모든 종교 활동을 금해야 합니까? 전도도 봉사도 헌금도 십일조도 주일성수도 교제도 말씀 묵상과 기도도 다 금해야합니까? 아닙니다. 먼저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나가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사탄은 또 자기 거짓말로 신자들을 유혹합니다.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전에는 외적인 경건의 모양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예 종교 활동도 하지 말고 집에서 혼자 내적인 경건만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속고 있는 신자들이 무교회주의자로 전락해 교회에 소속됨 없이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23:23~24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내적인 경건이 약대라면 외적인 경건의 모양은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어 지키고 약대는 삼켜 지키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외적인 경건의 모양도 행하고 내적인 경건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이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나가지 않으면서도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낸 모든 종교 활동을 통해 안심하고 있다면 마지막 날에 주님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며 내적 경건을 이루지 않는 자들에게서 돌아서십시오! 여러분이 돌아서야 하는 내적 경건을 이루지 않는 자들의 특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딤후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러분 안에도 내적 경건을 이루지 않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내적인 경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나가면서 외적인 경건의 모양인 모든 종교 활동을 함으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벌벌 떠는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은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6:5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지금 주님이 내적인 경건과 외적인 경건의 모양을 갖췄기에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은 신부에게 말합니다.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혹시 연애시절에 남자 애인에게 이런 말을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아 제발 당신의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세요! 당신의 광채에 내 눈이 부셔 난 장님이 될 것 같아요!” 신부의 눈이 주님을 놀라게 했기에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는 것은 신부의 눈으로 인해 주님이 너무나 기쁘고 황홀해서 견디지 못하시는 표현입니다. 신부의 눈은 어떤 눈이기에 주님을 이토록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한 것일까요? 바로 경건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인데 신부의 마음이 경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뤘기 때문에 주님이 너무나 기쁘고 황홀해서 견디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의 현 주소입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고백이 여러분에게서 나온다면 주님께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는 고백을 듣게 될 줄 믿습니다.

 

6:5~7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지금 주님이 신부의 눈과 머리털과 이와 뺨을 칭찬하시는 것은 아가 4:1~3절에서 이미 칭찬하신 내용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모친이 주님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 곧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 위해서 신부가 얻어야 하는 칭찬의 씨앗이 아 4:1~3절이라면 아 6:6~7절은 칭찬의 열매 곧 완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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