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친정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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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9-14 09:19본문
친정 아버지
저는
9살 때 엄마를 잃고 편부 슬하에서
자라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늘 공사장 일로 평생을 사셨지만
따뜻한 미소로 하루를 살아내시는
그런 아버지였고
딸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고마움과 아련함은
늘 따라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불 꺼진 썰렁한 빈집에 와서
혼자 찬밥 데워 드실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딸은
엄마를
떠나보낸 지 20 년을
딸 하나 바라보시고
삶을 의지해 오신 넉넉한 품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아버지란
딸에게 하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여 가!
네 걱정 말고 너나 잘 살아
최서방이랑 의좋게 살면 되는겨 "
허전함과 아쉬움이 묻어있는 인사로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딸의 가슴에 메아리쳐져 오는 것
같습니다
“아빠 잘 살게요,
밥 잘 챙겨 드셔요
술만 드시지 말고요 “
결혼식을 끝내고
홀로 집에 들어 온 아버지는
딸이 없는 빈방에 덩그러니 앉아
막걸리 몇 사발 걸친 후에야
속마음을 내어 보입니다
“임자!
우리 연희 시집갔어
못난 애비 만나 맘고생만 하다 간겨“
뭣하나 해준 게 없는데
그래도 지애비라고 봄바람에 꽃잎 날리듯 챙겨주던 딸의 생각에 가슴이 메어오는 그런 밤입니다
“그만 먹으라고 잔소리하고 애비 추한 꼴 기억하는 딸이 없어 편하고 좋네 그려 “
마음에도 없는
실없는 말 너머로 밀려오는 아픔에
끝내 아버지의 눈물은
처마 밑 빗물 떨어지듯
막걸리 잔에 내려 꼽히고 맙니다
“이 애비 걱정하지 말고
잘살아야 혀“
아버지의 눈물은
까만 밤을 뚫고 걸어 나온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오늘은
손자의 돌잔치입니다
딸네 집에서 가족만 모인 단출한 식사 자리에 먼길 마다않고 올라오신
친정아버지 앞에서
“이게 뭐니,?
음식을 누구 먹으라고 한 거야
뭘 보고 배운 게 있어야 잘하지 ‘
먹는 둥 마는 둥
공박과 빈정으로 음식을 먹다가 인사도 없이 냉한 걸음으로 나가버리는 시어머니를 따라 나간 남편의 모습이 사라져간 뒤,
차마 딸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방바닥만 헤매다녔던 아버지는
안쓰러운 몸짓으로 갈 채비를 합니다
“나 가마”
“아버지 !
먼 길 오셨는데 주무시고 가셔야죠”
“아니다.
공사 일이 요즘 바빠서 그려
내 걱정하지 말고"
“최 서방 오면 터미널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택시라도 타고 가시래도 남는 것이 시간이기에 쉬엄쉬엄 버스로 가신다며
하얀 봉투를 손자 손에 쥐여주고는
그저
딸이 불편해질까 봐
바쁜 걸음으로 가버리는 아버지
절뚝거리는 다리로 먼 길 돌아가도
그저 딸을 비추느라 어두운 뒷모습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백열등 같은
내 아버지의 위태로운 하루가 걸어가는 것 같아 그만 눈물이 베어옵니다
“아버지 조심히 가요"
"어이 들어가 아기 감기 든다 “
보내 드리고 방으로 들 온 딸의 눈에
미처 신고 가지 못한 아버지의 벗어놓은 양말이 들어옵니다
이 자리가
얼마나 가시방석 같았으면....
맨발로 겨울을 걸어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던 딸은
갇힌 바람처럼 멈춰뒀던 눈물을
또 흘러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보내 드리고 몇 달이 흐른 뒤
딸은 아버지의 생신을 챙기려
친정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시집간 뒤 처음 와보는 친정집이라
빈방에 불을 켜 이쪽저쪽을 둘러보는 딸의 눈에 앉은뱅이 책상에 아들의 돌사진과 엄마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언제 밥을 해드셨는지
기억도 시간도 멈춘 집 같기만 하고
냉기가 잡히는 밥솥과 텅 비어 있는 냉장고는 끼니를 술로 때우신 날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장을 봐 온 것들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헛기침 서너 번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
"온겨! 최 서방은? "
"출장이라 못 왔어요 “
"그려 바쁘니 좋다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바빠야 혀“
애써 아픈 마음을 감추려는
아버지의 어색함이 더 마음 쓰인 딸은
“청소도 안 하시고 식사도 안 하시고 다니시고 하나 있는 딸 애태워 죽이시려고 그러시죠 아버지 때문에 내가 못 살아... “
“ 난 너 때문에 사는데....”
아버지와 딸의 말 사이에는
뭉클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방안에 누워있는 손자의 얼굴에
어릴 적 딸의 얼굴을 찾아내려는 듯
찬찬히 내려다보며 재롱에 연신 웃음을 매달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가신 뒤로
저렇게 웃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딸은
저 웃음을 찾아 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먼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아빠!
제가 볼 테니 식사하셔요 “
“어서 와 너도 같이 먹자 “
애잔한 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국을
드시면서도 눈은 누워있는 손자 재롱을 보며 딸에 대한 고마움으로 달콤한 식사를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늘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함도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한번 안아 보셔요."
오랜 노동에 시멘트 독이 올라
쩍쩍 갈라진 손으로 꽃 같은 손자를 만지기가 미안해서인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내어놓습니다
“투명 비닐장갑”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그제야 손자 얼굴도 만지고
손도 쥐어보는 아버지가
웃을 때마다 생기는 주름살이
오늘은 펴어질 새가 없는걸 보며
그저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새겨보던 딸은
행복한 하루를 보낸 아버지와의
헤어질 시간이 앞에 두고는
아쉬움을 매단 발걸음이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아버지!
냉장고에 반찬 해놓은 것하고
꼭 식사 거르지 말고 하셔요
술만 드시지 마시고요"
“ 너희 엄마한테도 안 들은 잔소리를
딸한테 듣네 그려 ‘
그저 딸의 챙김이 마음 흐뭇함을
어찌 숨길 수 있을까요
못난 아비 챙기느라 지 가정에
소홀할까 싶어서지요
"내 걱정은 말어 "
딸과 손자가 점이 되어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마는 걸 보니
아버지에게 딸에 대한 그리움은
한평생 불치병 되어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딸과 손자를 보낸 뒤로
구토와 두통
그리고 충혈증상까지 생겨 병원을
다시 찾은 아버지는
병원을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의
표정이 더 어둡기만 한 건
당뇨로
시신경이 망가지는 녹내장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실명될 수도 있다며
꼭 오실 때 보호자 분과 같이 오라는
의사의 진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지 살기도 바쁜 딸을 오라 가라 하는 게 영 마음이 내 키질 않는 아버진
오늘도 혼자서 병원에 왔습니다
수술 전 몇 가지 검사를 위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앉은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봅니다
손자 사진을 이리 어루만지고
저리 어루만지던 아버지의 얼굴에
애달픈 한숨이 지천이던 그때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던 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분명 딸의 전화인 것 같은데
말이 없습니다
"아버지 저예요 “
평소 딸의 목소리와 너무도 다른
목소리에
“연희 맞는겨?”
"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애써 태연한 척
"응 그려!
최 서방은 잘 지내는겨?"
손주 놈 돌잔치 때 보고선
본 적 없는 사위의 안부를 묻는
아버지의 말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머뭇거린 뒤
"휴가 맡으면 같이 한 번 내려 갈게요"
"우리 왕자님도 잘 계시고?"
"네네,,,!
이제 말도 잘하고 걷고 해요
어찌나 잘 걷는지 걸어서 외가도
갈 것 같아요.”
그 말에 수술할 걱정은 간 곳 없고
얼굴엔 웃음으로 주름살이 펴지지
않습니다
"그려 그려..
뭐니 뭐니 해도 애들은
똥 잘 싸고 밥 잘 먹으면 땡인겨 “
"아버진 어디셔요? "
속을 들켜버린 양 아버진
금새 어색한 말투로 변합니다
"어.. 어.. 그게...
경로당에 장기 두고 있어 "
「김 씨 뭐 혀 장 안 받고...
장이여.. 장」
말할 리 없고 들어 줄 리 없는
텅 빈 병실에서 일인극을 하는 아버지
‘약주 많이 하시지 마시고
일찍 들어가셔요 “
“응 그려 그려 “
황급히 전화를 끝고는
돈을 훔치다 들켜버린 사람처럼
전화기를 침대 머리맡에 던져버린
아버지의 하루는 늘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같아 보입니다
흐린 세상
흐린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눈이 안 보여
공사 일을 나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박스를 주워가며
하루를 연명하다 집으로 와
낯선 인기척에 방문을 열어보니
딸이 가로질러 쓰러져 있습니다
눈을 뜬 딸은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래고
아버지의 눈에는 핏발이
어려 있습니다
볼 낮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숙이고만 있는
딸 앞에 아버지는 조용히 묻습니다
"어찌 된겨? “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딸을 보며
다 알겠다는 듯 아버지는 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다독 거려줍니다
결혼 후
주식투기로 집 전세금마저 다 날려 버리고 직장 동료와 바람까지 난 사위와 결국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딸의 말에
“그려 됐다.
네 맘 편한 대로 혀“
"이혼하고 나오면서 그날
아빠한테 전화한 거였어요
김씨 아저씨랑 장기 두고 계시다기에
아빠에게 말씀드리려다가 그냥 끊은 거예요 늘 저 힘든 것만 말해서 죄송해요"
"아녀...그놈의 영감탱이가
자꾸 한 판 더 두자고 하여서....”
아버지는
가뭄 든 논바닥 갈라지듯
가슴 아픈 딸에게 차마 아팠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나 봅니다
시장을 함께 보며
집으로 걸어가는 딸의 눈에
띄엄거리는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버지 어디 불편하셔요 ?“
"아니다...
길이 어두워서 "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전화가 울립니다
"여기 xx 병원인데요
김병호 씨 x 월 x 일에 왼쪽 눈 수술하시고..."
어제 오른쪽 눈 수술하러 오시질 않아
전화드렸다는 말과 방문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딸은 한참을 시간의 건널목 너머로
그날을 떠올려봅니다
x 월 x일
그날이라면
내가 이혼하던 날
혼자서 그 수술실 문턱을 넘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내려섭니다
세상이란 이름 붙여진 하늘 아래
마음 둘 곳 없는 내 아버지는
딸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감춰버린 채
늘 딸의 마음이 먼저이신 내 아버지
"아버지....
못난 딸이어서 죄송해요.."
시간이 멈췄다
다시 시작되는 집으로
아버지가 핼쑥한 모습으로
들어섭니다
“어디 다녀오셔요?"
"어.. 김씨랑 장기 두다 왔어"
“식사 준비할 테니 얼른 씻고
들어 오세요 “
대문이 열려 닫으러 간 딸의 눈에
종이상자가 수북이 쌓인 손 구르마가
어둠이 지운 거리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아버지 옷에 묻은
흙먼지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딸
허기진 아버지 마음은
먼저 아는 딸이기에
아버지가 놓아둔 그 자리에
자신의 마음도 조용히 놓아두고
문을 닫습니다
가난한 날에는 모른 척하는 것도
죄가 되는 것 같아 오늘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소풍 가는 아이 마냥 들뜬 아버지는
으쓱한 어깨로 골목 모퉁이 슈퍼 주인을 보며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넵니다
"어서 최씨!
나 지금 우리 딸이랑
손자랑 병원 가는 길이여"
달을 지운 해님이 반겨주는
아침을 걸어가는 가족
손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잡은 아버지의 손
그 따스함이
아들의 손을 건너 와
딸의 마음에 전해옵니다
언제나
말없이 한쪽 어깨를 내어주시며
때론
별빛으로
때론
따스한 햇살로
사랑의 그늘이 되어주신
나의 아버지
까만 밤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저 달처럼
당신은 밤을 이기는
달 같은 내 아버지입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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