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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세이 백수 남편의 인생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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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1-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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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돛대 곽완근 작품001.jpg

 

백수 남편의 인생 한 잔

 

먼 길 가는 소낙비로

세상의 모든 길이 지워진 하루

아직도 행선지 없는 저녁비는

절름거리며 술상 위에 내려서고

있을 때

 

난 삶은 계란을 반으로 갈라

보름달을 띄어놓고

가난이 질퍽거리는 마른 멸치 서너개와 천정을 향해 목고개를

세운 소주병을

내 기울어진 인생처럼 눕혀

술잔에 담고 있었다

 

저무는 하루를 머리맡에 걸어둔 채

초저녁잠 일찍 들었다

 

. . ..”

 

따르는 술잔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뜬 아내가 말했다

 

온종일 논다고 피곤할 건데 좀 쉬라고..”

 

부질없는 날들이 모인 방안에서

.소일 하는 난

 

이때가 되어서야

내 마음이 쉬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빈 가슴 쓸어주듯 아내가 물었다

 

술이 뭐가 그리 좋냐고

 

난 목고개 비틀어진

멸치 대가리를 하나 씹으며 말했다

 

지나간 아픔도 내일의 걱정도

잊은 척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한숨을 쉬더니

널브러진 이불을 애써 가슴팍까지

끌어당기며 말을 이어갔다

 

어찌 하루가 멀다 하고

맨정신일 때가 없냐며

 

난 마른멸치

몸통을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내 마음을 세탁해서 널어 놓는 때가 지금이기에 난 술 먹을 때가 맨정신이라고..“

 

아내는 가난한 날에는 대답조차

죄가 된다는 듯 나를 노려보더니

다시 말했다

 

뭔 술을 365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 먹냐고

 

목이 말라 먹는다고..."

 

데쳐놓은 콩나물처럼 힘없이

난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내와 나 사이에

얼어붙은 침묵이 싫어 가난이 덕지덕지 눌러 붙어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새 술병을 들고 오는 나를 보고는

목에 힘을 주며 다시 물었다

 

또 목 마르냐고.?"

 

방바닥에 구멍 난 장판을 허트러진 웃음으로 긁어대며 난 말했다

 

목 마를까 봐 미리 먹는 거라고

 

아내는

날 닮은 축 늘어진 런닝 셔츠를

보며 말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

뭔 술을 그리 마시느냐고

 

 

난 아내를 마주볼 자신이 없어

내 발밑에 아깝게 떨어진 멸치 대가리를 주우며

 

사랑이 고파서 ...사람이 고파서....

정이 고파서.먹는다고 말했다

 

아내는 당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는 듯

노려보더니 한마디 더한다

 

술 마시면 빨리 죽는다고

 

 

난 기다렸다는듯 말했다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는게 인간이라고..”

 

TV 불빛 사이로 비쳐대는

아내의 독수리 같은 눈길을 피해

어둠이 풀어놓은 적막감에 나 홀로 깊어져 술잔 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잔에 뭐가 들었길래 쳐다보냐고

 

다시 물었다

 

노려보는 아내의 눈길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술잔을 내려다보며

 

사람 겉은 눈으로 보지만

속은 술로 본다며

행복도..슬픔도... 아픔도.

그리움도...이 술잔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난 말했다

 

아내는

내일 새벽을 달려 출근해야 한다며

꼴 보기 싫다는 듯 나가서 먹으라더니

 

"알코올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난 마누라 옆에 잠든 아들놈을 바라보며

 

"알코올 때문에 태어난 놈도 있다며

 

웃었다

 

 

시간을 세워놓고 술잔과 주거니 받거니 허물을 깨고 있는 날 더 볼 수 없었는지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저놈의 술이 원수라고

 

난 마지막 남은 쓰러진 멸치 대가리를 애써 세우며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술잔과 입술 사이에서

술 덤벙 물 덤벙 하는 나를보며

체념한 듯 하품으로 TV를 끄더니

 

인제 그만 마시고 내일 마시든지 하라며" 불을 꺼버렸다

 

난 그제서야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내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 마실 술을 내일로 미루면 안된다고말했더니

 

아내는 술먹는 나를 보면 할말이 많아지는가 보다 벌떡 일어나더니

 

술을 왜 그리 사랑 하냐고

화를 내며 물었다

 

 

난 굳어가는 내 혓바닥에 애써

힘을 주며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건 술이지만

한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건 사랑이기에

내 마음이 당신에게 가도록 운반하는 놈이 술이라고,,,,,,

 

 

난 술을 마시며 배웠다

 

아파도

슬퍼도

눈물이 나도

 

안 그런 척 웃으며 꾹 참는 법을...

 

중독되지 않는 슬픔을

너는 아느냐고...”

 

실랑이 하다 지쳐 잠든 아내처럼

창틀에 머물다 시들어버린 달을 보며

난 마지막 말을 하고 있었다

 

술 한잔에

풀 한포기라도 아름다워 질 수 있는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술잔도

인생도

넘치지 않을 만큼만 먹을 거라고..

 

 

나도 이제

나보다 더 취해 잠들어 버린

술병을 뒤로하고

아내가 잠든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내일 담배값이라도

놓아두고 갈 아내를 위해....."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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