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5월 첫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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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5-04 08:32본문
“쑥 캐는 소녀는 어디 있는가?”
4월부터 제 밥상에 어김없이 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쑥국입니다. 저는 쑥국이 맛있기도 하지만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옷을 입곤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마을 뒷동산을 넘으면 냇가가 하나 있는데 소녀는 냇가 건너편 마을에 살았습니다. 하루는 우리 동네 한 친구가 쑥을 캐러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그 소녀가 쑥을 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훔쳐보면서 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요, 그저 막연한 동심의 연모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같은 순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날 밤, 쑥 캐는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장착되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제 가슴에 사랑의 씨가 싹트면서 밤새 뒤척이며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도와줘야 할 일은 없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를 괴롭히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공부도 제법 잘했고 인기도 좋아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얼마 후,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1등을 못했다고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소녀를 보며 ‘다음 시험에는 일부러 몇 문제를 틀려서 그 아이에게 1등을 양보해 줘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녀를 위해 다음 시험을 일부러 망쳤는데도 다른 아이가 시험을 잘 보아서 그 소녀가 또 1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져 그 소녀보다 제가 더 속상하고 분했습니다. 몇 년 뒤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남자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지만 여자애들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는데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니는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저도 어느덧 중년을 넘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쑥 캐는 소녀가 어디에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기억을 간직할 뿐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회를 한 후 쑥 캐는 소녀를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오직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목양 사역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월, 5월이 되면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떠오르고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청춘, 아니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너무 삭막하고 강퍅한 시대 속에서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순수를 잃어버리고 온갖 야욕과 음모, 위선과 권모술수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마저도 너무 이념화, 정치화되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다시 순수의 시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쏙 캐는 소녀, 쑥 캐는 소년으로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목양 사역에 전념할 것입니다. 비록 빛바랜 추억의 흑백 앨범 같은 것일지라도 저의 가슴에 쑥 캐는 소녀와 같은 순수한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 기억마저 망각한 채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차갑고 삭막한 삶일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모든 성도들이 쑥 캐는 소녀라고 여기며 반깁니다. 새로운 4월, 5월이 되면 한 살, 한 살 나이는 더 먹어 가지만 변함없이 저는 다시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천국 갈 때까지 저는 콘크리트 도시의 경쟁과 야욕, 망상을 떠나 그 눈부셨던 순수 시대의 봄의 길을 걷고 봄의 사역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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