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밀함을 갈망하는 신부』 > 설교와칼럼

본문 바로가기

설교와칼럼

강해 『다시 친밀함을 갈망하는 신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7-13 09:47

본문

아가 강해(6) 다시 친밀함을 갈망하는 신부

1:7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지난 주간 자기 포도원 곧 자기 마음을 잘 지키면서 사셨습니까? 주일 말씀에서도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풍성한 삶이란 주님이 가득한 삶, 성령 충만한 삶, 은혜와 진리가 넘치는 삶, 하나님과의 친밀한 삶입니다. 지난 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왕의 침궁을 경험한 후, 그 경험에 대해 노하는 교회 리더들에 의해 포도원지기가 되어 곧 교회 체제와 형식에 맞혀 신앙생활을 한 결과 자기 포도원, 곧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해 주님과의 친밀함을 잃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신부들이 주님과의 내적인 관계를 멀리한 채 외적인 사역으로 분주하게 되면, 그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단 외적인 사역의 목적이 주님과의 내적인 관계, 곧 친밀함을 맺기 위함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시온교회를 설립하고 7년 동안 해 온 일이 무엇입니까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국제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사 2급 취득, 성폭력 상담소 소장,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시설장, 사회복지법인 이야기마을 이사,

 

21세기 세계부흥사협의회 임원, 인천시청신우회 지도목사, 인천매트로신우회 지도목사, 인천도시철도신우회 지도목사 등등을 하면서 외적으로는 풍성한 사역을 해 왔습니다. 이런 풍성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있었는데 교회가 도무지 부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외적인 사역을 통해 수많은 성도들이 몰려와야하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외적 사역을 통해 교회가 부흥했더라면 저는 낙원은 커녕 지옥에 갈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에야 제가 얼마나 하나님과 거리가 멀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불에 타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자기 열심 곧 자기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심히 부패했기 때문에 어떤 것도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땅의 소산물로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겨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한 하나님의 흘러나오심, 곧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다면 어떤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역이 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이나 봉사, 맡은 직분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사역 안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다면 그 사역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만족, 곧 자기를 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역이 자신이 하는 사역, 곧 죽은 사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주님을 떠나서, 곧 주님과의 친밀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주님과의 친밀함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과의 친밀함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심같이 요즘 사랑 없이 사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부부관계도, 부모와 자식관계도 사랑 없이 의무로만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의무로 사는 부부가 있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없는 의무는 관계를 해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단지 의무감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친밀함입니다. 주님의 신부들은 구원과 아름다운 신분을 얻음과 교회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영적인 만족과 안식 그리고 주님을 더 깊이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심령은 심히 갈망하고 방황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신부도 처음에 고백했던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라는 신랑과의 친밀함, 곧 교제와 동행함을 잃은 이유를 발견하고 이제 다시 친밀함을 회복하기 위해 신랑을 찾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신랑 되신 예수님을 찾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여기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라는 호칭은 술람미가 사랑하는 목자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잃었을 때마다 나타난 호칭입니다.

 

이 호칭은 주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만을 사랑하는 신부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당당히 했는데 주님이 네 마음에 아직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지 않니?”하고 물으신다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양심이 있다면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 자기 남편에게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라는 고백은 차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고백은 마음에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신랑만을 사랑하는 신부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에는 어떤 사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사심이 남아 있는 분들은, 온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지 못하는 분들은 다른 형제나 자매에게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은 쑥스럽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4:11,12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4:16,17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4:20,21 “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주님께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하는 고백을 온전히 하는 신부가 되어 내 이웃, 교회의 형제와 자매, 아들과 딸, 부모님도 내 몸같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7절입니다.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주님의 임재를 놓친 술람미 여인은 주님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에 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다시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입맞춤과 왕의 은밀한 침궁을 경험했던 신부가 다른 포도원지기가 되어 거무스름해졌고,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해 첫 사랑과 주님의 임재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간절히 구해야하는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다른 목자가 주는 양식에 만족이 없고 심한 환란 때문에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이제 주님이 제게 직접 말씀해 주시고 마음에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주세요!” 신부는 다시 말씀의 입맞춤과 왕의 은밀한 침궁의 체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첫 사랑을 회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참고로 왕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은 어디 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미리 아시는 겁니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7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여기의 네 동무 양떼는 앞에 나오는 너의 양떼 곧 주님의 양떼가 아닙니다. 주님 동무의 양떼입니다. 주님의 동무는 주님의 친구 곧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주님의 동무가 치는 양떼는 아직 말씀의 입맞춤과 왕의 은밀한 침궁의 체험이 없는 어린 양들입니다. 이들 틈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주님과 친밀함을 경험한 신부로서 얼굴을 가리운 자 곧 부끄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동무의 양떼는 신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말씀의 입맞춤과 왕의 은밀한 침궁에 대한 갈망을 도리어 이상히 여깁니다. 당시에 낮에 얼굴을 가린 여인은 대부분 창기였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모습이 주님 동무의 양떼에게는 이리 저리 헤매고 있는 창기의 모습과 같이 비춰질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위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티비와 영화와 오락을 끊고, 매일 말씀을 읽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너무 지나치게 보이지 않습니까?

 

주님 동무의 양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겁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물론 이 시기에 주님과의 친밀함을 찾아 헤매다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음 주에는 왕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친밀함을 찾는 방법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한 주 동안 열심히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고 기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사이트 내 전체검색
  • 주간 인기기사
    한국교회총연합 2024년 성탄절 메세지
    레위기 강해(2-2) 레 1:3~6절 하나님…
    곽에스더 목사 목양칼럼-38- 오늘은 참참참…
    靑松 건강칼럼(978)... 치매(癡呆) 원인…
    리버티대학 동문회, 한국에서 연말 송년회 행사…
    군산성시화운동본부, 송년모임 갖고
    지타즈 / 언부협 2025년 신년하례 감사예배…
    초기 교회의 성경과 초기 교회 신앙으로 돌아갑…
    키 작은 행복
    <2024년 성탄절을 맞으며> 불의하고 불법한…

그누보드5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청소년 보호정책(대표 겸 발행인 : 정기남)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지양로 176번길 32, (대운빌라 102호) 대표전화 032)672-3031
등록번호 : 경기, 아50924 | 특수주간신문 발행인/편집인 : 정기남 | 등록일/발행일 : 2007년 10월 17일
사업자번호 : 101-08-94879 | 후원계좌: 우체국 310029-02-152769 (정기남)
Copyright ⓒ 2007 크리스찬포토저널(CPJ), Allrights reserved. E-mail:cpj5037@daum.net
편집인 : H.P 010-5468-6574 / 032-672-3031(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