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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비록 검으나 아름다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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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6-2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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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강해(4) 1:5

비록 검으나 아름다운 신부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지난 한 주간 왕되신 주님의 침궁으로 이끌어 달라는 간청을 해보셨습니까? 이 체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만 영접한 분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제자일 뿐입니다. 이 단계에 머물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아가 강해가 힘 들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은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가지지 않은 종,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종의 훈련은 오직 순종에 있습니다. 아니 복종이 더 어울립니다. 이 복종 훈련을 통해 점점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친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통해 점점 자기 생각과 의견이 하나님의 생각과 의견으로 닮아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의 모습과 생각까지도 점점 닮아가는 것같이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이런 닮음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단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같이 아들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닮는 다는 것은 형상만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성품과 습관까지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같이 하나님의 형상은 모양뿐만 아니라 성품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점점 하나가 됩니다. 이 하나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과 몸도 하나요 마음도 하나가 되는 상징입니다.

 

저희는 아가를 통해 이런 신부로의 출발을 한 것입니다. 부디 빠지지 말고 이 신부수업에 동참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가서 1:5절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그들은 진지하지만 아직 영적으로 미성숙한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왕의 침궁의 체험을 한 술람미 여인이 자기의 신앙 고백을 합니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여 모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침궁을 체험한 신부는 주님과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갖기 시작합니다. 이때 비로소 자신이 검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검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7:18~2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바로 자신이 검다는 사실, 곧 아담안에서의 죄의 본질을 알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왕의 은밀한 침궁을 체험하면 즉시로 자신의 검음을, 곧 더러움을 발견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왕의 침궁을 체험한 신부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다 자신은 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영화롭게 된 의의 본질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여 의인되게 하기위해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로 자신이 검다는, 곧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아름답다는, 곧 의롭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검으나)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아름다우니)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이것이 아름다운 신부들의 당당한 모습들입니다.

 

본문은 이 두 가지 검으나아름다우니를 비교함으로써 말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이 두 가지를 필히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그리도인의 모습은 검고도 아름답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검은 모습만 보고 낙심하여 침륜에 빠집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교만해 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검은 모습을 보고 낙심하여 침륜에 빠진 성도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야 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교만해 진 성도는 자신의 검은 모습을 보아야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아직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다 검고도 아름다운 존재들입니다. 검다가도 아름답고 아름답다가도 검은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안에는 검은, 새까만 옛사람, 곧 겉사람이 있고 아름다운 새사람, 곧 속사람이 있습니다. 이 둘이 항상 대적하므로 서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싸움이 바로 빛과 어두움의 영적싸움이고 이 영적싸움은 왕의 침궁에 들어가 주님의 영광의 빛을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에게 이끌려 왕의 침궁에 들어간 경험은 우리가 주님과의 첫사랑을 경험한 것과 같습니다.

 

검고 검은 죄인들이 주님을 영접하므로 거듭나서 아름다운 의인들이 될 때 날마다 찬송과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밤새워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하나님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오고 이제 다시는 과거의 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합니다. 어두운 그림자는 이제 결코 나에게 찾아올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너무나 신령해 졌음을 보고 이 신령한 삶이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황홀했던 모든 감정이 순간에 사라져서 평범한 자리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그 황홀한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어떻게 해야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제는 [아름다우니]에서 [검으니]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돌아온 탕자 비유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과의 첫 사랑을 경험한 신부가 그 첫 사랑을 잃게 되는 과정을 거쳐서 다시 그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신부의 정해진 과정 같습니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게달은 아라비아 사막에 거하는 유목민족입니다. 게달의 장막은 흑갈색의 염소가죽으로 만든 칙칙하고 거무죽죽한 아주 볼품없는 천막입니다. 솔로몬의 신부 술람미는 자신을 게달의 장막에 비유합니다. 이는 왕의 침궁에서 영광의 빛을 본 후에 자신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왕의 침궁에 들어가 왕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즉시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어두움과 더러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반면에 자신이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의 휘장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쳐져 있는 눈부시게 하얀 커튼을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사람들에게는 검고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솔로몬 왕은 그녀를 아름답고 귀하게 보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를 아름다운 존재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신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검지만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직 검고, 게달의 장막같이 부족함과 연약함과 어두움과 더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보면서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에 변명하거나 반격을 가하려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우리는 온전한 신부로 성장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너는 이미 나의 피로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새하얗게 씻겨 졌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더 이상 더러운 존재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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