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장한국 목사코너-60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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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4-12 09:57본문
장한국 목사코너-60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요 1: 1)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는가? 독생자 예수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그 답은 단적으로 생명을 얻게 함이요. 더욱 그 생명을 풍성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 생명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로 깨우칩니다. 또 생명으로 충만할 수 있게 합니다. 그 요한복음의 첫마디 말씀이 곧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입니다. 이는 간단하지만 많은 신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사도 요한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앞선 자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는 주 재림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 하는 영적 생명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그 생명으로 사는, 즉 종말의 144,000의 반열에 속한 자입니다. 그는 멜기세덱 제사장과 그가 한 큰일을 잘 알고 증거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라 칭함 받으며, 주님 품 안에 기대므로 주님 사랑 안에 붙잡힌 사도입니다. 즉 생명으로 충만한 그 입니다. 요20:31 이를 기록함은 너희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육안이 아닌, 또 영안으로도 볼 수 없는 창세 전, 생명 세계에서 된 요1:1의 말씀은 오로지 요한같이 생명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요1:2절의 창세 때의 태초와 다릅니다. 아무런 피조물이 없고 신령계가 없는 영원 자존 하시는 하나님만 계셨던 그 생명계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이 독생자를 낳으신 것임을 가리킵니다(시2:7). 이때부터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독생자는 성자 하나님이 되시어 함께 영광을 누리십니다. 그리고 우리 곧 생명의 아들들을 낳으셨습니다(히2:11).
우리는 그 후 지금 이 땅에 수육한 때에도 하나님만을 참 아버지로 부르게 하십니다(마23:9). 왜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 출생한 그분의 친아들들이 됐다고 하심을 믿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 우리가 생명의 눈이 떠졌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또 ‘태초에 계신 그 말씀, 즉 독생자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계셨다’ 함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헨’(ἡν)이라는 동사 미완료시제입니다. 즉 영원전부터 시작, 현재적으로도, 또 미래적으로도 영원까지 계신 분이라는 뜻이 미완료시제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할 것을 택하셨고, 또 예정하셨습니다. 두 분 하나님이 똑같으신 하나님으로서 이처럼 위대한 사역을 하시면서 영화롭게 계시었음을 가리켜 ‘함께 하셨다’ 하십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즉 그 말씀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원을 친히 맡아 이루시는 독생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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