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7월 첫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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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7-06 07:48본문
“두려운 영광, 설레임”
지난 목요일 오후에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에서 ‘영혼을 담은 시 쓰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백일장대회에 가는 것만큼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상을 갖고 순간순간 시가 찾아올 때 쓸 수 있지만 시 창작 강의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지만 ‘시란 무엇인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 분은 못 봤습니다. 그냥 자기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삶의 이야기로 마감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할 수가 있죠. 저에게도 많은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적지 않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의안을 준비해도 왠지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나 일반인 앞에서 강의를 한다면 그렇게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고 스트레스였습니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큰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꼭 두려움과 불안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영광스럽고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였습니다. 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나기마을 촌장이신 김종회 교수님께서 어느 정도는 저의 필력과 구술력을 인정하셨기에 저를 강사로 부르셨지 않나 싶어 더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엿장수, 사탕장수의 이야기로 시작하였고 상여의 만가 소리를 시연하며 시 강의를 접근 했습니다. 결코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할 수도 없고 일어서면 강의안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보이고 안 보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고를 이미 그림 언어로 거반 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무슨 꽃으로 내 가슴을 문질렀는지 땀이 눈속으로 들어 갈 정도였습니다. 종교적 언어, 신앙의 언어를 쓰지 않아도 시는 에덴을 향한 원형 혹은 근원을 향한 향수적 갈망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움에 대한 향수를 이미지 언어로 쓰는 것이 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어느 누구도 저항을 하거나 반발을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설교를 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가끔 억양이나 설교의 이미지가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강의 흐름 상 모두 수용하고 용납하는 듯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김종회 교수님께서 “이곳이 대학 강의실이라고 한다면 교수로서도 99점을 줄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나도 그 설렘이 싹둑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련과 아쉬움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1시간 40여 분 동안 강의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많은 시간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했습니다. 아쉬움은 미련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설레임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하기만 합니다. 좀 더 잘할 수도 있었다 싶었는데 저희 장모님이자 기도의 어머니이신 정금성 권사님이 오셔서 부담감이 더 커져 갔습니다. “아니 지금 젊은 연세도 아니신데 왜 여기까지 오시는가...”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저의 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다 하지 못했던 저의 시론이 활자화 되기를 바래 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김종희 교수님, 참석해 주신 주민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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