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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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6-03-31 09:18본문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요 18:12~27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이 보낸 자들에 의해 결박된 채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Annas)에게 먼저 끌려가셨습니다. 안나스는 대제사장을 지낸 자로 그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Caiaphas)의 장인인데, 먼저 안나스 앞으로 끌려간 것을 볼 때 그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 영향력이 매우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12-13). 가야바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는 말을 했던 사람입니다.(요 11:50). 안나스는 예수님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심문(審問)하였습니다.(19).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트집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공공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가르쳤었기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다 들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20-21). 다른 사람들 몰래 숨어서 은밀하게 가르친 것도 아니었고, 수많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씀하신 때도 많았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다시 묻는 것은 꼬투리를 잡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답에 대제사장들의 아랫사람 중 하나가 예수님을 치면서 대제사장 앞에서 무례하게 답한다고 나무랍니다.(22). 예수님은 올바르게, 제대로 답하였는데 어찌하여 치느냐고 반박하십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 앞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전하셨고, 거짓된 가르침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심문하고 있는 셈이니, 대제사장들이야말로 오히려 엄청난 신성모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나스의 심문이 마치자, 안나스는 예수님을 그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보냈습니다.(24). 안나스의 심문은 사적인 심문이라고 한다면, 가야바의 심문은 산헤드린(Sanhedrin, 공회)에서의 공식적인 심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박된 채로 가야바 앞으로 끌려가셔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24).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와 그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 중간중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들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제자 요한과 베드로가 함께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바로 옆에서 따른 것이 아니라,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갔었을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는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제자 요한을 가리키는데,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5).
요한 아마 요한은 아마 대제사장과 친척 관계였든지, 다른 일들 때문에 서로 교류가 있었던 관계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심문받으시는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요한이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공언했던 자입니다.(요 13:37). 그런데 문 지키는 여종 앞에서(17), 함께 불을 쬐던 사람들 앞에서(25), 그리고 대제사장의 한 종에게(26-27),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는데(27),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따르겠다고 공언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심문하는 대제사장들 앞에서 당당하셨고, 제자 베드로는 주변의 하인들에게까지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는 연약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예수님 자신이 곧 진리이시기에 당당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예수님에 대해 온전한 신뢰를 하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고 부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곧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모든 세상의 기준이 되시는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사람임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는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
요 13:1~17
말씀 김복철 목사(그리스도의교회 직전총회장)
예수님은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때가 가까운 줄을 아신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제자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1).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행하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을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이제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가까웠기에 제자들이 제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게 하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다 알고 있으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시던 중에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차례대로 씻어주시기 시작합니다.(3-5).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출했다가 자기 집이나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면 손과 발을 씻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정식적인 정결례(淨潔禮)는 아니어도, 손과 발을 씻음으로 정결함을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씻을 땐 그 집의 가장 낮은 자가 물을 내어오고 손과 발을 씻도록 도와주거나, 하인이 있을 경우에는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어쩌면 이 황당한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베드로는 참지 못하고 “주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려고요?”라고 묻습니다(6).
이러한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의 이 상황을 너희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나중에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7), 베드로는 완강(頑强)하게 거부합니다. 스승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나 같다”라고 말씀하셨고(8), 이에 베드로는 “그럼 제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9).
주님이 자신의 발을 씻겨 주님과의 관계가 이어진다면, 온 몸을 씻어주면 더욱 돈독(敦篤)한 관계가 될 것 아니겠냐는 의미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온몸이 다 깨끗하니 발만 닦으면 된다는 것입니다.(10). “너희가 다 깨끗하나 다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10). 바로 가룟 유다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11). 예수님의 말씀을 풀이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온몸이 깨끗함을 입은 것과 같기에 더 이상 다시 씻을 필요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다니다 보면 발에 티끌이 묻을 수 있으니 발만 씻으면 되는 것처럼, 구원받은 자들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죄악에 넘어지기도 하니 주님께 자백의 기도를 드리며 그 죄를 해결하고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말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받게 됩니다. 이 구원은 다시 잃어버려지지 않는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이후에도 종종 실수하고, 죄에 넘어지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잃어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실수와 죄에 대해 주님께 자백하고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주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항상 필요함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온전히 믿었던 것이 아니기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말씀으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1).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라고 가르치십니다.(13-14).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16).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주님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큰 자는 없습니다. 모두 종으로서,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더 크냐며 따질 것이 아니라, 종된 자세로 다른 이들의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섬겨야 할 자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본 보이시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신 것입니다.(15). 이것을 제대로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7).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히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드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 내려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빌 2:5-8에서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낮은 자의 모습으로 지체들을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섬겨야 할 지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고, 섬김의 태도로 섬기는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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