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행복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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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29 18:15본문
행복 부부
가을이 열린 틈으로
울긋불긋한 물감들로
색칠해 놓은 한적한 공원에
휠체어 한 대가
한가로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영감…. 힘들지 않아요?”
“힘들긴….
나무들이 반겨주니까
너무 좋은 걸..”
“그럼 됐슈...”
머무는 바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지나온 이야기 하나 마음첩에서 꺼내어
숨 한 조각
내쉬듯 속삭이며 걸어가는
노부부의 하루는
참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감!
우리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가을 나무들이
깔아준 낙엽들이 뒹굴고 있는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랑
행복만을 사랑했던 사람처럼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또 다른 벤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젊은 부부는 부러운 듯 말을 건넵니다
“두 분 정말 사이가 좋아 보이세요”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태우고
나온 산책길이 힘들기도 할 텐데
웃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사시면서 화내고
다투시거나 그런 적 없으세요?”
“있었지”
“그럴 땐 어찌하세요?”
“우린 결혼하기 전에 약속을 했어
화가 나거나 싸울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하지 말고 3일 뒤에 얘기 하자고“
“아!
그런 비법이 있으셨군요”
“두 분께서는 사이가 너무 좋아
사시면서 이혼 같은 건 생
각 안 해보셨겠어요?“
“이혼하면 뭘 해
난 위자료로 아내를 청구할 텐데“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할아버지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계셨는데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뭔 줄 아나?“
“사랑, 행복, 기쁨 뭐 이런 거 아닌가요?”
“그렇지..
자네가 말하는 사랑…. 행복·기쁨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부부라는 단어 안에 다 들어가 있다네“
“아…. 네 그렇군요”
“ 자네….
왼손이 아프면 어찌하나?”
“그럼 오른손을 많이 쓰겠죠”
“부부는 두 손처럼
한쪽이 아프고 힘든 걸
대신 채워주는 사이인 게야“
부부의 행복은
넘치는 걸 나누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기쁨으로 사는 사이란
말을 끝으로
가을이 그려진 길을 따라
행복으로 덧칠한 집으로 걸어가면서
"왼쪽…. 으로 가세요
이젠 오른쪽..."
할머니의 목소리에 맞춰
휠체어를 밀고가는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 이란 걸
알게된 젊은 부부에 입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를 보았습니다“
라는...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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