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나는 구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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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2-14 08:37본문
#노자규 작가의 오늘의 추천 글
나는 구직자입니다
<<<저를 채용해 주십시오>>>
부모님이 피땀 흘려보내 준 돈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나는
인생 낙오자 소리 듣지 않으려 이력서를 써 전단지 나르듯 면접을 보라 다녔지만
인생의 배낭 속에 채워 넣은 게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가던 어느 날
"봉구야...애미다"
"네 엄마"
"직장은 잘 댕기는겨?"
"그럼 잘 댕기지!"
"짤린건 아니지?"
"엄만 ..우리 회사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니깐"
"그래그래 내 새끼 장하다"
<저를 채용해 주십시요>
라는
벼룩시장에 광고도 내봤지만
같이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이젠 구직을 포기
했다며 오는 문자를 보며
게으른
해님이 밝혀 놓은 아침을 걸어나갔다
일에 지쳐 돌아오는 저녁이 있는
하루를 살고 싶단 소박한 바람 하나
가지는 것조차도 죄가 된 것 같은
세상을 원망하며 누가 씹다 버린 달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열심히 비워나가고 있었다
"난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
구직자들의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는지….
사랑에도 적금이 있다는데
변변한 적금통장 하나 없이
먹고 사는 게 지옥 같은 하루를 지워보려 밤새 구인란만 뒤적거리다
천정에 신문지가 붙은 벽지를 보면서 눈을 떴다
남들처럼 그렇게만 살자고 다짐하며 길을 나선 나는 부는 대로 흘러가는 바람이 되어 어디론가 흘러가다 유리창에 붙은 "영업사원 구함"
이란 광고지를 보고 들어가서는
"네 잘할 수 있습니다"
시골로 끌려 내려가 농사를 짓지 않으려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은 결국 팔아야 봉급이 나오는 자동차 외판원 이라도 해야만 했기에
"**자동차에서 나왔습니다"
"밥 사 먹을 돈도 없는데 뭔 차를 사라 그래요...차 안 사요."
벌게진 얼굴로
숫기조차 없던 난 동상처럼 서서
뒤돌아 나오는 하루만 되풀이하며 신발 밑창만 닳도록 다리품을 팔고
다녔지만
늘 닫힌 문만 바라보듯 허탕만 쳐대다
때늦은 저녁 옥상에 앉아 밥 대신 애꿎은 술잔만 비워대고 있었다
"하나님….
사람은 반품이 안 되나요?"
나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동네방네 설치고 다녀도 누구하나 알아주는이 없는 늘 뒤처진 뒷바퀴 같은 인생
왜 내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내 앞을 스쳐 간 어제라는 증거 앞에
오늘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위기의 나를 반겨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 날 오후
별다른 것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붙잡고 출근 퇴근 다음에 퇴사가 빈번해지는 세상을 원망하며 발품을 팔고 있을 때
"네네 사장님
지금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며칠 전 들렀던 야채가게 사장님께서
트럭 견적을 받고 싶단 전화에
바람을 몰고 다니는 태풍처럼 뛰어간 택시 승강장엔 길게 줄이 서 있었고
맨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내 눈에 승강장 기둥에 걸터앉은 할머니 한 분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서는 구깃구깃 색바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젊은 양반….어기 적힌 주소로 갈려면 택시를 여기서 타는데 맞는거유?"
"저도 그쪽 방향인데 같이 타시죠"
우연히 함께 탄 택시 안에서 난 할머니가 내민 주소를 기사님께 보여주며
"여기 먼저 가주세요"
고불고불한 동네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에서 내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주소가 요 근처 같은데
아드님 집을 잘 찾아가시겠어요?"
"고맙슈 젊은 양반….
몇 번 와서 찾아갈 수 있다우 "
처음 본 할머니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기사님….약속 시간에 늦어서
그러는 데 좀 빨리 가 주세요"
처음 계약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부푼 나는 더디게만 가는 택시 안에서
뒷자리에 떨어져 있는 할머니 것
으로 보이는 보따리를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 거래처 사장님과
보따리를 잃어버리고 울먹거리고 있을
할머니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저 기사님…. 죄송한데요
좀 전에 할머니를 내려드렸던 곳으로
다시 가주세요"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돌아간 기분으로 도착한 그곳에는 집을 찾지 못한 할머니가 거기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이게 누구여
젊은 양반이 어떻게 다시 온 겨?"
"보따리를 놓고 내리셨더라고요"
"아이고 내 보따리…."
십 년만에 모지 상봉 한 사람처럼 반가움을 얼굴에 그리며 종이에 적힌 주소를 찾아 벨을 눌러봤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고
"젊은 양반….괜히 이 늙은이 때문에 일도 못 하고 이거라도 마시게나"
시골에서 우려온 식혜 병을 꺼내려
보따리를 푸는 순간 먹거리들 사이에
끼워져 있는 낡은 수첩을 발견하고는
큰아들이라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여보세요'"
"저 혹시 김춘자 할머니 아드님 되시나요?"
"네 제 어머니입니다만…."
하루 햇살에 묵은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고는
"전 급한 볼일이 있어 가봐야 하기에
할머니는 집 앞에 앉아 계시라 할게요."
"십 분 뒤쯤 도착할 겁니다
나무 감사해서 뭐라도 사례를 해야 하는데…."
"아닙니다
그럼, 이만…."
할머니와 살가운 작별을 하고
달려가던 차 안에서
"약속 시간 안 지키는 사람하곤
거래하고 싶지 않네"
꼬여버린 하루를 곱씹으며
애먼 달님에게 화풀이를 해대며
비워가던 술잔이 물결치며 나를
삼키려는 순간 울리는 소리
((((카톡….)))
< 할머니 아들입니다
통화를 끊고 나니 광고 문자가 하나 남겨져 있어 보니 **자동차 판매 일을 하시는 분이시더군요>
영업사업의 필수조건인
통화가 끝나면 명함이 바로
전송되는 서비스에 가입한 걸
뒤늦게 기억해낸 나는
다음 날 아침
술이 덜 깬 나를 깨우느라 지친 햇님에게 윙크를 해대며 할머니의 아들이 보내준 주소로 달려간 그곳은 큰 공장 이었고
"덕분에 제 어머니께서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앞으로 우리 회사 차량은 모두
김범석 씨에게 구매 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두 팔로
저를 힘차게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저 태양은
품는 자의 것이라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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