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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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31 09:11본문
아가서 강해(13) 아 2:1~2절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지난 한 주간 어여쁘고 화창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가 되셨습니까?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서 엔게디 황무지를 거쳐 주님을 몰약 향낭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 체험하였기에 눈이 비둘기를 닮아 신랑을 어여쁘게 보는 눈을 가진 신부의 눈에 신랑은 화창하다고 했습니다.
언제 신랑이 이렇게 보입니까? 마음의 눈이 비둘기 곧 성령님의 시각과 생각으로 변화될 때 신랑은 어여쁘고 화창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내적으로는 안식과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되고 외적으로는 주님과의 관계가 영원하여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 견고함과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마음을 지키며 변치 않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님으로부터 입은 사실을 알기에 신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이 고백은 고전 15:9,10과도 같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리에 이른 까닭이 오직 왕의 은혜임을 알기에 먼저 왕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사랑을 고백한 후에 겸손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사론은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 서쪽에 길이 약 48㎞에 이르는 평야입니다. 지금의 사론지방은 이스라엘 인구의 반 이상이 살고 있으며 농업과 관광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구약시대의 사론 땅은 지금과는 다르게 척박하고 쓸모없는 땅의 대명사였습니다.
결국 사론은 평야와 황야를 뜻하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에도 생과 사, 복과 화가 있음이 꼭 평야와 황야로 상징되는 사론과 같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이런 세상에 있는 수선화라고 인식합니다. 수선화는 자기애와 자만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선화는 이스라엘에 가장 흔하고 하찮은 꽃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수선화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왕의 침궁을 경험한 후에 그 경험을 이해하지 못해 노여워하는 어미의 아들들로 인해 그들의 포도원지기가 되어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을 깨닫고 다시 왕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출발한 신부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아 1: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 담대하게 자신을 자랑하던 술람미 여인이 왜 자신을 수선화라는 겸손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까? 아가 1장을 통과한 신부들의 고백은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 고백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 주님은 신부에게 앞선 성도와의 교제와 교회에서 어린 영혼을 돌보게 하셨고 주님을 몰약 향낭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겸손해 져야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마음을 높게, 교만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만이 받은 은혜가 많으면 많을수록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망을 가져오는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허락하신 이유와 같습니다. 선과 악을 경험하지 못한 아담과 하와에게 뱀의 유혹을 통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함으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권리를 얻게 하셨고, 그들이 선을 알고 악을 알았기에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들은 다 여자의 후손입니다. 예전에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악을 행하던 우리가 이제는 악을 원수로 여겨 짓밟고 선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신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아는 자가 진리를 아는 자고 진리를 알기에 악을 심판하고 선을 택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된 사탄을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통해 심판하시길 원하심 같이 교만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같습니다. 은혜를 계속 받지 않으면 교만해질 염려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냐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고백도 합니다. “하나님 제발 은혜 좀 주지 마세요! 은혜만 받으면 사탄이 자꾸 저를 시험하니 너무 힘들어요! 교만해져서 멸망당할까 두려워요! 그러니까 이제 은혜는 사양하겠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끊긴 분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길 원하십니까? 그럼 겸손해지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기 위해 사탄에게 교만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멍청한 사탄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열심히 은혜 받은 자들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시험을 통과한 성도는 교만을 이겼기에 더 겸손해져서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향한다면 교만의 시험을 통해 더욱더 겸손해짐으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도구로 사용되는 사탄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사탄은 우리를 연단하는 도구로 사용 받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던 사람들의 고백이 다 한결같이 겸손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롬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사야의 고백입니다.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세례 요한의 고백입니다.
막 1: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저희 교회는 계속하여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통한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게 될 것이며 제사장의 기름부으심과 선지자의 기름부으심, 왕의 기름부으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때 시작되는 사탄으로부터 나오는 교만의 시험을 잘 통과하시는 사론의 수선화가 되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고백합니다. 백합화는 기쁨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 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이 말씀은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 같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수선화와 같이 자기애와 자만으로 살던 술람미 여인이 왕을 만나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해졌기에 골짜기의 백합화가 된 것 같이 우리도 어떤 골짜기와 같은 힘든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주님으로 인해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어야 합니다.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길 원하십니까?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시겠습니까? 그 방법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골짜기의 백합화는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기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직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찬양하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골짜기의 백합화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시각과 생각으로 마음이 변화되어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상태가 마태복음 6:28에 나와 있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들의 백합화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데 어떻게 자라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 우주만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자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맡기고 골짜기의 백합화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때 주님이 신부에 대한 평가를 보십시오! 아가 2:2입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골짜기의 백합화가 된 신부는 분명히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의 전환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가 있는 신부는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들이란 왕의 사랑을 입지 못한, 주님과의 친밀함이 없는 신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육체에 속한, 땅에 속한 그리스도인이고 성전 마당만 밟는 어린 신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시나무가 되어 백합화를 찌릅니다.
갈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육체에 속한, 땅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신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신앙과 열심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같이 찌르는 것입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여자들’은 ‘가시나무’와 같은 말이고 ‘내 사랑’은‘백합화’와 같은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서 가시나무에 속한 여자들이 백합화같은 신부들을 핍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신부단장하는 성도들과 기름 준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을 핍박하는 때가 곧 옵니다. 가시나무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저주 받아 생긴 나무입니다. 교회에 사탄이 뿌려 놓은 가라지들이 바로 가시나무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뜻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은 주께서 임하시는 날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저주입니까? 들림 받지 못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땅에서 순교를 당해야 겨우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저주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저주는 목숨이 아까워 순교도 차마 못하고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고 결국에는 주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시나무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백합화가 되시겠습니까? 가시나무는 지옥불에 살라지게 될 것이고 백합화는 신부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저주받은 가시나무가운데 백합화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시나무로부터 어떤 핍박과 찔림이 있어도 도리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백합화가 되십시오! 눈이 비둘기 같아 왕과의 친밀함을 회복한 후에 겸손하게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하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하는 칭찬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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