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왕의 상에 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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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04 09:19본문
아가 강해(9)(아 1:12절)
왕의 상에 앉으려면?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지난 한 주간 헌신과 능력으로 자기의 부족함을 가리고 모든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과 은혜를 전파하시면서 잘 사셨습니까? 이렇게 사셨다면 지난 한 주간 신부단장을 잘하신 것이며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해 가장 현명한 투자를 하신 것입니다.
벧전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모든 육체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까? 육체와 연결된 곳은 바로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떨어지는 꽃과 같습니다.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만이 세세토록 있습니다. 영원합니다. 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사는 것, 곧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육체가 아닌 영혼을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육체를 위해 투자하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해 투자하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보이는 육체를 위해 투자한 부자와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해 투자한 거지 나사로의 종말을 비교해 보시고 영원한 삶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를 현명하게 선택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의 신부로 성장하는 과정을 세세하세 표현하였기에 신부 단장하여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알아야할 말씀입니다. 매주 강해하는 아가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여기서 왕은 솔로몬 왕이며 주님을 상징합니다. ‘왕이 상에 앉았을 때’왕이 상에 앉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지난 주간에 전한 말씀을 이루고 있는 신부에게 잔치상을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헌신과 능력으로 자기의 부족함을 가리고 모든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과 은혜를 전파하는 신부에게 특별히 잔치상을 베푸십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헌신과 순종과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사탄의 송사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 시험을 잘 통과하지 못하면 받은 은사를 땅에 묻어두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탄에게 속아 자기에게 맡기신 사역을 내려놓고 멈추거나 뒤로 후퇴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지연 시킵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헌신과 순종과 복음을 전파할 때 주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잔치상을 베푸십니다. 이 단계에서는 도리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기에 헌신과 순종과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주님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자에게 더욱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의 상에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는 자격을 살펴보겠습니다. 삼하 9장 전체를 합독하겠습니다. 구약 476쪽입니다. 1절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원수 되었던 사울의 집에 친구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푸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인해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과 같습니다.
요나단이 낳은 아들 절뚝발이인 므비보셋은 다섯살 때 부친 요나단과 조부 사울 왕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이 때 비보를 들은 유모가 므비보셋을 양육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안고 도망치다가 떨어뜨려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그는 사울과 원수였던 다윗을 피해 두려움 속에, 다윗의 마음을 모르고 요단 동쪽 드발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다윗왕은 그의 선친 요나단과의 우정과 약속 때문에 그를 궁전으로 불러다가 사울왕의 재산을 돌려주고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같이 하게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왕의 식탁에 함께 앉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도리어 원수의 손자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비인 요나단과 다윗 왕의 우정과 약속 때문에 모든 재산을 돌려받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가 왕의 상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는 값없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겸손히 왕의 상 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면 므비보셋이 고백한 그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삼하 9:8절입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자신에게 아무 자격이 없다는 것, 왕의 식탁에서 먹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런 므비보셋과 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고백하는 겸손함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왕의 식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삼하 9:13절입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 곧 왕이 거하는 곳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두 발이 다 절뚝거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분입니다. 야곱도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다 환도뼈가 부러져 절은 후에야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두 발이 다 절뚝거리고 있습니까?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깨닫고 계십니까?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십니까? 그러면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예전에 주님께 은혜 받았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실패했을 때입니까? 성공했을 때입니까? 부족했을 때입니까? 넉넉했을 때입니까? 넘어졌을 때입니까? 서있을 때였습니까? 못했을 때입니까? 잘했을 때입니까?
제 경험은 제가 실패했을 때, 부족했을 때, 넘어졌을 때, 못했을 때 마음이 무너지고 속이 상해 주님께 무릎을 꿇고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소서!”하고 애통하며 눈물 흘릴 때, 그때가 바로 은혜가 임하는 때였습니다. 지금 수많은 신자들이 왕의 상에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잔치상으로 배불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모르는, 스스로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일에 선포되는 말씀만 마음을 열고 들어도 자신이 얼마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인지를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을 스스로 열지 않으니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막 4:10~1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발견할 수 없기에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귀신들이 방해를 해서 딴생각을 하게하고, 머리를 아프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므로 말씀이 마음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 회개하여 죄사함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므비보셋 같이 깨지고 부서져서 죽은 개가 되고 두 발이 다 절뚝이가 되어 항상 왕의 상에 앉아 먹으므로 왕의 침궁에 함께 거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우리의 잔이 넘치게 하사 먼저는 주님께 드려지고 다른 이에게도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왕이신 주님이 상에 앉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은혜와 약속을 의지하여 왕의 식탁에 나아가 드시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것입니다. 그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입니다.
나도 기름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 머리에 부은 향유입니다.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왕의 상에서 함께 먹으므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우리의 옥합 곧 겉사람은 깨어지고 향유 곧 속사람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의 상에서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 안에는 나도 기름이 쌓여지고 그 쌓여진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어떤 기름이 나오고 있습니까? 나도 기름입니까? 아니면 썩은 기름입니까? 원리는 간단합니다. 그날 먹은 것이 변으로 나오는 것 같이 주님의 상에서 매일 주님과 함께 먹는 신자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나도 기름이 나올 것이고 사탄의 상에서 매일 사탄과 함께 먹는 신자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썩은 기름이 나올 것입니다.
주님의 상에서 매일 주님과 함께 먹는 신자는 주님이 주시는 생각 곧 영의 생각을 합니다. 사탄의 상에서 매일 사탄과 함께 먹는 신자는 사탄이 주는 생각 곧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기 원하십니까? 영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육신의 생각입니까? 지금 먹은 것이 뒤로 나오는 것 같이 지금 받아들인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상에서 매일 먹는 신자는 영의 생각이 말과 행동을 통해 향기를 토할 것입니다. 사탄의 상에서 매일 먹는 신자는 육신의 생각이 말과 행동을 통해 썩은 냄새를 토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상에 나아가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말과 행동을 통해 향기를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아 1:3절에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하고 왕께 고백했던 술람미 여인이 이제는 자신의 나도 기름의 향기를 토해내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아가 강해를 듣는 여러분은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신부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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