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서 강해(41) 아 5:3절 동산이 된 신부와의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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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4-19 15:46본문
아가서 강해(41) 아 5:3절
동산이 된 신부와의 불일치
아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지난 한 주간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순종하며 사셨습니까?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운 아이를 세워 놓고 엄마, 아빠가 양쪽에서 아이를 부르며 오라고 할 때 그 아이는 자기와 친숙한 사람에게 먼저 걸어가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사탄이 양쪽에서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할 때 누구에게 마음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사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과 항상 기뻐하지 말라는 말이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누구에게 문을 여시고 계십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과 범사에 감사하지 말라는 말이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누구에게 문을 여시고 계십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과 염려하라는 말이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누구에게 문을 여시고 계십니까?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미워하라는 말이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누구에게 문을 여시고 계십니까?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과 불평하라는 말이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누구에게 문을 여시고 계십니까? 아이가 친숙한 사람에게 걸어가듯이 여러분도 친숙한 존재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존재와 하나가 되어 열매를 낳을 것입니다. 주님은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지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열매는 씨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 씨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의 씨와 사탄의 씨가 있고 우리 마음은 씨를 심는 밭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금이나 은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지으신 것은 우주의 두 존재의 씨를 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사탄의 씨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씨를 택해 마음에 심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씨인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거절하고 사탄의 씨인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말을 택해 마음에 심었기 때문에 육체의 열매, 곧 육체의 일을 맺은 것입니다.
갈 5:19~23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아담이 사탄의 씨를 받아 들인 결과가 바로 롬 5:12절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망을 맛보므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거듭나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음으로 이제 성령님과 함께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롬 5:17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한 사람 곧 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이 무엇입니까? 죄와 사탄이 왕 노릇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육체의 일을 행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자아를 높이고 죄와 사망과 사탄에게 복종한 것입니다.
염려하라고 하면 염려했고, 거짓말하라고 하면 거짓말 했고, 술 취하라면 술 취했고, 불평하라면 불평했고, 미워하라면 미워했고, 이 모든 것이 다 죄와 사망과 사탄에게 복종한 것입니다.그런데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여러분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까? 바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가 육체의 일을 벗어 버리고, 세상을 끊고, 자아를 죽이고, 죄와 사망과 사탄을 멸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 염려하지 않는 것이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면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시면 술 취하지 않는 것이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시면 불평하지 않는 것이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면 항상 기뻐하는 것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기 위해서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심고 순종함으로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문 열어 다고!”라고 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시는 것은 열매를 거두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가 바로 여러분 마음에 있는 몰약과 향 재료입니다. 몰약과 향 재료 곧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마음에 모으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 열어 다고!”하시는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예를 들자면 “성내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성내는 자아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여 성내는 자아를 죽이는 것이 몰약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내지 않는 자아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실을 마음에 받아 들여 성내지 않는 자아를 부활시키는 것이 향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통해 항상 기뻐하지 않는 자아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여 항상 기뻐하지 않는 자아를 죽이는 것이 몰약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는 자아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실을 마음에 받아 들여 항상 기뻐하는 자아를 부활시키는 것이 향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생명이요 다 영입니다. 생명과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부활한 자신의 영을 통해 혼 안에 심을 때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에 심을 때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의 난자 안에 남자의 정자가 심겨질 때 생명체가 생기고 자라서 탄생하는 것같이, 흙에 씨앗이 심기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같이,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신 말씀도 근본된 토지인 사람의 마음 곧 혼 안에 들어와 자라야 열매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혼이 이미 사탄에게 종노릇하던 혼이기에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신 말씀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후에는 반드시 마음의 할례인 성령세례를 받고 새 마음이 되어 그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새 마음 안에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 대해 생각을 열고, 그 말씀에 대해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그 말씀에 대해 의지를 다해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입덧의 과정 곧 회개하고 자복하는 과정을 통해 염려하지 말라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새 마음 안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모든 말씀에 대해 생각을 열고,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의지를 다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전 시간에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는 주님의 요청에 망설이고 있는 그래서 잘찌라도 마음은 깨어있는 신부에게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고 문을 두드리는 주님에 대한 신부의 응답입니다.
지금까지의 신부의 상태는 주님의 동산이 되어 주님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게 하고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젖을 마시게 함으로 주님을 만족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더 높고 큰 부르심인 주님의 친구들을 먹이고 주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시고 많이 마시게 하는 일에는 동의하지 않기에 잘찌라도 마음은 깨어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아가 2장에서도 잔치집에서 주님의 사랑을 누리던 신부가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주님의 요청을 거절하므로 주님의 임재를 놓쳤는데 이제 주님은 더 크고 높은 자리로 신부를 끌어올리기 위해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한 모습으로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어떤 모습입니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밤새 간구하고 기도하신 모습입니다. 지금 신부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의를 위해 핍박받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거짓으로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듣는 모습입니다. 신부는 주님의 동산이 되어 안식을 누리는데 주님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일하시고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통해 신부와의 불일치를 알려 주시고 신부를 깨우십니다.
이렇듯 주님은 성도님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고후 11:23~30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이렇게 주님이 신부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신부가 얻을 영광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탄도 이러한 주님의 뜻을 알기에 똑같이 흉내 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슬람 교도들의 순교가 그렇습니다. 저들이 자살테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4가지 믿음 때문입니다.
1. 모든 죄의 면제입니다. 2. 천국에 자신을 위해 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3. 천국에서 70명의 처녀인 아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가족들의 자리를 천국에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려서부터 듣고 세뇌가 되었는데 순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지금 주님은 우리 시온교회와 여러분에게 고난의 자리로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문을 열 준비가 되셨습니까?
가나안에 들어오신 여러분에게 육체를 벗어버리고, 세상을 끊고, 자아를 죽이고, 죄와 사망과 사탄을 멸하고,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이 고난의 자리로 나오라는 초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알지만 아직 순종할 마음이 없었기에 잘찌라도 마음은 깨어있던 신부가 주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초청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신부는 이미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하므로 승천의 단계에 이르러 주님께 몰약과 향 재료를 모아 거두게 함으로 주님께 꿀송이와 꿀을 드시게 했고 젖과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 상태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와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킨 후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고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 신을 벗은 것과 같습니다. 이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의 전쟁을 시작해야하는 것같이 신부도 옷을 다시 입고 발을 더럽히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 주님 안에서 옷을 벗고 발을 씻었기에 안식을 누리고 계신 신부가 계십니까?
골로새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주님의 남은 고난 곧 교회를 완성시키기 위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의의 옷, 곧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는 옷을 입으시고 복음의 신, 곧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때문에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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