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설교 [쓸데없는 가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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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6-01-10 23:51본문
쓸데없는 가지 1.
찍어내 버릴 무화과나무의 존재는 누구인가!

한글킹) 눅 13:6~9 ‘주께서는 또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더라.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은 후에 와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지라. 7 그가 포도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 삼 년 동안 내가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나 얻지 못하니 잘라 버리라. 어찌하여 쓸데없이 땅만 버리느냐?'고 하니 8 그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여, 금년만 그대로 두소서. 그러면 내가 그 주위를 파고 거름을 주리이다. 9 만일 열매를 맺으면 좋거니와 맺지 아니하면 그때는 잘라 버리소서.'라고 하였노라."고 하시더라.’ 아멘.
신구약 성경에서 열매를 비유로 하여 말씀하신 구절들이 참 많다. 그 열매들의 형태를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면 태의 열매, 행위의 열매, 입술의 열매, 손의 열매, 마음의 열매, 의인의 열매, 선한 열매, 빛의 열매, 의의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 하나님 나라의 열매, 영생의 열매, 사망의 열매 등등 참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말씀의 핵심은 열매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포도나무 사이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다. 그리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많은 날 동안 무려 이 삼 년 동안 기다리며 애쓰는 가운데 관리해 왔다.
그런데 포도밭에 심어놓은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주리라 믿고 기대했는데 그러나 열매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이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지켜본 과수원 주인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인은 과수원 관리인을 불러놓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가리키면서 쓸데없이 땅만 버리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잘라 버리라는 것이다. 주인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훗날 무화과나무를 찾아와서 잘 자란 무화과나무에 기대가 컸다.
그래서 열매는 맺었겠지? 하고 찾아보는 데 열매가 없다. 이럴수가 열매가 없다니, 그래서 포도원지기를 불러 말하기를 ‘보라, 이 삼 년 동안 내가 와서 열매를 찾았으나 열매가 없지 않는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땅만 버리고 잇었다며 쓸모없는 저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과수원 주인이 그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이 무엇일까요? 과수원 토지가 많이 남아돌아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무화과나무를 원두막용으로 심었을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여기 과수원 주인이 이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은 열매를 수확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한 이 무화과나무는 잘랐어야 했는데, 과수원 주인이 이 삼 년 동안 와서 보았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인은 진노하면서 과수원의 관리자를 불러서 내가 이 삼 년 동안 와서 기다리면서 기회를 주었건만 열매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기대할 가치가 없으니, 쓸데없이 땅만 버리지 말고 잘라 버리라는 것이다.
7절에 보시면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나 얻지 못하니, 잘라 버리라. 어찌하여 쓸데없이 땅만 버리느냐?.’고 하였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고 구원해 주셨고, 우리를 하나님은 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삼아주셨다. 이 엄청난 이 은혜가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요 그 존재 가치가 바로 열매에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열매 맺게 하는데,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와 끓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그 증거로 열매 맺는 데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 15:16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 선택받아 임명된 자들, 열매가 맺혀 있는 자라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인든지 아버지께서 주시겠다는 이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덮어놓고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실 때 준비된 자들, 열매가 맺혀 있는 자들의 구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임명받은 자들에게 열매 맺을 것을 요구한다. 사도 바울은 개정) 고후 9:10~11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요 15:8에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는 이 일로, 내 아버지께서 영화롭게 되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주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열매이다.
열매를 목적으로 심는 자에게 하나님은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또한 하나님은 너희 심을 것을 주셔서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 의의 열매로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는 연보도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 더 나아가 축복을 넘치게 받았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복을 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이 맺는 많은 열매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다. 또한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목적은 열매 맺는 데 있다. 아멘.
하지만 명심할 것은 열매 맺지 못하면 멸망한다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열매에 있다. 1. 열매 맺지 못했다는 그 자체가 죄라고 했다. 멸매 맺지 못한 증거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포도원 주인이 삼 년 동안 기회를 주면서 지켜보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열매가 없다는 말이다. 그토록 기회를 주고 기다렸지만, 결국 열매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진노하셨다.
주인은 진노를 발하면서 문제의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하셨다. 땅만 버리는 나무는 필요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가 이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땅만 버릴 뿐이라고 진노하셨다. 오늘 말씀의 의미는 바로 열매 없는 존재는 쓸모없는 존재란 의미이다. 땅만 버리는 쓸모없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잘라 버리는 게 낫다는 말이다. 거듭 말해서 열매 맺지 못한 그 자체가 멸망 받는 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베다니에서 (베다니란 뜻은 번민하는 자의 집, 또는 가난한 자의 집, 탈무드에 의하면 푸른 과일의 집, 그러한 뜻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시장하셨다.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셨다.
그리스도께서 다가가셔서 무화과나무를 보시는데 열매가 없었다. 무화과나무는 크고 잎이 무성한데, 그러나 있어야 할 열매가 없다. 무화과나무는 그 특징이 먼저 열매가 나온다. 그리고 잎이 나온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서 먹을 때가 되면, 잎이 아주 무성한 때인데 이때 열매를 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진노하시며 저주하셨다. 마 21:19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라’. 고 그리스도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그 무화과나무는 말라버렸다고 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열매가 있어야 할 때인데도 잎만 무성했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 한국교회를 바라볼지라도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열매가 없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었음에도 열매가 없다. 이들 중에는 십일조의 열매가 없다. 감사의 열매가 없다. 봉사의 열매가 없다. 용서의 열매가 없다. 포용(包容)의 열매가 없다. 입술로는 열매가 있는 것처럼 큰소리는 치는데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는 열매는 없다.
열매는 없고 온갖 껍데기만 무성하다. 잎만 무성하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열매만이 거두어 가시는 것이지 잎사귀는 필요하지 않다. 쭉정이로 변할 무성한 잎사귀는 필요 없다. 열매 없는 신앙인은 잎만 무성한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린다고 하셨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나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결과는 제거되고 만다. 열매 맺지 못하는 죄인들은 심판의 도끼로 찍어내어 불에 태우실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죄 가운데 두 가지만 생각해 보아도 놀랍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한 예로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음행하는 것, 악한 행위들이 다 죄가 된다. 이처럼 악한 행위들이 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들이다. 무화과나무의 의무는 열매에 있다. 그런데 열매 맺지 못한 소극적인 죄를 지었다는 말이다. 성경에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책망을 받고 난 후 흑암 한 곳으로 쫓겨났다. 성문 밖 흑암 한 곳으로 쫓겨나서 이를 바드득 바드득 갈며 유황이 타는 곳에 떨어져 고통하는 그 종은 적극적인 면에서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남을 속인 것도 아니다. 도둑질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를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익을 내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 두었다는 게 문제이다. 은행에 저축해서라도 이를 남겼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그 한 달란트마저도 빼앗아서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넘겨주었으며, 게으른 종에게는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라, 고 했다.
이 말씀에서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래도 다 쓰지 않고 주인에게 본전이라도 가져왔으니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비양심적인 문제의 인물들이 있다. 금전 관계를 가졌는 데 결국 본전까지 떼어먹는 비 양심가가 많다. 그래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본전이라도 가져왔으면 되었지? 그걸 봐서라도 용서는 받지 않겠느냐 할지 몰라도, 그러나 그 종은 바깥 흑암 한 곳으로 쫓겨나서 영원히 형벌 받는 자가 되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 죄이다. 열매 맺지 못한 죄의 결과였다. 하나님께서 무수히 기회를 주셨다. 열매 맺는 기회를 주고 조건까지 다 주었다.
무한정 기회를 주었음에도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일을 거절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거절한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자연은 쓸모없는 존재를 용납하지 아니한다. 쓸모없는 악한 종을 결박하여 성전 밖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인 그런 자를 찍어버릴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할 비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우리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나무 본체를 떠나는 가지는 곧 말라서 죽고 만다고 하셨다. 가지의 생명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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