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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칼럼

강해 일어나서 함께 가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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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9-2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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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강해(17) 2:10~13

일어나서 함께 가자 1.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지난 한 주간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며 잘 사셨습니까? 그 음성이 세상을 끊고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는 여러분을 흔들어 깨우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 곧 교회생활에 적응하여 마음에 전혀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 안식을 하게 됩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 수요기도회, 금요예배, 구역예배 등등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수준이라면 이제는 마음에 전혀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고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주일성수만 하고 있어도 전혀 마음에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하고는 상관없이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그곳에 머물러 있기에 마음에 부담이나 불편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주일성수뿐 아니라 십일조, 수요기도회, 금요예배, 구역예배 등을 권유한다면 즉시로 마음에 부담과 불편함이 생겨서 신앙의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좁은 문, 협착한 길로 가야 구원을 얻는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자기 목숨을 잃어야 구원을 얻는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라는 진리를 선포한다면 거반 다 도망갈 겁니다.

 

그래서 도망갈 염려가 있는 어린 양들을 위해 최소한의 주일성수만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교회들이 많다 보니까 더더욱 바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딤후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많은 신자들은 지금 바른 교훈인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따르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보다는, 넓고 큰 문으로 인도하는 허탄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허탄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과 마음으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입니다주님과 사도들은 새 언약인 하나님의 생명과 마음으로 사는 천국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생명과 마음으로 사는 천국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4년 전까지 다른 복음으로 전하면서도 제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거반 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기에 분별도 못한 것입니다.

 

1:6~12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들이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 주시겠다는 새 언약을 전한 것입니다. 9:13~15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 언약의 중보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가지고 계셔야 다른 복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번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간다는 소리가 복음입니까? 다른 복음입니까?

 

죄사함을 받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무죄시대에 살던 아담과 하와가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전에도 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천국에, 마귀의 생명을 가진 자는 지옥에,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들은 다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질 수 없고 그로인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천국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아야 성령님을 선물로 받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죄사함은 거듭나기 위한 과정에 불과 합니다. 거듭나야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이 비로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죄사함이 구원이 아니라, 죄사함을 통한 거듭남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사함이 구원이라고 외치며 예수님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만 받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다른 복음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다른 복음을 들어서 쇠뇌를 당했기에 아무리 주님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다고 하셔도,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셔도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만 받으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도 천국에 간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죄사함이 자신에게 실제가 되면 자연스럽게 거듭납니다. 죄사함을 주신 목적이 우리에게 의롭다함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듣고 회개한 후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실이 믿어지는 은혜가 임할 때 거듭나게 됩니다. 마가복음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십자가 복음을 듣고 회개해야 십자가가 복음이 믿어짐으로 곧 죄사함과 의롭다함이 믿어짐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님이 왼손으로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안은 신부는 주일 성수와 십일조, 수요기도회, 금요예배, 구역예배 등등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수준이기에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수준에서 스스로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다면, 만족하고 있다면 큰일입니다. 이런 수준이 주님께 책망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3:15~17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님이 왼손으로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안은 신부는 광야생활을 통해 육체의 일과 세상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다 끊어버렸기에 주님이 베푸신 잔치집에서 말씀 묵상과 기도로 안식과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신부를 깨우기 위해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이 음성을 발하시는 것입니다. 그 음성이 무엇입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십니까? 오늘 이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부는 주님께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 나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 고백은 먼저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 사랑을 깨달았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은 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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