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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 종말 속의 구원의 소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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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2-0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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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으로 죽은 기독교를 살리자

- 종말 속의 구원의 소망 -

 

현 본방송 칼럼리스트 송택규 박사.jpg

  지금 지구에서는 환경오염과 기독교의 타락으로 인한 대재앙의 징조로서 종말론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매가톤급의 대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폭풍, 화산 폭발, 기아, 전쟁, 타락, 경제 침체, 물고기와 새들의 떼죽음, 곤충들의 대이동, UFO의 잦은 출현, 대종말론, 천체의 이변 등 지구의 종말론적 대재앙을 예고하는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21세기의 놀라운 경제 발전과 눈부신 과학 발전으로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진 인간들이지만 대재앙 앞에서는 무력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왜 이러한 재앙들이 오는지조차 그 원인을 규명치 못하고 앞으로 닥쳐오는 대재앙을 바라보고만 있다. 인간들의 영적인 무지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그 현상만 바라보지, 그 현상 뒤에 있는 영적 사건은 보지 못하고 그저 두려워 떨 뿐이다. 3000년 전 인류의 역사 속에 인간이 홍해바다를 걸어서 건넌 사건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왕에게서 빠져나오게 된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의 바로왕은 성정이 강퍅하여 하나님이 내리신 9가지 대재앙으로도 항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대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의 1년 안 된 모든 장자들이 모두 죽어 온 나라에서 곡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내 주었다. 그러나 노예로 부려 먹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가 버리는 것을 끝내 원하지 않았던 바로왕은 그들을 다시 잡아오기 위해 군대를 동원, 마침내는 홍해 앞바다까지 추격해 왔다. 장자가 죽어 절망 가운데 있었던 애굽왕과 해방의 기쁨과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에 차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은 반전되었다. 출애굽으로 들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또다시 절망만 보였다.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좇아오고 앞에는 검푸른 홍해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이집트 군대들에게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정반대로 승전의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적 한계요, 능력의 한계였다. 인간의 눈으로는 한쪽은 절망처럼 보였고, 한쪽은 승리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기적이 일어났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인류 역사 이래 최초로 200만 명이 넘는 무리가 바다를 걸어서 건넜고, 뒤에 좇아오던 애굽 군대는 뒤를 좇다가 물이 덮쳐 전멸을 하였다.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능자요,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였다. 바로 인류의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적 세계인 것이다. 오늘날 환경오염의 멸망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이다. 종교의 타락은 인간의 심성을 병들게 하고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고 자연까지도 파괴시키며 인류의 멸망을 초래케 한다. 성경에서 인류의 멸망사를 보면 인간이 타락했을 때 자연히 멸망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재해나 또는 그밖의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하였음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이미 지구의 대종말이 예언되어 있다. 그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중에 적은 수의 의인들은 천국으로 들어가지만, 나머지 수 많은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종말과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바로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느냐, 아니냐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들에게 모든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사 놀랍게도 이교 종교에는 없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구원관을 우리에게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1. 기독교의 핵심적 사상

기독교의 핵심적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원관은 열차에 있어서 레일(Rail)과 같은 것으로, 레일이 구부러지거나 파손되면 열차가 탈선되어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레일의 방향이 잘못돼서 다른 노선과 맞닿게 된다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1-2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척량하여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으며, 47:1~12절에서는 믿음과 구원의 성장 단계를 척량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11:1~2)

 

1) 기독교 타락의 문제점(구원 교리의 난맥상)

기독교 구원의 교리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각 교파마다 제각각 내용이 다르고 순서가 달라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달라 일반 성도뿐 아니라 목회자들까지도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 무엇이든 진리의 정답은 단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도 각 교파마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만이 옳은 진리라 한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관이 아닌 인간이 자의로 만든 잘못된 구원관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혼미한 교리는 우리의 생명을 죽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신뢰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왜 교파마다 구원의 교리가 다른가?

기독교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있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나 추산으로 300여 종파가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기독교 이름만 빌렸을 뿐 보수나 진보적 기독교단과는 전혀 다른 이단종파들도 있다. 그러나 이단 종파들을 제외하고도 종파 나름대로 다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이 교리 중에서 가장 핵심적 교리가 바로 구원관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믿음의 기둥이 되는 구원에 이르는 순서들ʼ이 서로 다르다. 한 하나님, 한 예수 그리스도, 한 성령님인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왜 구원(천국)으로 가는 길이 다른 것일까? 길이 다르면 서로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 있는 것일까? 이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럼 보수적 대표 교파 몇 개만 살펴보자, 대표 교파 중에는 장로교파와 감리교파, 침례교파가 있다. 이 교파들 속에 두 개의 큰 사상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는 칼빈주의 사상이요, 또 하나는 알미니안 사상이다. 칼빈 사상은 16세기경 장로 제도를 확립한 칼빈이 주장한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을 강조하고 있는데, 장로교 측에서 이를 따르고 있다.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중시하고 인간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웨슬리의 감리교 쪽에서 따르고 있다.

 

이 두 사상은 서로 상관없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에 다 있는 사상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분리시켜 서로 다른 사상처럼 주장하는 데 있다. 이것은 서로 분리 되어 대립될 사상이 아니라 둘이 하나로 수용되어야 합당한 사상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펴나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상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들이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기계적인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형상 즉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자기 의지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하게끔 하셨다. 그러나 단 하나 조건을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즉 말씀 안에서의 자유인 것이다. ‘에덴동산 안에서 자유를 주셨으나 중앙에 있는 실과(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부여받았으나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였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만 행하면 행복하고 주권을 침해하고 밖으로 나가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일부분인데, 이것을 이분법으로 갈라놓다보니 교파가 생기고 서로 대립적 구도로 나가서 파가 갈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로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주장하다 보니 한 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고 가르쳐, 교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하였으며(요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절대로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상도 생겨났다.) 또한 감리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너무 상반된 교리가 됨으로써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알미니안 주의를 따른다 하더라도 침례교는 이 두 가지 사상을 동시에 수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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