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아가 강해(43) 아 5:6절 다시 임재를 거두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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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5-03 18:44본문
아가 강해(43) 아 5:6절
다시 임재를 거두신 이유?
아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지난 한 주간 문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틈으로 내민 주님의 사랑의 손을 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에 여러분의 손과 손가락, 모든 행동을 통해 죽음의 향기인 몰약과 몰약즙이 나오는 신부가 되셨습니까?
주님의 남은 고난 곧 교회를 완성시키기 위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의의 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때문에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라는 주님의 음성에 머뭇거리던 신부가 문틈으로 내민 주님의 사랑의 손을 보므로 문을 열었다는 것은 신부가 주님을 위해 다시 옷을 입고, 발을 더럽히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아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지금 신부가 벗은 옷은 무엇이며? 신부가 다시 입어야 하는 옷은 무엇입니까? 신부가 씻은 발은 무엇이며? 신부가 다시 더럽혀야 하는 발은 무엇입니까? 먼저 신부가 벗은 옷은 거듭나기 전에 옛 사람의 옷입니다. 옷은 대부분 성도의 행실을 말합니다. 주님께 몰약과 향 재료를 모아 거두게 하는 신부의 단계는 이미 옛 사람의 행실을 벗은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옛 사람의 옷 곧 옛 사람의 행실을 벗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정결하고 좋은 옷을 입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일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을 입고 다닌다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거리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을 입으면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호응과 관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에는 두 종류의 옷이 있습니다. 바로 몸에 입는 옷과 마음에 입는 옷입니다. 이 두 종류의 옷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눈에도 보이고 상대의 눈에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마음에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입니까? 아니면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입니까?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은 사탄이 준 것입니다. 불평하고 미워하고 염려하고 화내고 판단하고 술 취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우상숭배하고 이 모든 것이 다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입니다. 혹시 아직도 이런 옷을 입고 계신 성도님이 계십니까? 이렇게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을 입고 다니기에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거리낌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도가 계십니까?
가끔 길에서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 구걸을 하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그 거지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거리낌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그 거지를 흉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쾌하시겠지만 저와 여러분이 그 거지와 같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은 악한 행실로, 곧 옛사람의 옷을 입었기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존재였습니다. 혹시 그때 악한 행실 곧 옛사람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부끄러워한 적이 있습니까?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엡 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는 다 과거에 허물과 죄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서는 죽었던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상태입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인 옛사람의 옷 곧 옛사람의 행실을 걸치고 있습니다.
지금 신부는 이런 옷들을 이미 벗어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이미 벗은 옷입니다. 그러면 다시 입어야 하는 옷은 무엇입니까?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 없는 새 옷, 이 옷은 하나님이 주시는 옷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하며, 섬기고 감사하며 순종하는 것,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것, 사랑장을 이루는 것, 팔복과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입니다.
특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지금 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옷입니다. 이미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안식하고 있는 신부에게 주님은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다 벗어 버리고 안식하고 계신 성도가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벌거벗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벌거벗고 있는 신부에게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옷이 바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더럽고 냄새나고 찢어진 낡은 옷인 옛사람의 옷 곧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렸다고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범죄하기 전에 벌거벗었던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이 주신 가죽 옷을 입은 것같이 사탄에게 속한 옛사람의 옷 곧 옛사람의 행실을 다 벗어 버려 벌거벗은 후에 그 수치를 하나님께 속한 새사람의 옷 곧 새사람의 행실로 가리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제 신부가 씻은 발은 무엇이며? 신부가 다시 더럽혀야 하는 발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가 씻은 발은 이미 신부가 벗어 버린 옷과 같은 옛 사람의 행실입니다. 옛 사람의 행실을 씻어 버렸기에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발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이 신부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신부는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혹시 여러분 중에 옛 사람의 행실을 다 씻어 버려서 다시는 발 씻을 일이 없는 성도가 계십니까? 옛 사람의 행실을 다 버렸기에 더 이상 죄를 자백할 일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주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상관이 있기 위해서는 주님께 발 씻음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발이 더럽지 않고 깨끗하다면 어떻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발은 더러워야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안식하고 있는 신부의 발을 씻겨 주님과 상관이 있게 하시려고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신부가 자신의 발이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주님과 가장 가까웠을 때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고백을 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옛 사람의 행실을 다 씻어 버려서 깨끗한 발을 가진 신부는 새 사람의 행실을 입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을 더럽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으로부터 발 씻음을 받아 주님과 상관, 곧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옛 사람의 행실을 다 벗어버리고, 다 씻어버려서 벌거벗고, 깨끗한 상태로 아주 편하게 안식하고 있었던 성도가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으려니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려니까 다시 자신의 더러움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다시 더러운 옷과 더러운 발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옛 사람의 옷 곧 옛 사람의 행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불평하고 미워하고 염려하고 화내고 판단하고 술 취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우상숭배하는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씻어버렸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하며, 섬기고 감사하며 순종하지 않는 것,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않는 것, 사랑장을 이루지 않는 것, 팔복과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항상 기뻐하지 않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지 않는 것,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단계로 신부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님은 문밖에서 머리에 이슬이 머리털에 밤 이슬이 쌓여가며 계속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지난 주에 선포한 아 5:4,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시기 위해,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히시기 위해 문틈으로 내미신 주님의 손을 보셨습니까? 죄 없으신 주님이 신부를 얻기 위해, 신부와 영원히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손, 바로 그분의 사랑을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일어나서 주님을 위해 문을 여셔야 합니다.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기위해 마음을 여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발견한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씻어 버리므로 죽음의 향기인 몰약과 몰약의 즙이 마음의 문빗장에 스며들게 될 것입니다. 아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지금 신부는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기 원하는 주님을 위해 문을 열었는데 주님은 벌써 물러갔습니다.
그로인해 신부는 정신이 나갔고 주님을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아가 2장에서는 주님이 잔치집으로 인도되어 주님의 사랑을 만끽한 신부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요청을 하셨고 그 요청을 거절한 신부에게 징계를 목적으로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신부는 정결하고 향기나고 흠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기 원하는 주님을 위해 문을 열었는데 주님은 자신을 감추신 것입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바로 정결하고 향기 나고 흠 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기 위해서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것처럼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신 것처럼 신부는 다시 한번 주님의 버려둠,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전에 불평하고 미워하고 염려하고 화내고 판단하고 술 취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우상숭배하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깨달은 후에 사탄에게 속한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린 것같이
이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하며, 섬기고 감사하며 순종하지 않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않고, 사랑장을 이루지 않고, 팔복과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지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자신을 감추시고 신부에게 다시 죽음의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옛 사람의 옷,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려 침상에서 안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님의 임재와 친밀함을 놓친 성도가 계십니까? 그렇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주님께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겠습니까? 아니면 다시 주님의 임재와 친밀함을 위해 주님을 찾겠습니까? 정결하고 향기 나고 흠 없는 새 옷,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의 옷, 새 사람의 행실을 입게 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신 주님을 찾아 다시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에 이르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성도의 옳은 행실을 갖추는 완벽한 신부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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