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29) 고독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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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2-08 14:31본문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29)
고독 훈련
외국의 어떤 책에 보면 ‘오직 고독 속에서만 사람은 자신을 찾는다’는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독을 외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가능한 한 고독의 그림자를 자기의 생활에서 지워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물리치려고 하는 고독을 자청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독은 우리가 겪는 고독과는 다른 형태의 고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독은 ‘우리를 위한 고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고독’이었습니다.
고독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독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결혼을 한다든지 공동체에 참여하는 등 여러모로 노력합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철저하게 고독을 느끼셨습니다.더 나아가 고독을 자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독하게 된 예수님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독은 우리와는 다른 진리를 위한 고독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고독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분의 고독은 배신당한 고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많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와 순종, 섬김과 희생의 본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기도와 관련된 예수님의 고독은 우리들이 겪는 고독과는 다른 거룩한 고독의 모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과 함께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홀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고독은 진리를 위한 고독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신 것은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자 하는 자기 성찰을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 가장 필요한 요소는 ‘온유와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거울에 늘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진리를 위한 고독은 거룩한 고독입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위한 고독은 축복되고 거룩한 고독입니다. 노아는 이러한 고독을 사무치게 느낀 사람입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은 노아만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그는 홍수를 대비해 배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노아는 혼자였습니다. 진리를 향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고독을 맛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청하셨듯이 노아가 자청했듯이 우리도 그 고독을 자청하는 것이 사도영성 훈련을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 고독은 축복이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는 항상 기도하시되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고독’은 우리의 생명을 살렸고, 우리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고독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선택하고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마저도 침묵하는 듯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고독을 느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상고해야 하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독하게 되었다’는 것보다는 ‘예수님께서 그 고독을 극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인 고독으로부터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겪은 근원적인 고독은 영원자이신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그 결과 근원적인 고독을 초래했습니다. 이것은 운명적인 고독입니다. 이 고독을 우리 예수님께서는 홀로 극복하셨고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고독이 여러분에게서 떠나기를 원하십니까? 진정한 의미의 고독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진리를 위한 고독, 생명을 살리는 고독을 자청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이적의 기사를 보기 위하여, 항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았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독한 분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운데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중에도 ‘집이나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으나 언제나 혼자였으며, 생의 마지막에는 제자에게까지 배반을 당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고독으로 예수님 자신이 원하셨고, 찾으셨던 고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독은 거룩한 고독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독의 거룩함은 그분의 고독 자체에 있는 거룩성 때문이 아닙니다. ‘진리를 향한 예수님의 고독’에,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예수님의 고독’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고독이었다’는 데 예수님의 고독의 거룩성이 있는 것입니다. 고독과 절망은 불신앙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인생의 고독 속에서 절망하며 애태우는 분이 있습니까? 영원한 친구가 되시며 인생의 질고와 고독과 슬픔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길을 따르려면 이러한 고독을 감수해야 합니다. 빛을 소유한 성도들을 세상이 기뻐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상 속에서 진리와 생명을 얻기 위하여 고독을 느끼지 않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진리와 생명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하여 느끼게 되는 고독을 오히려 기뻐하고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일에 쫓기더라도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조용한 시간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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