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31) 섬김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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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2-15 18:13본문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31)
섬김 훈련
사람들은 섬기기보다 섬김 받기를 원합니다. 라반이 두 딸 레아와 라벨을 주면서까지 야곱을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섬김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던 이유도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도 또한 사람들을 죄의 노예로 삼아 섬김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를 구원하고,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사 죽으심으로 ‘섬김의 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한마디로 이웃에게 봉사하시고, 헌신하시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치유. 가르침. 용서. 위로. 헌신. 섬김’. 이 모든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로마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한 후 본국의 국민들에게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러나 하늘 영광 보좌 다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섬기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맹종이 아닌 인격적 만남을 통한 신 인식 속에서 출발하는 믿음과 사랑으로서 이를 고백하는 헌신의 삶으로 성숙되어집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시는 예수님과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세상적인 정욕에 눈이 어두워 ‘누가 크냐’(막 9:34)고 하는 경쟁을 벌이며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는 본을 보이시고 서로 먼저 섬겨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막 9:35).
성도는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와 생활의 실천을 통하여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성숙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나,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다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섬기는 삶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과 설교 그리고 겸손한 삶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십자가의 쓴잔을 마셔야 할 일을 앞에 두고 기도할 때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수용함으로써 하나님 섬기는 참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생에 있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존귀케 하고 영광 돌리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은 미천하고 죄악 된 우리에게 더 큰 영광이요,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놓고 심히 고민하는데, 그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말합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 즉, 좌 정승.우 정승을 자기들이 차지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은 괘씸히 생각하고 분이 가득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꼴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을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신학자 ‘칼빈’은 말합니다.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현세적인 구세주’로 알고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곧 예루살렘에 입성하사 큰 권능으로 로마 정부와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정권이 이 땅에 세워질 때에 ‘누가 좀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천성적으로 누구나 다 타인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타인을 ‘섬기고 베푸는 존재’가 되려 하지 않고 섬김을 받고, 타인의 것을 나의 것으로 취하려는 자기 중심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자기 중심적인 본능을 ‘죄’라고 말합니다(롬 1:28-31).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말고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더 클까’ 하고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려 하고 주러 오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자기 소개는 인간의 보편적인 죄악의 본능인 ‘자기 중심주의’를 뒤집는 본질성을 지니고 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타인의 것을 받으려고만 하고 취하려고만 하는 정신적인 ‘허기감’ 내지는 ‘공복감’의 주된 요인은 ‘하나님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롬 1:21-28). 따라서 인간은 이 영적이며 종교적인 상실감을 물질적이며 피상적인 이웃의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써 오는 상실감은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만족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을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실한 공복감과 허기감에 몸부림치는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을 영접케 하시려고 ‘종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아지기를 원하셨던 분이시며, 겸손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생동안 죄인을 섬기셨고 죄인을 위해 죽는 일도 마다하 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인간을 섬기는 종이 되심으로써 만인의 경배를 받는 자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종이 되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속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자발적 의지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 세상 사람들을 귀히 여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의 모범 된 행위는 영적인 세척의 가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며, 죄로 오염된 영혼을 깨끗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씻겨져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씻김을 받은 성도들은 서로를 섬김으로써 그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해주고 용납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만 합니다(고전 6:11).
그렇다면 섬김의 삶을 사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의무는 성도들 서로간에 상호보완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고 그 보내심대로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랑, 섬김을 받기 위한 삶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 더 나아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형제로부터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며 이웃에게 무관심한 삶이 ‘사단을 섬기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단을 섬길 때, 사단은 섬겨야 할 이웃을 경쟁자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서로 섬기게 될 때 이웃은 더 이상 경쟁자나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값을 치르고 산 사람들로 성도들이 섬겨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봉사 단체인 ‘국제 로타리 클럽’의 좌우명은 “최고로 섬기는 이가 최대의 유익을 얻는다”입니다. 우리는 최고로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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