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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칼럼

설교 『참 목자 참 양의 삶』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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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3-08-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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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목자 참 양의 삶-4-

 

발행인 정기남 목사.jpg

편집인 정기남 목사

10:1~15

(2) 라반주의 목회관은 율법주의요 삯군 목자 형이다.

율법주의 목회자들, 또는 삯군 목자들은 라반과 처음 삯을 얼마 받기로, 계약에 의해서 고용된 품꾼들이다. 현시점으로 말한다면 부 목사나 교역자들 중에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양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별로이다. 처음부터 개척을 해서 오로지 기도로 말씀으로 성도들을 내 몸처럼 아끼며 사랑하면서 혼신을 다 쏟아 부은 목회자는 오직 성도들의 영적 생활에만 관심이 많다. 하지만 계약자로 일하는 교역자나 부 목사는 양떼들에 대한 열정,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책임감은 별로이다.

 

물론 열심을 갖고 교회를 섬기며 눈물로 기도하며 담임 목회자의 지시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부 교역자들도 있다. 어쨌거나 사실 양들에 대한 애착은 없는 것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양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인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하여 일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이들의 목적은 삯이다. 삯군 목자들이기 때문이다. 품삯에 매인 자들이기 때문에 매사에 율법적이다. 양을 키우는 즐거움도 목양의 기쁨도 모른다. 오로지 일정한 삯을 받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고된 노동을 하는 것뿐이다. 오직 소명의식보다는 물질의 댓가를 위해서 자신의 노력이 희생되므로 봉사의 기쁨도, 일의 보람도 없다.

 

교회를 개척하여 부흥된 교회의 목회자와 청빙을 받아서 부임한 목회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즉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양육시킨 부모의 심정과 보모의 심정은 다르다. 보모가 아무리 잘해 준다고 해도 자신을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이 보모와 같은 목회자, 이러한 목사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있는 양떼들은 주인과 일군과의 계약조건에 의해서 희생당하고 있는 샘이다. 이러한 목회자들은 양에 대한 관심보다는 언제나 삯을 더 많이 주는 다른 목장을 찾게 된다. 라반보다 더 많은 월급을 주는 주인을 만나면 언제든지 양떼는 생각지도 않고 곧 그 목장으로 옮겨 가버린다. 이러한 목자 밑에 있는 양떼들은 불쌍하다 못해 참으로 비극인 것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3) 애양(愛羊) 주의 목회관이 있다. 이는 야곱 형을 말한다.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29:10) 라고 했다. 들의 우물 아구에 큰 돌을 덮어 놓았다는 것은? 우물의 오염을 막자는데 있다. 또 다른 짐승들이 더럽히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잠근 동산으로 비유하고 있다. 또는 덮은 우물로 비유하고 있다. 또는 봉한 샘으로 비유하고 있다.(4:12), 목자가 우물 아구에 덮어 놓은 큰 돌을 옮기기 전에는 양들은 그 우물물을 마실 수가 없다. 그런데 야곱은 그의 외삼촌의 라헬이 양을 몰고 오는 것을 보고 곧 달려가서 우물 아구에 큰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먹인 것이다.

 

여기서 라헬은 우리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앞으로 야곱의 아내가 될 여인이다. 참된 목회는 양을 사랑하는 데 있다. 양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명을 망각하고 옛 생활로 되돌아간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15)고 물으셨다. , 하자그러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21:15)고 하셨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 있을 때 주님의 사랑하는 양 떼를 먹일 수 있다. 참된 목회는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목회란 양을 다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생산의 수단도 아니다. 어떤 삯을 위한 율법적인 의무에 의한 보수의 수단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고백이 그 동기가 되어야 한다. 현대교회의 위기는 곧 지도자의 소명의식의 결핍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라반형의 물량주의나, 삯군들의 보수 수단을 목적으로 하는 목자들을 배격해야 한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고된 목양의 노동이 고된 줄 모르고 7년을 수일같이 지냈다. 야곱의 목장은 곧 연애의 장소였다. 사랑의 시가 있고, 가정의 꿈이 있고, 애정의 노래가 있고, 눈물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목장에서 양떼들은 살찌고 기름져 간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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