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5월 마지막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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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2-06-01 08:35본문
“분리불안, 언제쯤 끝날까요”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크루즈 배를 타고 가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신학생 시절에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갔거든요. 그때 3-4시간 정도 걸린 걸로 아는데요, 저는 어디 앉을 데도 없고 그냥 갑판에 있으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갑판에서 보니까 방이 있더라고요. 신혼부부라든지, 아주 부티가 나는 양복쟁이들은 방에서 쉬다가 나오고 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쯤이나 저런 방을 이용해 보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 전, 북유럽에 갔을 때 2박 3일 동안 크루즈를 탔을 때 스위트룸을 이용했거든요. 그러니까 더더욱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월요일 저녁에 배를 타면 화요일 아침에 제주도에 내리고, 또 그날 저녁에 배를 타면 수요일 아침에 인천에 도착을 하니까 수요예배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예약을 해놨습니다. 물론 조그마한 집회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5.18유네스코 등재 기념재단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서는 세계방송인클럽에서 축사를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사양했습니다. 저 혼자 가는 게 아니고 몇몇 부목사들과 수행비서들이 같이 가기로 했는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목사님, 마음먹은 김에 이쪽으로 선택하시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마 취소를 못하고 제주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방을 들고 갔는데, 거기에는 책이 몇 권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그냥 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책을 가지고 가거나, 원고를 가지고 갑니다. 책을 읽든지 안 읽든지, 그것은 뒷일이고 꼭 그걸 갖고 다녀야 든든합니다. 그것을 안 갖고 다니면 스스로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가려니 왜 그렇게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제가 난생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보통 목사님들은 안식년도 하고 또 안식월을 갖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식년은 고만두고 안식월도 한 번 못해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딱 이틀 교회를 떠난다고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좀 회복을 위한 쉼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무조건 직진으로 달려왔거든요. 그런데도 교회를 나와서 차를 타고 인천 연안부두로 가는데 왜 그렇게 어색하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일종의 ‘분리불안 증세’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로 교회를 비우다니...” 배를 탔는데도 설렘보다는 분리불안이 더 강하게 저를 억압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데... 삼십 수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이틀을 비워 본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편치를 못한단 말인가.”
제주도에 도착하여 오름길을 걷는데도 순간순간 교회 생각, 사역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소평 소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언뜻 저에게 위로가 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사도 바울도 일종의 강박이 있었고 분리불안 장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만 생각하면 염려가 되고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바울처럼 저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름길을 걸으니까 또 굉장히 창의적인 설교거리와 사역을 위한 하이 콘셉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에 배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날따라 배가 늦게 도착을 하고 차까지 막혀서 교회에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승혁 목사님이 설교를 끝내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을 때, 남방 차림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마무리하고 축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올라가니까 교인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열린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세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열린예배를 드리잖아요.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예배가 끝나기 전, 남방 차림으로 달려왔습니다.”
과연 저의 이 강박과 분리불안 증세는 언제나 사라질까요. 은퇴를 하면 사라질까요. 그것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름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저한테만 주시는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는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고 더 굳건한 영적 역설적 부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긴장과 릴렉스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저는 이번의 쉼마저도 긴장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축복이라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퇴 이후까지도 계속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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