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메시지 [기도의 사람이 되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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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6-02-25 09:20본문
기도의 사람이 되자 [6]
기도의 사람은 벧엘로 올라간다

한글킹) 창 28:20~22 보면 “야곱이 서원하여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어서 21 나로 평안히 내 아버지 집에 다시 오게 하신다면, 그 때에는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주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아멘.
말씀을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신 은혜를 체험한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어서 21 나로 평안히 내 아버지 집에 다시 오게 하신다면, 그 때에는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주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분 일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여기서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고 약속을 한 겁니다.
하지만 야곱은 무려 30년간을 하나님을 기억에서 잊고 살아왔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가나안에 돌아와 정착한 지도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건만,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서원한 그 약속을 까마득히 잊은 가운데, 크나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죠 하지만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야곱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때 주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약속의 땅, 그 서원의 땅]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벧엘을 떠나 온갖 궂은일들까지 경험했습니다. 부하게도 잘살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하나님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불안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멀리했던 그 삶이 너무도 허무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두렵고 자신의 인생이 허무함을 느끼면서 생명의 위협도 도사리고 있는 이때 하나님은 야곱을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결심하고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은 창 35:3절서 ‘나의 고난의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갔던 길에서 나와 동행하셨던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리라’는 고백과 결단을 하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도 그러한 삶을 경험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분도 있다고 봅니다. 야곱처럼 자신도 험악한 인생의 고행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아니면 현재 진행형입니까? 야곱처럼 하나님을 만나 사랑도 받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도 다 체험해 보았지만,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한 벧엘을 떠나서 하나님을 잊은 채 자신의 힘으로 능력으로 삶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전전해 보았지만, 순간마다 닥치는 것은 두려움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누구입니까?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약속의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이스라엘이란 이름답게 복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을 잊고 살아왔다는 말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고 극한 상한이 닥치면 그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머리 싸매다가 문제의 해결사가 되시는 주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또한 잘되어서 배가 부르고 어깨와 배에 힘이 생기면 은혜의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얻어터지고 잊는 것 없는 것, 다 털리고 병든 몸으로 빈손 들고 ‘주여’하고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은혜를 체험한 순간 기쁨이 넘치고 너무도 감사해서 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서원까지 했는데,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영의 사람이 아닌 육의 사람으로 돌아간 겁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내 삶, 내 기쁨, 내 만족을 찾기에 급급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으셨습니다. 1절 말씀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올라가서 거기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생기가 없는 영에 생기가 들어갔듯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은 생기가 소생되는 삶이 시작됩니다. 피곤한 인생의 삶이 새롭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회복된 신앙인이 되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너와 네 가족들까지도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벧엘은 빵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영의 양식이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육의 양식으로는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 벧엘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갈 것을 결단했다면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창 35:2절 보면? “야곱이 자기 가족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며 너희 옷들을 갈아입으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야곱은 가족들은 물론 그 가족들과 함께한 모든 자들에게 무엇을 버리라고 하셨습니까? 첫째는 이방 귀신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방 귀신들이 왜 들어왔습니까? 벧엘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을 때 들어왔던 겁니다.
흔히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갔던 사람들을 보면 온갖 신들에게 눌려 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온갖 우상들이 귀신문화가 달라붙어 그의 생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입니다. 귀신들이 부패한 생선이나 음식에 파리 떼가 달라붙듯이 그 인생을 망가뜨리는 겁니다. 야곱이 벧엘을 떠나 하나님을 잊고 살았을 때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이방 귀신들과 귀고리 등으로 사치로 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야곱의 삶은 불안과 고통이 엄습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했던 야곱의 삶은 너무도 허무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을 불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올라가야 하는데 네게 있는 이방신(神)들을 버리고 벨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버려야 할 것이 이방 신(神)들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들을 다 버리고 생각도 마음도 깨끗하게 정결하게 바꾸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너희 옷들을 갈아입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들을 갈아입으라는 것은 신분 변화를 의미하는데,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고, 그 사람의 삶의 양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여기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은 현재의 자신의 삶과 신분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유턴하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 나약해지고 무기력해지면 믿음이 점점 퇴락하면서 급기야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탄문화가 귀신들을 이용해서 접근하게 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사탄의 미혹이 자신을 감싸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재물이 우상이 되고 명예가 우상이 되고, 자식이 우상이 되고, 직장이 우상이 되고, 각종 스포츠가 우상이 되고, 연속극이나, 드라마가 우상이 되고 술과 쾌락이 우상이 되고 정치가 우상이 됩니다. 이와같은 우상들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삶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이것 하라 저것 하라며 귀신의 도구로 전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귀신의 요구에 말 안 들으면 갑자기 우환이 생기게 해서 마귀를 숭배하게 하고 얻어먹으면 봐주기도 하는 게 사탄이요 귀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이렇게 괴롭힙니다. 그래서 귀신의 졸게 된 자들을 보면 정신도 비정상이고, 하는 행동도, 눈동자를 보면 초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생을 장난감처럼 그 인생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갖게 하고, 세상으로 더 깊숙히 끌어들이고 있는 게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온갖 것을 다하도록 요구합니다. 말 안 들으면 더쎈 귀신을 보내서 괴롭게 하는 게 귀신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할의 타락은 허무한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우상이 도사리고 있고, 인간의 삶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상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감히 물리치고 땅에 묻어 버려야 합니다. 그때부터 극심했던 고통과 위기 속에서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버릴 것들은 다 버리고 벧엘에서 교회에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아니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다음으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본문 2절에서 ‘정결케 하라는 것은 샘물과 같은 보혈로 자신을 정결하게 씻어야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이라야 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정결하게 씻을 수가 있는 겁니다. 죄를 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안 됩니다. 비누나 하이타이를 풀어서 씻는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질까요? 합성세제로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어낼 수가 없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정결하게 씻을 수 있는 겁니다. 그걸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멘.
이제 우리는 옷들을 갈아입어야 한다.
본문 2절에 ‘너희 옷들을 갈아입으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배해 왔던 세속적인 것들, 윤리와 도덕적인 것들, 표준들을 다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롬 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갈 3:27에서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고 말씀한다. 우리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그리스도로 옷들을 갈아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옛것들을 다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들을 갈아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벗어야 할 옛것들이란 우상의 옷들입니다. 정결치 못한 교만한 것들입니다. 이와같은 것들을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옷들로 갈아입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의 삶 속에 붙어 다니고 위기를 조장하는 것들을 다 떠나게 되는 겁니다. 또한 절망과 불안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죄악의 근성들을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통해서 사탄의 영들은 다 떠나게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제가 책을 읽는 가운데 이러한 간증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미국 켄터키 주 살렘에 있는 한 광산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져서 5명의 광부가 갱도에 갇혔다는 겁니다. 무너진 갱도에는 빛도, 물도, 양식도 없었다는 겁니다. 죽음에 처한 그들에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희망도 없고,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인데 한 사람이 노래를 부릅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 그래서 갱도에 매몰되어 있으면서 그들은 찬송을 쉬지 않고 부르며 기도드렸다는 겁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이 극적으로 구조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누워 있는 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려 53시간이나 지난 주일 아침에 그들은 다시 환한 빛을 보게 되었다는 기사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우리는 계속 찬송드리며 기도드렸다는 것입니다. 앉아 있을 힘이 없어서 누워서 찬송부르며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희미한 빛이 비쳐옴을 알았습니다." 구조된 한 광부의 말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갱속에서 뒤늦게 발견된 그들의 모자에 적혀있는 글은 이런 글귀였죠. [우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 몸이 이미 시체가 되어 있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품에 안겨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내용입니다. 이렇듯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이 벧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반드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때로는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위기가 오기도 하죠, 또는 경제의 위기를 만날 때도 있죠. 신앙생활의 위기를 만날 때도 있는 겁니다. 또한 가정의 위기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드리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하는 찬송 가사처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세상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말고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움츠리지 말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와야 합니다.’
지금껏 여러분 자신을 움켜잡고 있던 것들이 무엇입니까? 재물과 명예입니까? 이와같은 것들과 모든 우상을 과감히 버리고, 이제부터 결단하셔서 자신을 청결하게 씻고 그리스도로 옷들을 갈아입고 벧엘로 올라와 하나님 앞에 약속된 예배를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는 예배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움켜잡고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새 삶의 옷들을 갈아입고. 아니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갈아입고 올라와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와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끝까지 약속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끝까지 언약을 지키시며 변치 않으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좌정해 계시는 곳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는 말입니다. 생명의 빵, 영생의 빵 말씀이 있는 곳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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