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11월 첫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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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1-11-08 17:22본문
“강릉 옛길에서 삶과 신앙을 또 한 번 배웠네”
저는 목요일 오후에 강원도 평창에서 있었던 한국교회 총무대표회 워크숍에 가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다음날은 우리 교회 평신도 리더십 워크숍을 하며 강릉옛길을 걷기로 해서 왔다갔다하느니 강릉 옛길과 가까운 용평에서 잠을 잤습니다. 역시 강원도의 공기는 도심과 달랐고 별들의 속삭임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워낙 산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다음날 강릉 옛길을 걷는 설렘으로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 말입니다.
이윽고 오전에 평신도 사역자들을 만나 강릉 옛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강릉 옛길은 신사임당과 율곡, 또한 천재시인 김시습과 같은 과거 선비들이 한양을 가기위해 오고 가던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운의 이상을 품고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옛 선비들이 숨을 헉헉 거리며 넘어갔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길은 아직도 꿈이 서려 있는 길이요,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에 푸른 꿈들이 매달려 있는 듯 했습니다. 아니, 꿈을 먹었던 잎사귀들이 붉은 단풍이 되어 있었고 낙엽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길을 걸으며 장원급제한 선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과거에 낙방을 하여 눈물을 흘리며 걸어갔던 선비들을 생각해 봤습니다.십 수 년 이상 학문을 닦아도 성공하지 못하고 낙방하여 돌아오는 한 선비의 처진 어깨와 어둔 그림자... 그가 터벅터벅 쓸쓸하게 걸어야 했을 이 길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슬픈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길에서 중간중간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교회 세움과 예배 회복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 이미지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꿈길을 걷는 듯했습니다. 저는 가을 단풍을 보고 낙엽 위를 걷는 기쁨에 젖어있는데, 평신도 사역자들은 제가 어디가 좋다고 자꾸 저와 사진만 찍자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소금산 워크숍 때도 너나 나나 제 팔을 붙잡고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강릉 옛길에서는 더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들이마시고 내뿜었던 산소,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산과 들녘, 수많은 꽃들, 하늘의 별과 바람과 햇빛... 하나님께 공짜로 받아서 그 부와 행복을 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렇게 저를 무조건 좋아하고 따라주는 성도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성도들은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싸게 신앙생활을 하고, 가치 있게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지요. 그러니까 주님 때문에 저를 좋아하는 것이고 주 안에서 저를 믿고 따라왔던 분들이지요.
문득 어느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느 지체 높으신 여자 분께서 너무 반갑다고 저를 꼭 껴안아 버렸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우리 장로님들이 옆에 계시는데 말입니다. 그분도 신앙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그토록 반가워했던 것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을의 대자연 속에서 나이의 격차, 이성이라는 격차도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마치 원시림에서는 욕망을 버린 사랑, 단풍의 예술, 가을의 만남, 이 모든 것이 선악의 경계를 벗어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갔을 때의 소년, 소녀가 되어 과거와 현재도 없고 현재와 미래가 함께 만나는 숲길을 걸었습니다. 마틴 부버가 말한 대로 진짜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가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런 마음이 부서지곤 합니다. 어떨 때는 우리의 관계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처럼 ‘그것과 그것’의 관계가 되고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런 곳에서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틴 부버가 말한 대로 ‘나와 너’, ‘자연과 나’, ‘하나님과 나’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해주는 영원한 촉매자인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머무르면 우리는 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늘 자연 속에 사는 것 같고 항상 강릉 옛길을 걸어가는 것 같을 것입니다.
길을 걷는 중에 동행했던 이전도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단풍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다 낙엽이 되어 버렸네요.” 제가 이렇게 말을 하였지요. “아니지요. 낙엽이 되어 우리를 반겨주려고, 아니 우리에게 밟히는 행복이 더 커서 낙엽으로 쌓여있는 거지요.” 그러자 선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밟히는 행복이라니요. 정말 담임목사님은 천부적 시인이시네요. 낙엽을 밟으니 구르몽의 시가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제가 또 이렇게 말을 했지요. “알고 계시죠?. 우리 인생도 낙엽이 될때가 있다는 걸요. 그러나 낙엽을 한낱 나무의 죽은 잎사귀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비바람이 불 때 낙엽이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지요. 저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감사의 노래인줄 모른다지요.”
저는 함께 한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강릉 옛길에서 새삼스레 삶과 신앙을 다시 깨닫고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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