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2월 마지막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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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1-02-28 17:17본문
“이 세상에 우연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군산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은 전킨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였습니다. 그후 영명학교의 교장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국제진료소 소장이신 인요한 박사님의 할아버지인 린튼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명학교 학생들과 멜본딘여학교(현 영광중,고등학교)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가 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것입니다.
그때 린튼 선교사는 학생들의 3.1운동을 막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도와주고 3.1절 만세 시국선언문까지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서 3.1운동의 진상을 알렸고 그의 이야기가 애틀랜타 국제신문에 보도 되었습니다. 급기야 이 소식이 미국의 백악관에까지 전달이 되었고, 장롱 속 고서로 묻힐 뻔 했던 3.1운동의 기록이 전 세계에 다 알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린튼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신사참배 반대를 했습니다. 그 일로 조선총독부의 요주의인물이 되어 결국 미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한 것입니다. 원래 영명학교를 세운 분은 전킨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11월 3일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군산지역에서 열정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다 그만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세 아들 모두가 풍토병으로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동료 선교사들은 그의 건강을 생각하여 사역지를 전주로 이동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를 세우고 고아원까지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풍토병이 제발하여 결국 1908년 1월 2일 43세의 젊은 나이로 이 땅에 묻히고 맙니다.
제가 제일고를 다닐때는 린튼 선교사나 전킨 선교사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교회를 다니고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먼 훗날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의 장로교 선교 역사박물관에 갔을 때 선교사들의 편지들이 수두룩 쌓여 있는 것을 봤습니다. 특별히 린튼 선교사와 전킨 선교사, 영명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촌로의 아들이어서 남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게 맞습니다. 만약에 타지로 갔다면 전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군산으로, 그것도 하필이면 군산제일고등학교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였는지 전킨 선교사의 선교정신, 린튼 선교사의 저항정신이 저도 모르게 깊이깊이 심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 분들의 가르침을 전수받거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했는데도 저도 모르게 그분들의 소명정신과 신앙의 혼이 제 안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이걸 무의식적 전이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2년 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군산제일고등학교와 멜본딘여학교(현 영광중,고등학교)에 가서 특강 할 때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에 저는 가슴이 뭉클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 난국에 우리 총회를 섬기고 한교총을 섬기는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서도 온 신경을 써야 하는데, 저는 총신 정이사 문제로까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 있고 그 분의 경륜 안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 때문에 당하는 고통, 어려움도 다 주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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