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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칼럼

작가에세이 고장 난 손목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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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0-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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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시계.jpg

 

 

고장 난 손목시계

 

 

새벽에 내린 이슬을 말려주려

해님이 방긋이 웃고 나와 있는

아침

 

 

남편은

20년을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강제 퇴사를 당한 회사 앞에서 함께 농성하며 보내던 시간이 100일이 넘어가던 날

 

술에 취해 들어오더니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바닥에

내던질 때 남편과 저의 시간도

거기서 멈춰 서고 말았다

 

 

아무리 내달려도

앞서 가지 못하는 뒷바퀴가 된

자신을 원망하며 종일 멍이 든 하늘만 올려다보면서 소금에 절인 배추를 닮아가는 남편의 눈동자 속에 담긴

 

그 눈물에

배어버린 아픔이 담겨 있었을까

 

 

텅 빈 아픔만 내보이며 나간

남편은

 

어디서 뭘 하다 들어오는지

배고픈 우체통처럼 집으로 들어와서는

허기지고 탁한 세상만 원망하며

 

술이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더

남편 곁을 지켜가고 있었다

 

 

새벽이면 어디를 가는지

따로 다니는 시곗바늘이 된 남편은

불도 켜놓지 않은 방안에서

커다란 국방색 가방에 낡은 옷가지 몇 벌을 챙겨선 별을 따라 걸어나가더니

짙은 어둠 속에 노란 달이 그려질 때가 되어서야 들어와서는

 

아들이 쓰다 군에 간 방안에서

말없이 오는 겨울처럼 축 늘어져

잠드는 시간들이 우리 부부 앞에

쌓여만 가던 어느 날

 

해를 띄운 듯

노란 달걀 후라이를 해

식탁에 놓아뒀지만

 

그대로 나가버린 남편의 허기진

그림자만 식탁에 앉혀놓고

친정 엄마에게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차 서방 속이 지금 자기 속이겠냐

네가 이해해 이것아

 

모래밭 속에 동전처럼

숨이 막혀오는 시간 속에서

화가 차오른 난

 

뭐라도 대책을 세워야지

저러고 다니기만 하면 대수래?“

 

마음이 정리가 되면 네게 뭐라고 말하겠지 차 서방 심기 건드리지 말고 기다려 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담아두었던 속내를 비우고 난 나는

덩그러니 걸려있는 달력 앞으로 다가가 동그라미가 쳐진 숫자 앞에

두 눈을 모으고 있었다

 

 

“1111

 

10일 후가

아내의 생일인 건 알고 있는지

기대조차 욕심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나간 생일날 아침

 

일어나보니 남편은

벌써 새벽을 걸어 나간 뒤였고

 

 

그럼 그렇지...”

 

한숨과 섭섭함이 뒤섞인 눈물은

집에 두고 햇님이 골목골목 잠든 이들을 깨워놓은 길을 따라 직장에

나와 잡히지 않는 일에 매달리다

찾아온 점심시간

 

혼자 옥상에 올라가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을 원망하며

도시락 가방을 열어본 내 눈에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은

낯선 통장 하나와

액정이 깨진 남편의 손목시계가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있을 때

들어 온 문자 하나

 

 

깨진 몸으로도

째깍거리며 하루를 열심히 사는

저 시계처럼

 

살아가겠다는 문자 위에

내 눈물이 포개지는 걸 지우려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여보."

 

당신과 나의 멈춰졌던 시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늘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말없이 빛나는 별빛보다

 

어쩌면 더 따뜻했을

당신의 맘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햇볕과 바람 ..

자연의 손길로

 

얼어붙은 남편의 가슴을

봄이 있는 곳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으로 퇴근을 하다

 

회사 앞 은행에 들러 찍어본 통장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울려대더니

어두울수록 더 밝아오는

별을 닮은 남편의 마음이

그 통장에 고스란히 찍혀져 있었다

 

 

...여보 사랑해...

 

...여보 고마워 ..,

 

...여보 열심히 살게,,,

 

...여보 미안해...

 

라고

 

남편과 나의

멈춰졌던 시간 이후부터

 

쓰여진

남편의 마음이

매일매일 새겨진 걸 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문자를 보내려다

 

나는 그자리에 서서

통장으로 얼굴을 가린 채

펑펑 울고 말았다

 

여보 ..

당신의 52번째 생일 축하해....”

 

라는 문자에...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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