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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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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0-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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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강해(18) 2:14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지난 한 주간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기에 주님과 함께 일어나 함께 가셨습니까?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은 주님이 보시기에 무화과나무의 잘 익은 푸른 열매이며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 포도나무입니다. 이제 열매만 맺으면 됩니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 주님은 다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지금 있는 위치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지난 시간에 광야를 통과한 신부들은 아직 열매는 없지만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도 만족하고 안식을 누리고 있는 동면 상태입니다. 갈 길이 먼데도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신부에게 책망이 아닌 칭찬을 통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어떤 칭찬을 하고 계십니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입니다. 처음에 왕의 침궁을 경험하고 친밀함을 잃은 신부가 왕을 찾아 나섰을 때 신부는 아직 자아가 많이 살아 있는 바로의 병거의 준마였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으로,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 체험한 신부는 바라보는 모든 것이 사람의 시각이 아닌 성령님의 시각인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하게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라는 고백을 할 때 신부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였습니다. 이 단계까지 이른 신부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잔치집으로 인도되어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라는 안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안식에 빠져 잠들어 있는 신부에게 주님은 분리된 벽 뒤에서 창문을 통해 지나왔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안식에 머물러 있는 신부의 상태에 대해 주님은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라고 하십니다. 전에는 눈만 비둘기 곧 성령님과 같았었는데 이제는 전체가 비둘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잔치집에서의 안식을 통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가 바로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상태입니다. 여기서 바위 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곧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깨어진 바위 틈으로 생명의 물이 나오게 함같이 창에 찔린 반석이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옴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고전 10:1~6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지금 비둘기가 된 신부의 위치는 바위 틈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이 내 죽음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염려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염려하는 죄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하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위 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불평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불평하는 죄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불평하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위 틈에 있는 것입니다. 매일 이렇게 바위 틈에 있는 비둘기가 되고 계십니까? 아니면 바위 틈이 답답하여 자꾸 바위 틈 바깥으로 나오고 계십니까? 지금 죄를 짓는 성도들은 다 바위 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 틈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답답하시더라도 다시 바위 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아무도 찾지 않는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들어갈 수 있습니다.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마태복음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지금 항상 기뻐하는 분이 계십니까?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범사에 감사하는 분이 계십니까?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까?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지금 부활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미워하는 죄와 함께 죽는 것이 바위 틈에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미워하지 않는 부활을 얻은 것이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용서하지 않는 죄와 함께 죽는 것이 바위 틈에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용서하는 부활을 얻은 것이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 죄와 함께 죽는 것이 바위 틈에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부활을 얻은 것이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신약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3:10~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여러분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위 틈에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며칠 동안 바위 틈에 머무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며칠 동안 함께 죽어 있겠습니까? 삼일이면 충분합니다. 염려하는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불평하는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미워하는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지 않는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모든 각각의 죄에 대하여 이렇게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3일 동안만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신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잔치집으로 인도되어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라는 안식에 들어간 신부들에게는 이런 3일의 체험이 가능합니다.

 

요즘 3일 금식기도에 대해 주관을 받고 있는 성도님들은 3일 동안 금식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처럼 바위 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모든 각각의 죄에 대해 3일 동안 금식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처럼 바위 틈에 머물러 있다면 버리지 못할 죄가 없을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은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음으로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는 신부에 대해 주님은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하며 신부를 설득합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개구쟁이를 조용히 시킬 때 흔히 , 넌 참 착한 애지?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하면서 아이를 조정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칭찬 받아 본 적이 없던 개구쟁이가 갑자기 칭찬을 받으니까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 얌전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상대의 본심이 진정으로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조정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하게 됩니다.

 

고양이 짓거리하는 호랑이에게 넌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야 그러니까 호랑이답게 살아야지? 하는 것은 바른 충고지만 고양이 짓거리하는 고양이에게 넌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야 그러니까 호랑이답게 살아야지? 하는 충고는 거짓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를 조정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애 네가 그렇게 장난치고 시끄럽게 하니까 내 마음이 불편해 그러니 좀 조용히 해줄래?” 그러면 동정을 받아 본 아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상대를 동정하므로 조용히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버려두고 마음으로 축복해 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하는 주님의 설득은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신부를 자기 마음에 들게 조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신부가 변화되었기에 칭찬하면서 자신의 바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바람은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입니다. 왕궁에서 신부와 결혼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은 신부가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 곧 안식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입니다. “얼굴이란 사람의 마음과 전 인격을 표현하고 소리란 일정한 내용을 가진 사람의 말이나 주장을 표현합니다. 지금 안식하고 있는 신부의 상태는 이미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의 단계에 이르렀기에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입니다. 이제 열매를 맺기 위해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가 이뤄져야 합니다.

 

단장된 신부가 신랑을 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보아도 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주님께 자기 얼굴을 보이고 계십니까? 지금 주님께 자기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기도로 표현하는 것이 자기 얼굴을 보이고 자기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리가 부드럽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기에, 매일 매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체험하고 있기에 성령충만한 신부들은 신랑되신 주님께 자기 얼굴과 소리를 보이고 들리게 하는 비둘기가 되시기를 나의 마음과 생명과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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