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10월 첫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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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10-05 07:47본문
“너는 정말 아는가”
저는 단국대 병원에서 8일 정도 입원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한 주는 외출을 하여서 제가 주일날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마는. 우리 장충식 장로님의 배려로 원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모든 간호사들이 저를 VVIP로 배려하고 섬겨주셨습니다. 저는 분당서울대병원에 VIP 고객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만, 어디를 가도 단국대 병원만큼 대우를 받고 페이션트 퍼스트로 우대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 병원에 가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는 다 받아봤습니다. 머리 MRA와 MRI, 또 머리 PET-CT, Chest PA와 전신 PET-CT 할 것 없이 다 찍어봤습니다. 최신 의료기기를 통해서 저의 머리와 전신을 다 찍습니다. 그냥 찍지 않고 조영제를 맞으며 찍습니다. 저는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촬영 기간에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계를 향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네가 내 전신을 다 찍을 수는 있겠지. 특별히 네가 비록 나의 뇌 사진을 찍지만 내 생각까지 알 수 있겠니? 나의 가슴 사진을 찍는다 한들 내 마음의 열정, 내 마음의 사랑을 찍을 수 있겠느냐. 나의 생물학적 현상을 찍을 수는 있어도 결코 내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정열, 내 머릿속에서 여전히 회전되고 있는 창의적 감동과 아이디어, 그건 못 찍겠지. 더구나 나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오직 사명, 오직 교회의 삶을 살아온 것을 10분의 1이라도 알 수 있겠느냐. 광주신학교 채플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던 그 심장을 너는 기억할 수 있느냐. 5.18 광주 민주항쟁 때 목숨을 담보로 하고 금남로 길을 걸어갔던 나의 추억을 너는 기억할 수 있겠느냐.
허구한 날 무등산기도원에 가서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함으로써 내 심장에 새겨진 거룩한 낙인(스티그마타, Stigmata)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백암교회를 개척하면서 그날이 오면(이사야 26:1)이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잠 못 이루었던 그 깊고 푸른 밤을 너는 기억해 낼 수 있겠느냐. 가락동 시절, 정자동과 구미동 시절, 너는 내 머릿속에서, 가슴 속에서 나의 생애, 가슴 저리고 눈부셨던 날을 기억할 수 있겠느냐.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건축하면서 통일 한국시대에 민족의 지도자와 피스 메이커를 배출하는 꿈을 꾸었던 그 비전과 드림을 너는 100분의 1이라도 알 수가 있겠느냐. 아버지,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저 먼 남원에서 올라와 주일 사역을 하고 다시 내려갔던 일, 코로나 시절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며 일부에서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를 달랠 때는 달래고 싸울 때는 싸우고 방역본부와 협상하며 한국교회를 지키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었던 그때 나의 애간장을 태웠던 일을 천분의 1이라도 찍어낼 수가 있겠느냐.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너는 나에게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향하여 심장이 뛰고, 오히려 내 입에서는 따뜻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느냐.”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때로는 25분, 때로는 30분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 촬영을 하기 위하여 조영제를 맞고 그 조영제가 전신에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1시간 동안 암실에서 기다릴 때가 있었지만, 저는 그때에도 저의 가슴과 눈, 그리고 호흡은 그 암실마저도 따뜻하고 환한 방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진 판독 결과 별 특이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거 보시오. 내가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마 별 이상이 있다면 내 마음에 강박이 있을 뿐이고 거룩한 부담만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 강박이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해서 그렇지, 나의 몸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않소.” 성경을 보면 모세가 얼마나 심한 강박에 시달렸습니까?(민11:11-13) 신약의 사도 바울도 얼마나 마음에 눌린 눌림과 거룩한 강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까?(고후11:28) 어떠한 최첨단 기계라도 이런 눌림과 강박을 알아주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만이 알 수 있습니까? 저의 심령을 꿰뚫고 계시고 심장과 폐부를 보시는 우리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 신령한 근심에 동참한 사람들만이 알아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주일설교를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자다가도 꿈을 꾸면 저는 분명히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있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병원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40년 이상을 그리 살아왔던 저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명의도 저의 강박을 100% 고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좀 다운시킬 뿐이겠죠. 그 강박을 완벽하게 고치신다면 하나님만이 고치시겠죠. 그렇지만 주의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강박이 있어야지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갈 때에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 주일설교를 듣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똑같은 것 같은데 성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번 주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성도들을 찾아가서 더 좋은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저의 불면을 수면으로 회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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