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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자신이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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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04-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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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13)

사데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는가?

말씀선포 편집인 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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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서

 1. 사데 교회를 보라  

 3:1-2 종교 개혁 이후 시대를 예표하는 사데 교회가 나오는데 이 시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은 죽은 교회였다. 사람의 눈으로 외부에서 볼 때는 살아있고 화려한 교회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생명이 없는 죽은 교회였다. 중세 시대 타락한 교회들을 보면 외부에서 볼 때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살아있는 교회처럼 보였으나 모두 죽은 교회였다. 사데 교회는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 찬 죽은 교회였다. 예수의 생명이 없는 교회였다.

 

 1. 사데 교회는 역사적 배경으로 고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주전 546년 바사 제국의 고레스에게 침략을 당하여 바사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그 후 주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당했고 주전 218년에는 셀류쿠스의 안디오쿠스에게 함락되었다. 그 이후 주전 133년경 로마에 의해 점령당했다.

 

 2. 지리적 배경 사데 도시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두아디라에서는 약 48km 떨어져 있었다. 사데 도시는 천연적인 요새를 갖춘 도시였다. 남쪽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450m 높이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데 성을 들어가는 입구조차 벼랑과 험준한 길로 되어 있었다.

 

 3. 지명의 배경 사데는 ()사르데신 (Savrdesin) 인데 남은 자. 남아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름 값을 못한 교회였다.

 

 4. 경제적 배경 양털의 염색이 이곳에서 최초로 시작되었고 염직 공업이 흥행하였고, 공장들이 많이 있어서 부와 철학과 음악의 도시였다. 사데 도시의 부는 도시의 강에서 나는 사금 때문이었는데 이것으로 최초의 금화를 만들기도 했다. 또 이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사데 도시를 더 부하게 만들었다.

 

 5. 종교적 배경 사데 교회는 이단의 세력과도 싸우지 아니했다. 도시의 부요함으로 인해 세속적인 풍습에 젖어 이름만 있는 그런 교회였다. 외적으로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를 사모하고 전파하는데 있어서는 관심조차 없는 그런 교회였다.

 

 6. 현재의 모습 2세기까지 그 부요함을 자랑하던 사데 교회는 사데 도시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릴 때 함께 사라져 버렸다. 영적으로 죽은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7. 예언적 배경 종교 개혁 이후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사데 도시가 천연 요새였던 것처럼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받자 기독교는 천연 요새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며 타락해 갔다. 사데 교회가 풍요로움 때문에 죽은 교회가 되었던 것처럼 정치와 짝한 교회는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타락해 갔다.

 

 마지막 때에도 이러한 사데 교회와 같은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성도들이 부요함에 취해서 형식적인 신앙이 난무하고 있지 않는가? 교회도 부요와 풍요로움에 젖어서 멈추어져 버렸다. 즉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들이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되어 질 것이다

 

 첫 번째 : 수신처와 수신자를 보면 계 3:1에서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하고 서두가 시작된다.

 

 말씀을 보면 죽어가는 사데 교회에게 주님은 요한을 통해 편지를 보내 깨닫게 하고 계신다. 사데 교회를 담임하던 주의 사자는 이 편지를 받고 어떠한 태도였는가? 중세 이후 타락한 교회들에게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서 너희가 살았으나 죽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어느 시대마다 죽은 교회들에게 하나님은 깨달음을 주고 계신다. 마지막 때에도 형식과 외식만 갖추고 있는 교회들에게 주님은 주의 사자들을 통해서 깨닫도록 경고를 하달하실 것으로 본다.

 

 사데 이 뜻은 남은 자”“순교자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사데 교회는 끝까지 남아 있지 못하고 결국 교회고 말았다. 사데 도시의 부와 풍요로움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부와 풍요로움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 버릴 때 우리는 믿음을 떠나 타락한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기독교가 국교화되고 로마 정치와 하나가 되어버린 기독교는 부와 권세와 풍요로움이 보장되었다. 그렇게 되니 서서히 기독교는 타락되어 버렸고, 결국은 예수를 떠나버린 이단 집단이 되고 말았다.

 

 좀 더 설명하면 사데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편지를 받고 소수의 무리들만이 있었다. 4절에 보면 겨우 몇 명이라고 나온다. 깨닫는 자는 몇명 뿐이었다. 중세 교회 시대에도 소수의 몇 명 만이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의 뜻을 따랐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의 무리가 예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수를 통해서 예수님의 뜻이 전달된다.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도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들이 많은 시대이다. 우리는 사데 교회에 주신 주님이 편지가 오늘 나에게 전달된 주님의 편지로 받아야 할 것이다. 이 편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깨닫고 편지 내용대로 순종을 한다면, 사데 교회에 몇 명 안되는 자들이 남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남은 자가 될 것이 아닌가?

 

 주님의 편지는 항상 먼저 주의 사자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성도들이 주의 사자에게 가르침 받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들은 얼마나 가르치는 게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본 대로 전해야 한다. 이게 사명자이다. 사명자는 잘 깨닫도록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편지를 보고도 주님의 뜻을 전하지 않는다면 편지를 본 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33:6)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하셨다. “주님의 편지 내용을 아는 자는 이제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누가 한 분이 겔 33:8-9을 읽어 주세요. 말씀을 보셨듯이 우리는 본대로 들은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본 그대로 우리에게 증거된 책이다.

 

 (1: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편지를 보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성경책이 주님의 편지이다. 사데 교회처럼 부와 풍요로움에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경고를 이 시대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전하세요.

 

두 번째는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3:1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하신다. 이 말씀에서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데 교회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한 상태인가를 알게 된다. 사데 교회는 지금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되어야 하고, 예수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되었을 때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예수님은 보여주고 계신다.

 

 여기서 일곱 영은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일곱별이 있는데 별은 계 1:20에서 주의 사자를 의미한다. 주의 종들을 붙잡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죽어가는 교회를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 살리겠다는 주님의 뜻이 주님의 모습 속에 들어있다. 교회는 반드시 성령으로 새롭게 살리신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드시 주의 참 종들을 택하여 교회를 살리신다.

 

 주님은 절대로 혼자 일을 하시지 아니하신다. 반드시 주의 종들을 통해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 중세 말기에 종교 개혁가들을 붙잡아서 주님의 교회들을 살리셨다. 마지막 때에도 일한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들을 깨우고 성도들을 깨우게 하실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코 사데 교회를 살리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사데 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이단 교리에 빠진 것도 아니고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생활과 풍로움 때문에 그 좋던 신앙이 다 죽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데 교회에 일곱 영과 입곱 별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말씀이다. 중세 시대에도 기독교가 탄압만 받다가 세계를 정복한 로마 정치와 하나가 되어 버리자 기독교는 너무 편하게 되었고 부와 권세까지 누리게 되자 기독교는 무섭도록 타락해 버렸다. 우리의 신앙의 적은 꼭 사단만은 아니다. 사단은 세상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미혹하고 실족시킨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돈이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교회 운영도 돈이 없이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돈이나 부귀가 목적이 되어서 신앙생활 하면 안 된다. 돈은 필요한 것이고,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하지만 이런 것이 목적이 되어서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된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도구는 필요하다. 도구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도구보다 더 필요하고 귀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땅 속에 귀한 보물이 들어있다. 그 땅을 파기 위해서는 땅을 파는 도구가 필요하다 땅을 파는 도구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 땅을 파자 보물함이 나왔다. 그런데 보물함을 보고도 모르고 땅만 파고 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이겠는가, 우리에게 물질을 주고 세상 권세를 주신 것은 이 귀한 보물 되신 예수를 더 전하고 예수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이 이 도구를 얻으면 그만 도구에만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한 사데 교회에 예수님은 다시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은 나타나신 것이다. 중세 시대에 타락한 교회에 주님은 성령의 강한 역사로 주의 종들을 택하여 깨닫도록 하였지만 사데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들은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교회가 세상의 물질로 타락되어갈 때 주님은 그냥 보고만 있지 아니하신다. 반드시 성령으로 주의 종들로 깨닫게 하신다. 마지막 때에도 이 땅에 교회들이 성도들이 세상의 편안함과 물질 속에 타락해 갈 것이다. 주님은 세상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재림하시겠다고 하셨다.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은데 무슨 세상 종말이냐? 할 것이다. 세상에 빠져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일곱영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손에 붙들린 주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데 교회가 주님의 경고를 받았을 때 남은 자들이 소수의 몇 명이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주님께 돌아온 무리들은 많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 이단의 교리와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 받은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마지막 때에 더욱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 물질과 세상의 권세이다.

 

 사실 사단이 제일 먼저 미혹하는 것은 세상의 물질과 권세이다. 이것에 미혹되지 아니할 때 거짓 선지자와 이단의 교리로 우리를 미혹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의 손에 붙잡힌 주의 종들의 가르침을 잘 순종하여 사데 교회에 남은 자들처럼 우리도 남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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