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레위기 강해(7) 레 2:13~16절 네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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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4-26 13:32본문
레위기 강해(7) 레 2:13~16절
네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
하나님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레 2:13~16절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되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제물에 부족하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14네가 첫열매들의 음식제물을 주께 드리려면 불로 말린 곡식의 첫열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잘 익은 이삭에서 찧은 곡식이라야 하며 15 너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넣을지니 그것이 음식제물이니라. 16 제사장은 그 기념물, 곧 그 제물에서 찧은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을 모든 유향과 함께 불사를지니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아멘.
소금은 세상 불을 진화할 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번제단 불에는 반드시 소금이 있어야 유효하게 되어 있다. 이 소금이 없으면 번제물도 제단 위에 불도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본문을 13절을 보면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했다. 소금은 부패와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음식물의 고유의 맛을 지속시키는 특성이 있어서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할 때 빵과 소금을 함께 먹으면서 그 계약이 파기될 수 없는 불멸의 것임을 상호 다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음식 제물에 소금을 치게 할 것을 명령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이것은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파기될 수 없는 영원 불변한 것임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소금의 속성에 근거,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을 가리켜 성경은 ‘소금 언약’이라고 했다(민 18:19, 대하 13:5).
◇ 주님께 불로 드리는 제사
레 2:16 ‘제사장은 그 기념물, 곧 그 제물에서 찧은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을 모든 유향과 함께 불사를지니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 아멘.
누룩과 꿀은 향기로운 음식 제물에 반대되지만 기름과 유향은 그와 반대로 향기로운 음식 제물에 잘 조화된다. 이 두 물품은 음식 제사 제물이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품목이다. 이 두 품목이 빠지면 분명코 향기로운 냄새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기름은 올리브 나무 열매에서 짜서 만든 올리브 기름을 말한다. 이 올리브 기름은 밀가루와 함께 팔레스티아의 주요 산물 중 하나로 음식물을 가공하는데 매우 소중한 식품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올리브 기름은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는 데 이는 미용과 치료용으로 사용되었다(약 5:14). 상징적 의미로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의미한다(행 10:38). 또한 유향 히=>(לְבוֹנָה 레보나)은 유향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고급 향료로인데 제물이 향기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다. 이 유향은 동방의 현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 가운데 하나였다(마 2:11). 이렇게 음식 제물에 기름과 함께 이 유향이 첨가되었다는 것은 그 의미상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진(롬 12:1). 성도의 기도와 찬양의 향내 나는 삶을 의미한다.
음식제물(소제)에 이 두 물품은 첫 열매를 찧어 만든 음식 제물에 부어 기념물로 불살라 화제를 드리므로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했다. 예수님의 최후주간인 유월절 2일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집 안에 향기가 가득하게 했던 것이다.
이 때 제자들은 그 여인이 행한 일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녀를 기념하리라 하셨다(마 26:6~13).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미리 준비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기념물이었다. 향유가 옥합 안에 그대로 있었다면 100년 천년이 가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 옥합을 열고 기름을 쏟아야 향기가 나기 마련이다. 이 여인은 옥합을 열기 앞서 그의 심령이 열린 여인이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아낌없이 부어드렸던 이 여인은 요 12:3에 보면 나사로의 누이이며 마르다의 동생이다. 하지만 본문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는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다. 마태와 마가가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당시에 생존에 있던 마리아와 그녀의 가족들을 유대인의 핍박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문화는 여자가 남자의 재산 목록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출 20:17).
당시 이 여인은 매우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쏟은 것이다.
마태는 그 향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고 단지 ‘매우 귀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평행 본문인 막 14:3에 의하면 이 향유는 ‘나드’ 향유였다. ‘나드’ 향유는 인도산 식물 나드의 뿌리 부위에서 얻어지는 휘발성이 강한 향인데, 매우 귀하고 값이 비싸서 주로 왕과 같은 고귀한 분에게 바쳐지는 향유였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캄비세스가 에디오피아 왕에게 보낸 다섯 가지 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나드 향이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향유 한 옥합의 가격이 ‘300 데나리온’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300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 한 사람이 일 년간 벌어들이는 소득과 같은 금액이라고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계산에 밝고 재물에 욕심이 많은 유다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고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여인의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귀한’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함으로써 여인의 행위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옥합. ‘옥합’으로 번역된 헬라어 ‘ἀλάβαστρον 알라바스트론’은 ‘알라바스터 병’이라는 뜻인데, ‘알라바스터’(alabaster)는 석회 또는 황산 석회 성분을 띤 부드러은, 반(半) 투명의 대리석 비슷한 광물이며 그 주산지(이집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런 병들은 값비싼 기름이나 향유를 넣어두기 위해 사용되는데, 몸체가 둥글고 목이 긴 모양을 하고 있어 사용할 때는 인봉한 주둥이를 깨고 그 안에 든 모든 향유를 부어 쓰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식사하실 때에 에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다
식사 도중에 그 잔치의 가장 귀한 손님에게 향유를 부음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유대의 전통적 관습이었다(시 23:5). 한편 본문과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발’에 부었다고 했다(요 12:3). 한 견해에 의하면, 기름을 부은 곳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였는데, 이것을 복음서 저자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측면에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이든, 머리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름을 부은 부위가 아니라 기름 부음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한편 향유를 붓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성경에 나타난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거룩하게 하는 예식으로 향유를 부었다(창 28:18). (2) 제사장들의 의식적 성별에 사용되었다(레 8:12). (3) 선지자로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왕상 19:16). (4)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삼상 10:1, 왕상 19:16). (5) 손님을 환대하는 데도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6) 전통 장례법에 따라 시신에 발랐다(요 19:40). 이중 본문에서 한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장면은 왕의 취임식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의 육신적 조상인 다윗은 사무엘의 기름부음에 의해서 왕이 되었고(삼상 16:13), 그의 후계자들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들’이었다(시 45:7, 89:20). 이 고대 의식에서 유추하여 다윗 가문의 메시아도 마찬가지로 기름 부음 의식에 의해서 임명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베다니에서의 예수의 기름 부음 받음은 다윗의 임명식의 모든 국면들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기름 부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성전 밖’ 그리고 ‘한 평범한 처소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또한 예수의 즉위식은 왕이나 사제가 임명을 받을 때의 그 화려함과 장관 속에서가 아니라, ‘한 초라한 집’에서의 식탁 친교에서였다. 그리고 예수는 대제사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익명의 여인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더욱이 예수의 기름 부음 받음은 환영과 갈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8절).
따라서 본문의 기름 부음은 예수께서 인정하신 바대로 장례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12절)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울 것이다. 비록 그 여인은 순수하게 예수께 대한 다함없는 헌신과 사랑의 표로 기름을 부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구속사에 있어서 의미있는 큰 사건이 되었다.
여기서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리기 앞서 그 여인의 심령이 깨어진 여인이었다. 음식제물에 기름과 유향은 첫 열매를 찧는 곡식에 부어 기념물을 삼아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향내 나는 기도의 제물로 깨어지고 바스러진 심령으로 향을 피우듯 그리스도께 그 심령을 쏟아 붓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기념물들은 모두 그리스도 앞에 향기로운 냄새 나는 제물들이다.
옥중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빌립보 교회가 정성어린 헌금을 거두어 에파프로디도 편에 전달된 사랑의 예물도 우리 예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었음을 말해준다(빌 4:18).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정리를 한다면 여기서 네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 하셨는데 초두에도 말씀드렸는데 소금에 대해서 레 2:13절과 16절을 보셨지만, 언약의 소금이란 하나님과 변하지 않는 약속을 가리킨다. 민 18:19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바치는 거룩한 것들에서 모든 들어올리는 제물은 내가 너와 네 아들들과 네 딸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주었나니, 그것은 주 앞에서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소금의 언약이니라." 하시니라’. 하였다.
레 2:13절에서 보았듯이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되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제물에 부족하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여기서 소금은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이는 음식제사 헌물은 여기서 일시로 끝나는 제사가 아니라 ‘영원불변한 진리의 억악’임을 말씀하고 있다.
‘영원불변한 진리의 언약’인 음식제사인 이 예배가 이 땅에서 사는 그날까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음식제사인 이 예배가 하나님 왕국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희생하는 신앙의 삶이 하나님 왕국에까지 올라간다는 확신에 찬 믿음으로 음식제사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소금을 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음식제물에 소금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언약의 약속인데, 이러한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진 신앙이라면 사람을 보고 교회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심해야 한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된다는 그러한 의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 하라는 그런 뜻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희생하는 자체가 ‘음식제사에 소금을 치’는 것이다.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하나님 왕국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기억하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림자도 없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하는 봉사하는 것은 ‘소금을 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할렐루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 왕국에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이 땅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업적을 남기기 위해 인격도 무시하면서까지 난리법석을 던다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 왕국에 기록된다는 것을 믿고 ‘음식제사’를 드릴 때 소금을 치는 것이 된다. ‘영원불변한 진리의 언약’ 소금을 치고 음식제사 제물이 다 될 수 있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함 아멘.
둘째는 음식제물은 곡식의 첫 열매
레 2:14~15절 ‘네가 첫열매들의 음식제물을 주께 드리려면 불로 말린 곡식의 첫열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잘 익은 이삭에서 찧은 곡식이라야 하며 15너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넣을지니 그것이 음식제물이니라’ 아멘.
여기서 첫열매들의 음식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 음식제물은 불로 말린 곡식의 첫 열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잘 익은 이삭에서 찧은 곡식으로 해야 하며, 여기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넣어야 만이 음식제물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레 1장을 보면 하나님께 드려지는 5가지 제사법은 번제(화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다. 번제란 구울번(燔), 제사제(祭)인데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 그 번제 제물은 소, 양, 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드렸다. 하지만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고 수컷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번제 다음으로 드려지는 중요한 것은 음식제사 제물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음식제사의 실체를 온전히 이루신 것이다. 이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음식 제사의 제물이 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처럼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어떻게 음식 제물처럼 고운 가루가 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오직 산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부서지고 낮아지고, 새롭게 변화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받으시는 음식 제물인 고운 가루가 되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자신이 부서지고 낮아지고 변화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 인정받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사로잡혔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최상품인 고운 가루가 된다.
고운 가루가 되었을 때 기름을 붓고 반죽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향 같은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되고, 그래야 음식제사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복음서에 지적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 같은 누룩, 죄악을 뜻하는 그러한 누룩이 여러분이 드리고 있는 예배에, 자신이 드리고 있는 음식제사에 그러한 누룩이 있다면 그 제사는 그 예배는 헛된 예배, 헛된 제사가 되고 만다. 죄악을 뜻하는 누룩을 다 버려야 한다. 그래서 온전한 예배 온전한 은식제사의 제물로 드려야 한다.
셋째, 반드시 ‘소금’이 필요하다.
음식제사의 제물에는 반드시 필요한 ‘소금’이 있어야 한다. 소금은 음식에 들어가 간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금이 들어가야 한다. 또한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는 게 소금이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불신한다든지 믿지 않는다든지 하면 그때부터 그의 신앙은 부패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희생과 고난 속에서도 감사의 맛을 내고 기쁨의 맛을 내야 한다. 그래야 향기로운 냄새를 내게 된다. 할렐루야!
여기서 음식제사의 제물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신앙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말하며 이는 또한 우리의 예배를 뜻한다. 우리의 신앙 모든 것 자체가 이제 음식제사의 제물처럼 고운 가루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세계에 퍼뜨리는 그리스도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누룩들이 우리의 음식제사의 제물에 틈타지 못하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지켜야 한다.
따라서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음식제물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의 향기로운 냄새는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냄새로 영광 돌리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함.
분명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알아야 한다. 마 24:51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막 8:15 ‘그때 주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주의하라,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니’. 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된 자들이다.
구약의 음식제(소제)를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내게 있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 자신이 음식제사의 제물처럼, 번제단에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오늘 각자가 한 알의 밀알이고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 한 알의 밀이 되어서 고운 가루가 내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을 붓고 반죽을 하는 것과 같이 오늘 우리도 온전히 가루가 되고 성령의 기름을 받고 반죽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함.
이처럼 구약의 제사는 그 의미가 크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역시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사람들이 나아갔듯이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구약의 제사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요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하셨다. 구약의 모든 제사법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깊은 뜻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제사 제도를 보면서 명심할 것은 성경 말씀을 읽고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의 제사법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구약의 모든 제사법은 하나의 그림자였고 모형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체이고 원형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의 형식은 이제는 필요 없다지만, 그러나 그 제사법 말씀 속에 흐르고 있는 실체의 모습은 우리가 알아야 한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고 하셨다.
위에서도 언급해 드렸듯이 음식제사는 반드시 번제 제사가 드려진 후에 드려졌다. 음식제사는 피를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소금을 치라고 하셨고, 또한 음식 제사를 말씀드렸다. 모든 제사는 반드시 번제 제사를 드린 후에 드려야 한다. 한 가지 제사만 독립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번제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한다. 그리고 음식제사의 제물이 제단 위에 드려졌다. 음식제사는 이처럼 곡식 물을 통하여 드려졌다고 했다.
음식제사(소제)란"선물"을 뜻한다.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았다는 것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리킨다. 또 우리 자신들이 고운 가루처럼 희생 되어질 모습을 가리킨다. 할렐루야! 다음 시간 또 말씀을 이어진다. 부탁드리기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기도이다. 기도 외에는 능력이 나갈 수 없다. 꼭 기도부탁드린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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