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욜 1장강해(15) 여호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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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09-01 08:51본문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3)
(욜 1:6-9) 작성자 / 정기남 목사
지난주간 이어서=>
욜 1:6-9절 전 세계가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할게 없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컴퓨터 스마트폰 하나면 도난방지도 하고 사고 직전에 있는 자동차도 이 기기를 통해 경고의 벨이 울림으로 인해 사고를 예방하게 되었다. 또한 가정에 보일러에 기름이나 가스가 떨어졌어도 즉시 휴대폰이나 전화로 음성을 보내온다. 모든 일들을 컴퓨터 하나로 해결하게 되었다. 또한 미아 발생도 없을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다 찾아낼 수 있다. 강도도 살인자도 피할 수 없다. 다 찾아낸다.
요한계시록 13:16-18에서“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셨다.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는데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인데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고 하셨다. 이 표는 매매수단이며 그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다 찾아내며 어느 곳에 가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사고팔던지 다 찾아낼 수 있다. 개개인의 정보가 다 들어나 있기 때문에 감출수도 없고, 이를 피할 수도 없다. 완전 부자유스럽다. 짐승의 노예가 된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현재 현대 과학은 최첨단을 걷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편리한 세상이요 표만 몸에 세기고 다니면 못할 게 없다. 너무도 살기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예수가 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이 좋아서 예수를 떠나고 예수를 배격하는 때가 이르고 있다. 이미 그 때가 우리 눈앞에 감지되고 있다. 점점 우리 예수님을 떠나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 주일예배에 또는 공공 예배에 주 앞에 나오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 예수를 배격하고 떠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잠깐의 방심이 믿음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힘들고 어려워도 이 길만을 우리 주님만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전진만 해야 한다. 분명코 경고하지만, 표를 받고 살면 이 세상이 살기가 너무도 편하고, 좋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편리한 만큼 자신의 영혼은 이미 썩어지고 사망의 길로 곤두박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영혼이 썩어가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게데가 살기가 좋은 것만큼 불편한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든 것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또는 손과 이마에 받은 표가 저 인공위성에 입력되어 자신이 어디를 가든지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다 감지되고 다 찾아낸다. 뿐만아니라 화장실에 앉아서 일보는 것까지도 다 찾아낸다.
여기서 우리가 구약에 롯을 생각해 보자, 롯이 요단들을 바라보고 그 기름진 땅을 택하였다. 이처럼 말세에도 사람들이 세상이 너무도 좋아서 예수를 믿다가도 예수를 떠나가고 배도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살후 2:3에‘먼저 배도하는 일들이 있고’라고 했다. 그리고 믿음이 다 식어지고 냉냉하다. 믿음이 겨울을 만난 자처럼 차갑다. 그리고 영의 눈이 어두워져서 타락한다. 그리고 세상이 좋다 보니 교회 나올 마음도 없어지고 관심도 없어진다.
현재 우리는 너무도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집에 가만히 앉아서, 또는 어느 곳에 있든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하나로 각 기독교방송TV통해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시청하면서 예배를 보고 있다. 이렇다보니 교회를 등한이 하게 되고, 결국 교회와는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되며 믿음생활은 너욱 나태하게 될 것은 뻔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보는 예배는 예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기를 통해 드려지는 예배는 결코 예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로 자신이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로 착각하지 말라, 이는 예배가 아니다. 영상을 통하여 하나에 시청은 될지언정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정성과 믿음은 없고 형식에 불과하다.
시청하는 행위는 예배가 될 수 없다. 벌써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기독교 방송매체를 통해서 또는 컴퓨터를 통해서 또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서 예배하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진실로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극히 적을 것으로 본다. 말세에는 믿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라고 했다. 이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때를 지어 다니는 것이다. 군대처럼 많은 무리가 나오는데 그들이 강하다고 했다.
계 9:7“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다고 했다. 그 머리에는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했다. 이어서 말씀은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다고 했다. 바로 그 세력은 성난 사자와 같다는 예기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순수한 성도들의 혼을 잡아 삼키기 위하여 두루 찾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그 사상이 믿는 자들의 심령에 침투시켜져서 혼들이 피해를 받고 말살되는 영적 사실을 예고하는 말씀이다.
계 9:8~9을 보면‘그들의 머리칼은 여자들의 머리칼 같았으며 그들의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더라. 또 그들의 흉갑은 철흉갑 같았으며 그들의 날개소리는 전쟁터로 달려가는 많은 기병대 소리 같더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오늘 현대전에 없어서는 안될 최신 무기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사자의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동물의 왕 하면 사자이다. 바로 이 암사자의 이를 가진 것처럼 완전히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이란 말은 타락을 가리키고, 그래서 우리는 결국 동물처럼 살지 않으면 사자의 밥이 되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말씀으로 충만하게 살고 미리미리 준비만 한다면 전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세대를 알아야 하고, 그리고 후세대에도 알리고, 또 그 자녀는 또 그 자녀에게 그리고 후대에게 알려주게 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다음주간 계속됩니다.
jtpress@hanmail.net(jtntv 편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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